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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날을 늘리자는 조상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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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날을 늘리자는 조상님 말씀

[다산 칼럼]<7>

유관(柳寬, 1346-1433)은 고려 충목왕 2년에 태어나 조선 세종 15년에 88세로 세상을 떴으니, 평균수명이 한참 늘어난 요즘으로 쳐도 장수한 축에 들 것이다. 우의정까지 지냈으니 출세도 할 만큼 했고, 황희(黃喜)·허조(許稠)와 함께 세종조의 명재상으로, 또 청백리로 이름이 났으니 후대의 평가도 후한 편이다.

『세종실록』은 후대의 『실록』과는 달리 읽을 때 마음이 좀 편하다. 조선조 5백년을 돌아보건대, 그때처럼 나라가 건강하고 백성의 살림이 넉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태평성대라 하겠다. 흥미롭게도 유관은 늘그막에 태평성대에 꼭 어울리는 건의를 하나 올리고 있다. 무엇인가?

세종시절, 태평성대를 일깨워 준 현명한 재상의 말 한마디

우의정을 마지막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난 유관은 세종 11년(1429) 8월 24일 한 통의 상소문을 올린다. 요지는 3월 3일과 9월 9일을 영절(令節), 쉽게 말해 아름다운 계절을 대표하는 날로 삼아 그날 즐겁게 놀자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3월 3일과 9월 9일 한번 마음 푹 놓고 먹고 마시고 놀 터이니, 임금이 그날을 아주 공휴일로 지정해 달란다. 정말 괜찮은 건의다!

상소문은 3월 3일과 9월 9일을 즐겁게 노는 날로 정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당나라와 송나라 그리고 고려에서 전례를 찾고 있다. 이런 내용이 상소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놀 만한 사유가 충분하니 한번 놀아보자는 것이다. 상소문의 중요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우리나라의 인정(仁政)의 혜택을 입은 저 섬 오랑캐는 바다를 건너 와 보물을 바치고, 산융(山戎)은 가죽옷을 입고서 우리 조정을 찾아옵니다. 변방에는 창과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사라졌고, 백성들은 이리저리 달아나는 고생이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오곡도 모두 풍성하게 여물어 온 백성이 함께 즐거워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룩한 태평성대는 저 당나라, 송나라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이 늙은 신하는 한가롭게 지내며 옛일을 더듬어 지금 일에 비추어 보고서, 오늘날이야말로 선비는 학교에서 농부는 들판에서 노래하며, 태평성대를 즐기기에 꼭 알맞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밝게 살펴 주소서."

섬 오랑캐는 일본이고, 산융은 여진족이다. 세종 때는 외교가 안정되어 일본과 여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조공을 바쳤다. 경제력도 충실했다. 대마도와 여진을 정벌하는 전쟁을 일으켰어도 나라 살림에 별반 축이 나지 않았다. 온갖 문화 사업을 활발히 벌였지만, 그 역시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가 나는 일이 아니었다. 유관은 나라 형편이 이렇게 좋으니 좀 놀잔다.

세종은 또 어떤 임금인가. 유관의 말을 들어보니 참 그럴 듯하다. 그래서 3월 3일과 9월 9일을 명절로 정하고, 그날 높고 낮은 벼슬아치는 물론 서울과 지방의 선비, 백성들로 하여금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흥겹게 놀도록 하였다. 그렇게 노는 것이 태평성대라는 증거라면서 말이다. 정말 감동스럽다. 세종은 역시 성군이다!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딛고 희망을 노래하자

그런데 오늘의 우리 삶은 어떤가. 직장인들은 1년에 열흘도 안 되는 휴가를 전투 치르듯 한다. 한 해 몇 날 있는 명절도 아수라장이다. 온갖 교통수단을 동원한 무한한 인내심과 체력을 요구하는 필사적 귀향, 부모·형제와 며느리·동서·올케 등이 빚어내는 가족의 불화, 급상승하는 이혼율, 이것이 과연 축제로서의 명절인가!

세종 시절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수십 배는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삶은 이처럼 팍팍할까? 휴가도 명절도 지옥도(地獄道)가 되어버렸다. 일에 중독되어 삶을 완전히 소진시켜야 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득실거린다.

어느 날 태어나 어느 날 문득 떠나는 것이 인생이다. 실학정신이 뭐 별거더냐? 이 세상 편하고 즐겁게 살다 가자는 거지. 노는 날 늘리자는 유관의 말을 곱씹으며 한 번 생각해 보자. 좀 더 편하고 즐거운 사회는 어떻게 만들것인지. 며칠 뒤면 추석이로구나!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포럼'(www.edasan.org) 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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