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은 어느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화합, 소통의 장이 되는 행사로 기념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사회 만들기',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일부 장애인들은 행사에 참여해도 밥도 안 주고, 선물도 없다며 불평을 하지만, 이러한 행사를 통해 비장애인들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인식하고 장애인들은 가족들, 이웃들과 어우러져 행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15년째 장애인 복지 쪽에서 일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개선되고는 있으나 장애인의 눈, 장애인 복지 현장의 눈으로 보면 아직도 갈 길이 참 멀다. 내가 현장에서 느낀 몇 가지 실태와 문제점을 적고자 한다.
장애인 활동 보조, 계속 오르기만 하는 본인 부담금
우선 장애인 복지에서 요즘 많이 논의되는 것이 활동 지원 제도이다.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는 2007년 중증장애인 활동 보조 사업으로 시작한 이래 2011년 10월부터 자리 잡았다. 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새 2년이 되어간다. 요양 보호 제도와는 달리,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는 가족 보호를 할 수 없다.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데 가족들은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전염성 질환을 겪거나 도서 산간 지역에 산다는 어려움을 인정받아야 가족 보호가 가능하다.
2011년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화를 준비하면서 국민연금관리공단, 보건복지부는 활동 지원 서비스 이용자를 3만5000명에서 5만 명으로 확대하겠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까다로운 인정 조사 때문에 실제 이용자가 기대했던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제도화 이후 처음 유효 기간을 앞두고 있으며, 갱신 절차에 따라 인정 조사가 새로 실시되고 있다. 제도화 이후에 한 번 수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화가 되면서 수가도 8000원에서 8300원으로, 2013년 2월부터 8550원으로 인상되었다. 그런데 수가 인상과 더불어 활동 지원 서비스 이용자의 본인 부담금도 인상되었다. 기본 급여와 추가 급여에 따른 각각의 본인 부담금 산정액이 최대 월 12만 원이 넘는다. 예전 장애인 활동 보조 사업의 본인 부담금이 최대 4만 원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최대 3배 인상된 것이다.
그래서 본인 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활동 지원 서비스 이용을 포기한 장애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본인 부담금보다 더욱 많은 비용을 나라에서 부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해마다 수가 변동에 따른 본인 부담금 인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호자가 나이가 들수록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는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보호자를 대신해서 병원을 다녀오고, 식사를 챙겨주고, 생활을 도와주는 활동 보조 서비스는 장애인의 노부모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서비스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서비스 전달 체계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다. 서비스 이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충실히 해야 하고, 서비스 제공자(활동 보조인)에 대한 처우 개선도 시급하다.
고령화 시대, 노인 장애인에 대한 종합적 접근 필요
고령화에 따른 문제가 장애인 복지 현장에도 밀려오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그 속도도 매우 빠르다. 고령화는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시대적 과제다. 고령화는 곧바로 건강의 문제를 낳는다.
고령화에 따라 노인 수가 늘어나면서 관절 문제, 혈액 순환 문제 등 건강상의 이유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릎 관절 수술을 하면 지체 장애인이 되고 뇌졸중으로 쓰러지면 뇌병변 장애인이 된다. 선천적으로 혹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이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여야 한다. 기존의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아동과 청장년층에 집중해 있었다면, 다행히 지금은 점차적으로 노인층으로도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취미 활동 프로그램, 재활 프로그램, 자조 모임 등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양과 질이 부족하다. 고령화 시대 장애 노인 복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인 장애인 보호자의 고령화 문제
한국에서 장애아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자신의 아이가 어느 정도 발달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시기에 따라 적절한 치료와 교육이 진행되도록 코치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우울증, 대인 기피증, 허리 디스크 등 심리적·신체적인 어려움까지 겪는다.
보호자는 장애 아동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도 자녀를 위한 주간 보호 프로그램, 직업 재활 프로그램, 생활 시설에 대한 정보 등을 알아보고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뒷받침과 결정을 해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생활 시설은 무연고자이거나 기초 생활 수급자인 경우에 한해 나라에서 운영하고, 사설로 운영되는 생활 시설은 비싼 이용료를 내야 하므로 고령화된 보호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 그래서 직업 자활 쪽에서 자립하지 못한 대부분의 성인 장애인은 집에서 노부모와 함께 소일거리 없이 무료하게 일상을 보내게 된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제 몫을 하려면 성인 장애인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져야 한다.
▲ 장애인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강원도 교육청 내 카페 '모두'. 사진은 카페에서 실습 중인 춘천동원학교 학생들. ⓒ연합뉴스 |
장애인에게도 일자리를!
장애인에게도 일자리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사회적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 계층(저소득자, 고령자, 장애인 등)에게 일자리 또는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 발전과 공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저소득자를 중심으로 지역 자활 후견 기관을 통해 발전해 오던 사회적 기업이 요즈음 장애인 영역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현재 나는 장애인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훈련하는 서비스업 분야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있다. 정해진 매뉴얼을 숙지하여 커피를 만들어내는 바리스타 업무는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인에게 꿈을 실현하는 직업 자활의 영역일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액센츄어 장애인 바리스타 대회'를 2회 치렀는데, 공식적인 대회를 계기로 각 기관이 여가 문화 활동과 직업 훈련으로 있던 바리스타 수업들을 좀 더 체계화할 수 있었다. 나아가 대회는 장애인 사회적 기업, 직업 자활 현장으로 커피 전문점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장애인 사회적 기업은 단순히 커피 판매만이 아니라 이들을 상담하고 교육, 관리하여 적정한 매출이 오르도록 매장 관리까지 해야 하는 녹록하지 않은 작업들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쇄도하는 가운데 장애인 바리스타가 활동할 무대가 좁아지는 것을 염려하기보다는, 커피 전문점들이 많으니 장애인 바리스타가 활동할 영역이 더욱 많아졌다고 생각하여 장애인 바리스타 양성에 힘쓰고자 한다.
장애인의 날 '기념' 대신 '결의'로
매년 장애인의 날을 맞는다.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이날의 의미가 남다르다.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조금씩 일이 나아지는 것을 보는 자부심도 있지만 좌절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우리 모두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그래서 난 다짐한다. 장애인의 날은 '기념'만 해선 안 된다고. 장애인의 날은 우리가 넘어야 할 높은 산들을 꼭 넘어가자는 '결의'의 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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