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다큐페스티발 2013 포럼에서 발표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실태 보고'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옮겨본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의 모습이다. 지난 3월 26일 저녁에 인디다큐페스티발 2013의 부대 행사 중 하나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실태 보고' 포럼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독립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배급·상영 관계자들이 참석해 두 시간 반 동안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생활과 제작 환경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청중과 토론 및 질의응답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주관 : 영화진흥위원회, 인디다큐페스티발 2013 집행위원회 ● 사회 : 나두경 (<강정 인터뷰 프로젝트> 공동 연출) ● 발제1 :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 송이 (<행동하는 라디오> 연출) ● 발제2 : 지속 가능한 제작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 김준호 (<길> 연출) ● 토론 : 조세영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연출), 김화범 (인디스토리 제작기획팀장), 이현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
송이 감독은 발제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란 주제로 제작자들의 생계와 작품 활동 양태를 보여주는 결과를 소개했다. 김준호 감독은 '지속 가능한 제작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란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토론 시간에는 조세영 감독이 자신의 영화 제작 경험을, 김화범 팀장과 이현희 프로그래머가 배급과 상영을 비롯해, 전반적인 영화 산업을 둘러싼 구조에 대해 논의했다. 끝으로 참여한 패널들이 객석의 청중의 질문을 받은 뒤 답변하는 형식으로 마무리 토론이 이루어졌다.
여기에서는 참가자들의 발표 내용 중 몇 가지만을 간략하게 옮기고 그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보겠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집행위원회에서 배포한 실태 보고 자료집을 참고하기 바란다.
ⓒACT! 제공 |
많은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 생활과 작품 활동의 경계가 모호한 데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1인이나 소수 인원의 제작 시스템으로 운영하다 보니 제작비 계정과 제작자 개인의 가계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재정적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대부분 제작자(연출자)의 주머니에서 제작비가 나오게 되는데 이는 체계적인 제작비 회계 작성에 방해가 될 뿐더러 작품 활동에 오롯이 몰입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작품 활동으로는 수입을 마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계나 제작비 마련을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 경우 작품에만 집중하지 못해 제작 기간이 길어져서 예산이 늘어나거나, 이슈의 시의성을 놓치거나, 안정적인 제작이 힘들어지는 등 영화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영혼을 파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단지 돈 문제나 생계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대부분 제작자들이 영화를 만드는 활동으로 수익을 낸다는 것에 대해서 '학습된 무력감'을 보이고 있었다. 상업 영화처럼 대박을 노리기는커녕, 하다못해 손익분기점이라도 넘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욕심처럼 보일 정도로 처참한 게 현재 상황이다. 수익을 내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저 어떻게 해서라도 상영을 하고 사람들에게 선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일종의 '사회운동가'나 '예술가'의 태도에 머물게 된 것이다. 수익이 불확실하니 투자가 없고, 투자가 없으니 오로지 제작자 개인이 부담을 지는 악순환. 그 결과 자연스레 기획서의 항목 중 장비 대여료는 적어 내면서도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는 적절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워하고, 품앗이나 재능 기부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건비 없는 활동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통용되다 보니 '지속 가능한' 활동은 갈수록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포럼의 조사에 응답한 제작자들과 포럼 참석자들은 이에 대해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예술인 복지법이나 제작지원센터, 배급지원센터 같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부터 각 제작자가 기획할 때부터 관객을 '개발'하거나 극장을 벗어난 다른 유통 경로를 개발하는 방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제작을 위한 교육을 이행하거나 장비를 제공하는 각종 미디어센터, 독립영화만을 다루는 독립영화 배급사와 전용관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아직까진 그 수나 활동 범위가 모든 독립다큐멘터리 작품을 수용할 만큼 충분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각종 지원 제도나 배급과 상영에서조차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기보다는 이미 경력이 있는 기성 작가에게 유리하다거나 그 안에서도 흥행성의 잣대로 선별되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다시 말해 지금과 같은 지원 제도의 양적 확대만을 주장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독립다큐멘터리 세계에서도 소외받는 누군가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 제작자들이 그동안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하다가 정작 다 만든 뒤에 관객과 만날 기회를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품 기획 단계부터 관객층을 세밀하게 고려하고 발굴하는 것과 동시에 제작과 상영 단계에서 함께 움직일 단체와 관계를 맺는 등 연대의 차원에서 고민을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이다.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공동체 상영과 작고 다양한 영화제의 활성화가 그 해답이 되리란 건 분명하다.
그리고 팟캐스트 방송의 활성화 이후 다양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참고해 기존 극장과 영화제 위주의 배급 경로를 벗어나서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배포도 고려할 법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크라우드 펀딩과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온라인을 이용해 누리꾼이 자발적으로 홍보하도록 만드는 마케팅 기법)을 동원한 입소문 홍보를 통해 잠재 관객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닌다면 지금보다 훨씬 폭넓고 친밀한 배급이 가능할 것이다.
▲실태 보고 포럼 현장. ⓒACT! 제공 |
이번 포럼에서 아쉬웠던 점은 조사 방향이 제도와 재정적 문제에 집중되다 보니 제작자 네트워크의 역할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게 언급됐다는 것이다. 개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행해지는 각종 지원 제도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도 지원금 출처에 따라 작품의 방향이 달라지는 현상을 낳는 자본의 영향과 자기 검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신진다큐모임(신다모)이나 다큐멘터리작가네트워크(다작네) 같은 독립 제작자 모임이 존재하고 적지 않은 수의 구성원들이 활동 중이지만, 아직은 개인 역량에 따라 관계가 형성되는 사적 네트워크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향후 체계와 방향성을 갖춰 제작자에게 정서적 지지를 넘어 대안적 정책과 지원까지 제공하는 허브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외부에서 맨땅에 헤딩을 하며 작업하는 1인 제작자까지 아우르는 안식처와 인큐베이터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독립영화와 독립다큐멘터리 앞에 붙어 있는 '독립'이란 말은 자본과 권력 같은 외부의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발언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적지 않은 제작자들이 여러 지원 제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생계나 제작비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그 어떤 지원도 아무런 대가나 영향 없이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령 어떤 영화제가 프리미어 상영을 위해 지원 제도 수혜자들에게 작품 편집을 재촉한다면? 혹은 특정 기업의 후원으로 만든 영화가 그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그 어떤 경우에도 돈의 근원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원래 의도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지원 제도를 이용하는 제작자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이 모든 일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면 언젠가 누군가는 '영혼을 파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각종 지원 제도의 범위와 규모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는 공공성을 띤 지원 제도를 확충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돈 걱정을 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창작자를 위한 복지 제도 마련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언제까지 선의와 대의에만 기대어 움직일 수 있을까. 언제까지 헝그리 정신으로 달리며 '난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버틸 수 있을까. 이번 실태 조사가 이 땅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하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 그래야만 그들이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속 사람들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더 영리하게 준비해서 매 작품을 만들며 겪는 소중한 체험이 다음 작품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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