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악화로 내려오게 돼서 죄송합니다. 이 땅의 고통받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송전 철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과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이 9일 정오 무렵 동료와 시민 2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농성을 접고 땅으로 내려왔다. 정리해고 철회와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지 171일 만이다. 한 전 지부장은 걸어서 내려왔지만, 복 수석부지회장은 걷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심각히 나빠진 상태였다.
복 수석부지회장에 이어 철탑에서 내려와 땅을 밟은 한 전 지부장은 "지난해 가을에 올라와 봄에 땅을 밟았는데 여전히 허공에 뜬 기분"이라며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노동자의 절규를 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대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고 내려왔다"고 침통해 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혹독한 추위보다 무서운 건 쌍용차의 외면"
땅에 내려온 한 전 지부장은 "아무 준비 없이 철탑에 올라와 한파에 온몸이 굳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며 "봄이 오니 더 무서운 건 그 혹독한 추위가 아니었다. 길바닥을 떠돌며 일터에 가고 싶다고 절규하는 노동자에게 문을 걸어 잠근 채 대화 한 번 하지 않는 쌍용자동차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한 전 지부장은 "정리해고 철회,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세 가지 요구는 남의 문제가 아님에도 '약속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했다"며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를 바로잡아야 '국민 행복 시대'이자 '대통합 시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쌍용차에 대해서도 그는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쌍용차를 만들려는 진심이 있다면, 쌍용차는 명분과 조건을 내걸지 않는 쌍용차지부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 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프레시안(김윤나영) |
171일 동안 이들은 극심한 불면증과 심폐기능 저하, 자율신경계 이상 등의 징후를 보였다. 한 전 지부장은 "(철탑에) 정상적인 생활을 못할 정도의 진동이 있었고, (철탑에서 나오는 전자파로) 복 부지회장의 혈압 상태가 심각했다"며 "철탑에 오른 다른 두 명(복 수석부지회장과 먼저 내려간 문기주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장)이 아파서 신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쌍용차 철탑에는 15만40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다.
두 노동자의 건강이 악화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둘을 설득한 끝에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두 노동자가 내려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전 지부장 또한 "살아서 싸우라는 따뜻한 시민들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쌍용차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쌍용차 이유일 사장과 마힌드라 파완 고엔카 사장이 대화에 나설 것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조사 약속을 이행할 것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실시할 것 △정부와 자본이 사망 노동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430억9000만 원 손배 가압류를 철회할 것 등을 요구했다.
'먹튀 의혹'에 분향소 철거까지…험난한 길에 놓인 해고자들
고공 농성은 일단락됐지만, 국정조사가 무산되고 마힌드라의 '먹튀'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험난한 싸움을 이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신을 통해 쌍용차에 1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은 지난 2월 800억 원 이상은 투자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꿔 '먹튀' 의혹을 키웠다.
여야는 국정조사 대신 '여야 협의체'를 구성해 5월 말까지 쌍용차 사태 해법을 모색키로 합의했지만, 회사는 해고자 복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구청 또한 지난달 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차 분향소를 약 1년 만에 강제 철거했다.
희망퇴직자 1904명과 정리해고자 159명은 아직도 거리에 내몰린 상황이다.
반면 지난달 쌍용차는 1만2670대를 판매하며 2006년 이후 월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쌍용차는 지금 추세라면 연간 판매 목표인 14만9300대를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쌍용차지부는 쌍용차가 경영 위기 전인 2004년 수준으로 판매량을 회복한 만큼, 해고 노동자들도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탑 농성 해제에 대해 쌍용자동차 사측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기는 어렵지만, (두 해고자가) 오랫동안 농성해서 몸이 상했을 텐데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쌍용차지부를 만나 대화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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