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 논란을 빚었던 '사이버정보공유법안'(CISPA)이 미국 하원에서 18일(현지 시각) 통과됐다. 백악관이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히면서까지 우려를 표했던 법안이 이제 상원으로 넘어가면서 사이버 안보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CISPA는 18일 하원에서 찬성 288명, 반대 127명으로 통과됐다. 이에 앞서 백악관은 16일 "국민들은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적절히 보호하지 못할 경우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게 될 것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법안 통과를 우려했다. 그러나 18일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92명은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CISPA는 미국 정부가 사이버 보안 위협이 있을 때 민간 기업들이 보유한 자료를 제약 없이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다. 지난해 처음 제출된 이 법안은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사전 동의 없이 국가 기관에 제출될 수 있다는 거센 항의를 받고 폐기됐지만, 이 법안을 공동 발의했던 공화당의 마이크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과 민주당의 더치 루퍼스버그 의원은 지난 2월 수정안을 제출했다. (☞ 관련 기사: 이메일·페이스북 정보가 미국 정부 손아귀에?)
인터넷 자유를 지지하는 미국 시민단체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안전보장국(NSA)과 같은 군 관련 기관이 개인의 정보를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어 사생활이 크게 침해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 '파이트 포 더 퓨처'가 주도한 온라인 청원 운동에는 3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참여해 법안에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또 사이버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 자체는 인정하더라도, 기업이 국가 기관에 자료를 제공하기 전 개인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미리 삭제하는 등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회는 시민단체들의 이러한 항의를 무시한 채 밀실에서 법안을 만들었으며, 사생활 보호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파이트 포 더 퓨처'의 공동 설립자 홈스 윌슨은 밝혔다.
반면에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특히 중국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는 사이버 보안 위협 증가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저스 정보위원장은 "우리는 이 국가를 수호할 헌법적 의무를 갖고 있다"며 "이 법안은 이 국가를 방어하고 민간 기업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도록 사이버 정보 공유를 강화하기 위한 정답이다. 중국에 경고를 보내길 원한다면,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했다.
루퍼스버그 의원도 18일 해마다 미국 기업의 영업 비밀이 누출돼 입는 손해가 약 4000억 달러에 달한다며 "집에 강도가 들었을 때 911에 전화해 경찰을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이 법안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마이크 맥콜 의원은 지난 15일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과 사이버 테러를 비교하면서 법안 통과에 초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반면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CISPA가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크게 무너트릴 것이라며 하원이 개인 정보 보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점에 대해 실망의 뜻을 표했다.
<가디언>은 이러한 법안이 고객들의 개인 정보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IBM과 같은 기업들이 CISPA를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안이 시행되면 기업들은 사이버 보안을 위해 노력하는 한 실제 해킹 피해를 봐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 고객들이 개인 정보 유출을 이유로 기업을 고소할 근거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IBM과 마찬가지로 방대한 개인 정보가 있는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현재까지는 법안에 반대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ISPA의 하원 통과는 법안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로비도 한몫했다. 선라이트재단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CISPA를 지지하는 이해 집단의 로비액은 2011년부터 2012년 3분기까지 6억500만 달러에 달했다. 430만 달러를 쓴 법안 반대 진영보다 140배나 많은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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