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씨는 1년째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3일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가 파업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당시 임직원 199명 가운데 92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아직도 매일 70-80명이 투쟁하러 회사로 나온다.
다른 파업 참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1년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좋아하던 커피도 끊어야 했다. 주변에는 사무직 여직원들 한 무리가 커피를 들고 벚꽃이 핀 거리를 지나갔다. 송 씨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와 친언니와 오피스텔을 구했던 그는 파업이 길어야 한 달, 아무리 길어도 석 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 1년이나 갈 줄은 모르고 계약을 연장한 오피스텔 월세가 60만 원이었다. 가족들에게 번번이 손을 벌리기 미안하다. "계약 끝나면 이제 다른 집 알아봐야죠."
▲ 송현지 씨 ⓒ프레시안(최형락) |
외국 투기 자본 뒤에 들어온 '노동 운동가' 출신 회장
송 씨가 골든브릿지투자증권(당시 브릿지증권)에 입사한 때는 2004년 7월이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좋아서"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셨다. 그의 연봉은 4200만 원. 금융계치고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먹고살기 부족한 금액도 아니었다.
불행히도 송 씨가 입사한 해는 영국계 사모 펀드인 BIH(브릿지 인베스트먼트 홀딩스)가 회사를 '먹고 튀려던' 즈음이었다. 회사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직원들이 '먹튀 방지' 싸움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외국계 투기 자본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유상 감자를 통해 투자 자금 2200억 원을 회수하고도 1000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50개가 넘던 지점이 20개 이하로 줄었다. 남은 직원들은 당황스러웠다.
외국계 자본이 녹록지 않다고 깨달을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현 이상준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 운동을 했으며, 사무금융노조의 전신인 전국보험노조연맹 홍보국장을 지냈던 이력을 노조 측에 내세웠다. 이 회장은 노조 측에 '노사 공동 경영(ESOP : 우리 사주 신탁 제도)'을 제안했다. 노조는 "노동 운동가 출신으로 노동자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던 이 회장을 받아들였다. 송 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이제 회사가 잘 풀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금융위 "골든브릿지증권, 회삿돈 빼돌려 계열사 불법 지원"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이 깨졌다. 조짐은 이전부터 있었다. '노사 공동 경영'을 위해 인수 당시 50억 원을 출연한다는 약속은 3년 뒤에나 이뤄졌다. 인사 이동을 둘러싸고도 노사 간 소소한 충돌이 있었다. 송 씨는 "대구 사는 사람을 회사가 부산으로 보내서 반발하니, 회사는 노조가 너무 간섭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직원들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계열사 부당 지원'이다. 경영진이 모회사인 골든브릿지 그룹에 수십억 원을 부당 지원해 부실 계열사인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을 지원하도록 도왔다. 노동조합은 "회삿돈을 빼돌려서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맞섰지만, '경영에 간섭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임직원들은 허탈해 했다. '노사 공동 경영'은 말뿐이었다는 것이다.
부당 지원을 둘러싸고 노사 공방이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17일 금융위원회는 골든브릿지증권에 '계열사 불법 지원'을 이유로 과징금 5억7200만 원을 부과했다. 파업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회사 측은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송 씨는 회사의 '부실 경영'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압구정 지점에서 5년간 일했다가 강남 지점으로 갔는데 회사가 점포를 폐쇄했다"며 "이 회장이 사업을 벌이면서 차린 '금융 판매 회사'에서 손실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지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오전 7시 반까지 출근해서 새벽 1-2시까지 수당이나 대체 휴가 없이 일하는 날이 잦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묵묵히 일했다.
▲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로비 앞 사무실의 빈 책상들. 파업 초기 노조원들은 사무실 출입을 두고 용역 직원들과 대치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사 공동 경영' 파기하고, 창조컨설팅과 계약?
'노사 공동 경영'을 먼저 파기한 쪽은 사측이었다. 2011년 10월 회사는 노동조합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노조가 단협을 이유로 인사와 경영권에 관여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는 "정리해고 시 합의한다"는 단체협약 문구를 "협의한다"로 바꾸자고 했다. 노조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 결국 노조는 지난해 4월 파업에 들어갔다.
사측이 '노조 파괴 전문 노무법인'으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노조가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송 씨는 "돌이켜 보니 공격적으로 파업을 유도하고 용역을 투입한 과정이 유성기업 등 창조컨설팅이 투입된 다른 사업장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가 일부러 파업을 유도한 것도 창조컨설팅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회사 관리자들이 감사팀, 재무팀 등 비밀 관리 유지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 공문을 보낸 것도 도마에 올랐다. 급기야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지난해 11월 회사가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 파괴'에 나선 정황을 포착해 부당 노동 행위 혐의로 골든브릿지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파업 이후 소송전도 본격화됐다. 노조는 지난해 8월 이상준 회장과 남궁정 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노조는 이 회장이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것 외에도 회삿돈 수십억 원을 들여 사모 펀드를 조성해 제주도 리조트를 샀고, 이 리조트를 이 회장이 개인 자택으로 쓰고 있다고 고발했다. 노조는 또한 이 회장이 모친에게 회사 법인 카드를 쓰게 했다며 이 회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외국계 투기 자본 피했는데, 국내 자본도 답 없다"
송 씨의 하루는 회사 앞 천막 농성장에서 시작했다. 회사 앞은 조합원 60여 명으로 가득 찼다. 부장급부터 막내 사원까지 다양했다.
김호열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지부장은 19일 천막 농성장 앞에서 "금융감독원이 사측을 중징계하기로 한 원안을 통과시켰다"며 "이 회장이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고용 안정, 근로 조건 보장도 없다. 경영진·대표 이사·회장까지 기소·처벌되는 회사를 누가 우호적으로 보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송 씨는 일정표를 받았다. 천막 농성장, 5층 사무실 앞, 로비 앞을 차례로 지켜야 한다. 송 씨와 함께 5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타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송 씨는 "방금 탄 사람이 인사 경영 관리자"라며 "내가 내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니 나가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송 씨는 "법적으로 파업 중인 직원이 자기 사업장에 들어갈 수 있는데도, 회사에서 못 들어가게 했다"고 토로했다.
송 씨를 따라간 5층 사무실과 로비 앞 복도에는 큰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손팻말을 든 송 씨가 자리 잡는다. 그는 "우리 보기 싫다고 얼마 전부터 회사가 복도 양옆을 화분으로 다 막아 놨다"고 설명했다. 피켓 시위를 하는 직원들은 저마다 책을 읽거나 휴대 전화로 웹서핑을 했다. 송 씨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책을 꺼내 들었다. "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본사 5층 복도 양옆에 놓인 화분들. ⓒ프레시안(최형락) |
▲ 송현지 씨는 "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파업하는 동안 회사에서 받은 상처도 많다. 용역이 투입돼 들려 나간 기억도 있다. 송 씨는 "얼마 전까지 하루 종일 같이 일하고 같이 점심 먹고 같이 생활하던 직원을 쫓아내고 용역을 투입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아찔하던 순간도 있었다.
"지난해 7-8월까지는 회사가 검정색 정장 차림의 용역 20-30명을 투입해서 조합원들을 들어냈어요. 6월쯤 로비에 있는 영업부서 정수기에 물 마시러 갔는데 용역이 막았어요. 용역이 들어가려는 조합원을 때리려고 쇠로 된 날카로운 무기를 손에 차는 거예요. 다행히도 (무기를) 꺼내다가 걸려서 우리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누가 그 쇠 무기에 맞았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파업 초기에는 동료들이 미행을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몇몇 조합원들이 회사 맞은편 봉고차 안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발견했다. 쫓아가 사진을 보니 조합원들이 퇴근하는 사진, 회의하는 사진은 물론이고 담배 피우는 일상까지 다 찍혀 있었다고 했다. 노조 간부들이 서울 불광동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실에 가는 모습도 있었다. 노조는 사진 찍은 사람을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사진을 유포하지 않으면 합법"이라고 했다.
파업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서명한 임직원들에 대한 '부당 징계'도 구설에 올랐다. 회사가 지점장급 직원에게 4개월 이상 지하 창고에서 근무하게 하고 반성문 쓰기를 종용했다. 송 씨는 "회사는 징계한 사람들 일부를 전화, 컴퓨터도 없이 책상만 있는 지하 창고에 가둬놨다"며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회장이 노동 운동가 출신이라 회사가 잘될 줄 알았는데, 외국계 '먹튀' 자본이 아니라 국내 자본이라 나을 줄 알았는데, 국내 자본도 답이 없어요."
▲ 골든브릿지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돌아가며 로비, 5층 사무실, 천막 농성장을 지킨다. ⓒ프레시안(최형락) |
"다리는 이미 무너졌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야죠"
오전 10시에 모이는 노동조합 일정은 매일 오후 4시 반에 끝난다. 문화제가 있으면 밤 9-10시까지 일정이 빼곡하다. 그동안 다녀본 파업 사업장도 많다. 쌍용차 평택 공장, 재능교육, 코오롱,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부산 한진중공업도 갔다. 장기 파업 사태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영업 직원들도 영업 전단지 돌리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싫어했는데, 지금은 다들 전단지의 달인이 됐어요. 부장급 직원도 '경영 정상화'를 알리는 전단지를 시민들한테 돌려요. 한번은 같은 금융계가 몰려 있는 여의도에서 전단지를 돌렸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섭섭해 했더니 부장님이 그러는 거예요. '우리도 옛날엔 그랬다.'"
송 씨는 "쌍용차 앞에서 장기 파업이라고 말도 못하지만, 파업 1년도 길다"며 "가정이 있으신 분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밝아보여도 속은 다 문드러져 있어요. 한 번 터지면 줄줄이 눈물이에요. 가정 문제나 경제 문제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내한테 이혼을 요구받는 남편도 있고, 집에 가면 아이들이 아빠와 눈을 안 마주친대요. '예전에는 정장 입고 출근했는데, 아빠는 왜 등산복 입고 나가?'라고요. 백일 된 아이 두고 파업 현장 나온 아이 엄마는 젖도 못 뗀 아이가 눈에 밟혀 울었어요."
송 씨는 "처음 파업을 시작했을 때 1년까지는 참아보자 했는데, 막상 1주년이 눈앞에 닥치니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주위 시선도 곱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티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고, 경영진의 비열하고 악질적인 모습을 보고서 어느 회사에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송 씨의 하루가 저물 무렵, 회사 앞에는 "약속이 깨지면 다리(브릿지)가 무너집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그는 "다리는 이미 무너졌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감시·감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도 공공적인 원리로 운영돼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국계 투기 자본의 탐욕도, 계열사 부당 지원도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못했어요. 검찰도 금융위 결과가 나오니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움직이고 있어요.
저희 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빨리 파업을 끝내고 회사를 정상화하고 싶어요. 회사만 잘 살리면, 경영진이 회삿돈만 안 빼돌리면 잘 클 수 있는데, 일터로 복귀해서 다시 잘해보고 싶어요. 좋은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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