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친정 엄마는 믿기지 않는 듯 몇 번이나 정규직이 된 게 맞느냐고 물었고, 정말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8년을 싸우면서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기륭전자 본사에 첫발을 내디뎠던 5월 2일, 그녀의 얼굴은 웃음과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기륭전자는 기륭이앤이로 사명이 바뀌었고,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생산 설비를 마련하지 않아, 강화숙 씨는 아직 라인에서 일하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2010년 11월 1일 노사 합의에 따라 5월 1일부터 법적으로 어엿한 정규직입니다.
▲ 5월 2일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8년 만에 정규직으로 출근했다. ⓒ정택용 |
8년 만에 행복한 어버이날
전남 장흥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안양으로 올라온 그는 한 전기회사에서 정규직으로 6년 동안 일했습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자 그녀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2002년 11월 기륭전자에 들어왔습니다. 300여 명이 일하는 공장에 정규직은 단 15명이었고, 나머지는 계약직과 사내 하청이었습니다. 그녀는 계약직으로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계약서를 새로 쓰며 일했습니다.
2005년 7월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급은 당시 법정 최저임금인 월 64만1840원보다 10원 더 많았습니다. 잔업·특근 수당을 합쳐도 80만 원이었고, 그녀는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그게 문제인 줄 몰랐습니다.
2005년 8월 24일 시작된 싸움은 55일간의 점거 파업, 세 차례의 고공 농성, 2008년 김소연 분회장의 94일간의 단식 농성, 2010년 포클레인 농성 등을 거쳐 2010년 11월 1일 1895일 만에 정규직 전환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 5월 2일 축하를 받으며 출근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 ⓒ정택용 |
그사이 그녀는 연대하러 온 동지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다섯 살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2008년 집단 단식을 하겠다는 동료들한테 미안해서 임신 사실을 숨기고 13일 동안 단식을 하다 쓰러졌던 일까지 8년의 시간은 때로는 행복했지만 때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13일을 단식했던 기억
기륭전자를 함께 다녔던 300여 명의 동료들 중 단 10명만이 고행의 터널을 지나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그녀와 노조를 함께했던 2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짧게는 한두 달 만에, 길게는 3-4년을 견디다 모두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이 찾아간 공장은 또 다른 이름의 기륭이었습니다. 기륭전자가 있던 가산디지털단지 일대는 2년 이상 일하면 직접 고용해야 하는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을 피하기 위해 1개월, 3개월 단위의 '초단기 계약직'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받는 월급은 8년 전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법정 최저임금이었습니다. 2013년 최저임금은 시급 4860원,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월급은 101만5740원이입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잔업과 특근을 해도 세금을 떼면 간신히 100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공단의 노동자들은 초단기 계약직
ⓒ박점규 |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법정 최저임금은 매년 평균 5.21% 올라 노무현 정권 5년 평균 인상률인 10.6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5년 동안 오른 시급이 860원, 월급이 17만9000원입니다. 2013년 노동자들이 한 시간을 일해서 받는 돈이 원두커피 한 잔 값밖에 되지 않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에 따르면 1988년 최저임금 도입 이래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소득이 9.06배, 9.16배 증가했지만 최저임금은 8.4배, 정액임금은 7.81배 증가에 그쳐 노동자 임금 상승 속도가 경제 성장과 소득 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연대는 "최저임금 도입 이래 노동자 평균 임금의 30%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 요구안을 전체 노동자 정액 급여의 50%인 시간당 5910원으로 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월급으로 계산하면 123만5190원입니다.
최저임금연대, 내년 최저임금 5910원 요구
최저임금연대가 요구하고 있는 5910원도 노동자들이 생활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 금액입니다. 최저임금연대가 요구한 시간당 임금은 한 끼 밥값인 6000원도 되지 않고, 세금을 떼고 나면 1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한 달을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겹습니다. 청년과 학생들로 구성된 알바연대는 시간당 1만 원의 최저임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최저임금이 근로자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최저임금 결정 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기본적으로 반영하고, 여기에 노동시장 상황을 감안하여 소득 분배 조정분을 더하도록 최저임금 인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다른 박근혜 정부의 모습을 보며 노동자들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도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일 넘게 철탑에 매달리고 몸에 시너를 뿌려 분신을 해도 관심조차 없는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 '최저임금 인상 기준 마련' 약속, 실현될까?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르느냐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 있게 싸우느냐에 의해 결정되겠지요.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은 2011년 9만3000원, 2012년 9만5000원 올랐습니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5년 동안 17만9000원 인상됐는데 현대차 노동자들은 2000만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제외하고도 단 2년 동안 18만8000원이 오른 것입니다.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를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시각이 곱지 않습니다. 정부와 보수 언론의 악의적인 왜곡도 있지만 노동 운동이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 더 힘든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3년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 인상을 넘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중소 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데 함께 싸운다면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최저임금 5년 인상액이 대기업 2년 인상액보다 작아
올해는 최저임금을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10만 원 이상은 반드시 인상시킨다고 결의하고 연대하고 투쟁하면 됩니다.
8년을 싸워서 기륭전자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강화숙 씨는 올해에도 최저임금을 인상하기 위한 투쟁에 함께하려고 합니다. 기륭전자를 떠나간 동료들을 위한 싸움이고, 또 다른 수많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위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정택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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