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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사태와 스포츠계 성폭력, 꼭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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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사태와 스포츠계 성폭력, 꼭 빼닮았다

[최동호의 스포츠당] 피해여성들이여, 용기내달라

가증스럽기 이를 데 없다. 조금이라도 면책하겠다는 비열한 속셈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얄팍한 말장난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교묘한 술수를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어찌 이럴 수 있나? 이 정도의 인성인 자가 어떻게 대통령을 최 근저에서 보좌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나? 출세욕에 눈이 먼 인생 아닌가? 그 와중에 오만과 탐욕으로 탈이 나자 밥 먹듯 말 바꾸는 본성이 시정잡배 수준이지 않은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인턴으로 채용된 대학원생을 '가이드'라고 폄하했다. 성추행 해명에 앞서 무려 4분 30초 동안이나 '가이드의 무능함'을 장황하게 강조했다. '딸 같은 교포'를 '단호하게 꾸짖었다'는 자책감에서 '위로의 술'을 샀고 '미국 문화'를 잘 알지 못한 채 '위로와 격려의 제스쳐'로 '허리를 툭 하고 한차례 쳤다'고 말했다.

역겹다. 피해자에게 원인이 있었다는 책임전가, 자신의 행동은 선의였다는 자기방어, 문화의 차이였다는 억지 정당성 부여가 어찌 이리 똑같은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치한들의 비열한 자기변명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실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 학생에 대한 사과 없이 궁색한 변명조로 일관한 기자회견은 책임회피와 개인 보신으로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공식 수행하다 성추행 의혹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적 지위에 있는 피해자를 협박과 회유로 강압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은 스포츠계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2007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권도장 사범의 성폭행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당시 41살의 사범은 자신이 가르치던 10대 소녀 3명을 성추행했다. 이것도 모자라 2008년엔 19살의 수련생을 성폭행했다. 인면수심의 사범은 대학진학을 미끼로 10대 소녀들을 회유했고 경기출전을 앞두고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 이용했다. 체포된 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고 "좀 더 잘 가르치기 위해 10대 소녀 제자들과 접촉이 있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스포츠계 내부의 성범죄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코치·감독과 선수라는 수직적 관계, 엄격한 선후배 관계라는 위계질서 속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는 선수의 생사여탈권을 전횡하며 성범죄를 저지른다. 초.중.고등학교 뿐만이 아니다. 2007년엔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에서 성추행사건이 터졌다. 박명수 전 감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전지훈련 도중 호텔방으로 선수를 불러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국내 스포츠계 구조는 폐쇄적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하면 선수들끼리만의 문화와 공간에 갇히게 된다. 장기간의 반복적인 합숙훈련과 엄격한 선후배 위계질서 속에서 명령과 복종이라는 의사전달 체계에 익숙해진다. 감독은 선수기용은 물론 상급학교 진학, 프로진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선수들의 생사여탈권을 휘두른다. 성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국 중·고교 남녀 학생 운동선수 11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성폭력 피해자 비율은 63.8%에 이르렀다. 언어적 성희롱 피해자가 58.5%, 강제 키스 등의 추행이 25.4%였고 성관계를 요구받거나 성폭행을 당했다는 응답자가 1.1%였다.

성폭력 피해자 63.8%라는 수치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았다.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또 알고도 쉬쉬했던 스포츠계 성폭력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자책과 "스포츠계만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부각시키느냐?"는 반발도 있었다. 정부수립 이후로, 아니 개국 이래 최초로 스포츠계 성폭력 실태가 공개되자 부끄러운 현실을 고치려는 노력이 있었고 개선의 효과도 있었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에 의뢰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 비율은 1.2%로 2008년 인권위 조사결과보다 오히려 0.1% 증가했지만 전체 성폭력 피해율은 9.5%로 크게 줄었다.

문제는 성범죄의 구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2012년 설문결과에서도 폭력을 가장 많이 행사하는 가해자는 감독과 코치로 나타났다. 구타나 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아무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51.9%, 47.1%였다. 선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감독·코치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지도자 스스로가 폭력과 성폭력의 유혹에 빠지기 쉬울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은 선수들도 2차적 불이익에 대한 불안감으로 신고조차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스포츠계 성폭력은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은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창궐한다. 2008년 인권위원회 조사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의 노력으로 성폭력 방지를 위한 시스템은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피해자 신분보호는 아직도 미흡하다. 신분상의 불이익과 가해자의 추가 보복에 대한 불안감 없이 상의하고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피해자 측은 '더 이상의 사건 확대를 원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성추행을 최초로 신고한 주미 문화원 직원도 돌연 사직했다. 국가대표라는 10대 소녀의 고운 꿈이 짓밟혔을 때,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몸둘바를 몰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낀다. 뒤늦게라도 부탁하고 싶다. 용기를 내 달라고. 피해자의 잘못이나 실수가 절대 아니다. 온 국민이 함께 할 터이니 당당하게 진실을 밝혀주길 부탁한다.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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