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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에 더 집착하게 한 그것에 한국 매몰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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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에 더 집착하게 한 그것에 한국 매몰되나

[정전 60주년, 평화를 선택하자] <9>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역설적인 이 말은 오랫동안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번번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한국의 역사는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했으며, 허약한 군사력으로는 안전과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믿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우리 이외에는 적 혹은 잠재적 적으로 보는 시각을 낳았고, 이미 수년 전에 경제력으로나 군사력으로나 세계 10위권에 도달한 오늘날까지 힘 키우기를 지속하게 했다.

적(敵)과 아(我)의 이분법 속에서 군비 경쟁이 시작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협으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와 군사 행동을 증대시키면, 다른 한쪽도 마찬가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같은 행동을 취한다. 군비 경쟁은 충돌로 이어지고 또다시 군비 경쟁이 과열된다. 선후가 어느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지만 군비 경쟁은 서로 부추기며 반복된다. 그 결과는 더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는 것으로, 즉 더 파괴적이고 더 광범위하게 살상하기 위한 전쟁 준비로 나아간다.

이는 단순히 군사적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정치적·경제적 필연성이 깔려 있다. 통치자들에게는 전쟁 준비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통치 전략이면서 안정적인 경제 전략이다. 그래서 통치자들에게는 적, 위협 혹은 악(惡)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 문제,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한국과 북한의 상호 공격 위협 문제 등에서 나타나는 군사적 행위들은 통치자들의 정치적 행위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등으로 한국은 위협을 맞이했다. 선제타격과 적극적 억제 전력 등 공격적 전략들이 발표되고 추진됐다. '북한 현존 위협 대비', '전면전과 미래 잠재적 위협 대비 전력 보강', '대양 해군', '전작권 환수 대비' 등의 과제들로 표현되는 전력 사업들은 공격적인 전력 투자일 뿐만 아니라 방대하기도 했다.

이 일환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무기 도입 사업들의 핵심은 일련의 공격형 첨단 무기들을 새로이 갖추는 것이다. △육군 차원에서는 차기 전차(K-2) 개발, 기동 헬기 개발, 대형 공격 헬기 구매 및 소형 공격 헬기(KAH) 개발, 차기 다련장로켓(MLRS) 개발, 지대지 탄도미사일 개량과 증강 △해군 차원에서는 이지스함, 차기 구축함(KDX), 차기 잠수함(KSS-Ⅲ), 차기 호위함, 차기 상륙함, 상륙 기동 헬기, 해상 작전 헬기 등의 개발과 획득 △공군 차원에서는 차기 전투기(FX), 한국형 전투기(KF-X), 정밀 유도 폭탄,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등의 개발 및 도입으로 무기들을 새로 바꾸게 된다.

북한의 종심을 향한 응징 보복과 정밀 타격 전력에 포함된 사업들은 방어 수준을 넘어 강력한 공격 능력을 추구한다. 게다가 전면전과 잠재적인 미래 위협까지 거론하는 것은 지나치게 대립을 부추긴다. 이미 한국 육군의 군사력은 세계 3~4위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로 막강하며, 해군력과 공군력도 북한보다 월등히 강하다. 그럼에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에 부족하다며 끊임없이 무기를 개발하고 도입하려는 것은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세계 12위의 국방비 지출 국가이며 20년간 누계 군사비는 북한 대비 9.2배에 이르지만, 한국은 방어를 위한 적정 수준의 군사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검토 노력은 진행하지 않으면서 매년 국방비를 인상해 왔다. 2013년의 국방비는 34조3453억 원이다. 또한 한국은 세계 4위의 무기 수입 국가다. 대형 무기 구입 사업들은 늘 추진됐다. 현재 공군의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8조2905억 원), 육군의 대형 공격 헬기 도입 사업(1조8384억 원), 해군의 해상 작전 헬기 도입 사업(5538억 원)이 기종 선정 과정 중이다. 이 사업들은 원래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이던 2012년에 무리하게 계약을 마무리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다소 늦추어졌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장시간에 걸친 신중한 절차와 평가가 필요함에도 초고속으로 진행되다 덜미가 잡혔다. 한국은 외국의 무기 군수 업체에 '큰손'이기만 하다.

또한 한국은 전차, 자주포, 다련장로켓, 헬기, 전투기, 구축함, 호위함, 잠수함, 미사일 등 거의 모든 무기 체계를 국산 개발하고 있다. 국산 개발에 착수하면 각종 부품과 장비를 생산해 내야 하기에 수많은 업체와 공장이 가동된다. 첨단 무기의 국산 개발 계획은 기술 도달 가능성, 경제적 타당성 등이 사전에 면밀히 검토돼야 하지만 대부분 입안되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추진됐다. 국산 개발은 군으로서는 일정량 이상의 무기를 반드시 사야 하므로 예산을 많이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득권 유지 수단이 되고, 업체는 국가 예산을 받으므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산 개발은 단 1개 부품의 개발 차질만 생겨도 많은 공정에 영향을 끼친다. 차기 전차 K-2의 개발을 보면, 파워팩 생산에 문제가 계속 발생해 개발이 상당 기간 지연됐고, 추가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결국 독일제를 수입하기로 결정됐다. 부품 개발에 실패하거나 하자가 발생하면 개발 지연으로 부품 생산 업체들의 연쇄 도산 가능성도 낳을 수 있다. K-2 전차의 부품을 만드는 업체는 1400개, 이 중 파워팩 관련 업체는 300개였다. 이에 따른 추가 예산 지원은 항상 세금으로 메워왔다.

▲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2009 서울 국제 항공 우주 및 방위 산업 전시회' 프레스데이 행사 당시 전시된 육군의 차세대 전차 K-2 흑표. ⓒ연합뉴스

또한 국산 개발은 부실과 비리의 온상이기도 했다. 80~90% 국내 기술로 개발된다는 식으로 홍보하지만 부품 및 설계 결함이나 하자가 발생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군과 업체가 결탁한 비리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2011년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만 14개 업체, 319개 사업, 8280억 원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이 확인됐다.

한국의 무기들은 이미 북한보다 질적으로 월등히 앞서는데도 막대한 비용 부담을 하면서까지 계속해서 고성능의 고가 무기들을 새로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무기 수출과 관련이 깊다. 한국 정부는 현재 17위의 무기 수출을 2020년까지 세계 7위까지 올린다는 목표로 분쟁 지역에 맞춤형 무기를 판매하겠다는 국정 목표를 상정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방위 산업 진흥' 예산에 무기 수출을 위한 예산이 책정됐다.

이러한 한국산 무기 수출은 방위 산업체를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자주포, 장갑차, 탄약 등이 수출됐으며 개발을 완료했거나 개발 중인 자주포, 전차, 헬기, 훈련기, 함정을 비롯해 각종 무기를 수출하려고 로비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수출 가능성으로 한국 무기 산업의 장래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무기 생산을 과도하게 산정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훈련기 등 많은 수출 실패 사례에서 보듯 세계 유수의 무기업체와 경쟁해 입찰할 수 있을 만큼 수출 가능성은 밝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군사 부문의 지출이 다른 부문들에 비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평균적으로 일자리 창출은 훨씬 적다는 통계가 많다. 같은 예산을 투입하면 군사 부문보다 대체 에너지 분야는 10배, 교육 분야는 2배, 보건 분야도 1.5배 이상 그 수준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로서 국제 평화를 추구하는 헌법을 갖춘 대한민국이 무기 수출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그리고 국가 전략으로 바람직한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한국이 무기 수출 대상 국가로 삼고 있는 나라들에는 터키, 인도네시아, UAE,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분쟁국이거나 소수 민족을 탄압하고 있는 국가들이 포함돼 있다.

한국의 이러한 방향은 적들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전략을 따라가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경제적·군사적 승자로 등극한 미국은 소련과 냉전을 하는 중에 자유 세계의 수호자라는 지위를 부여받았고 산업과 군사 기구가 급성장했다. 그 속에서 영구적인 군비 경제가 창조됐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군사 관련 연구가 고무됐고, 군수 산업은 미국을 구매자로 삼는 상품을 생산했다. 이 산업은 경기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를 창출할 수 있었고, 독점 군수 산업체들은 자동으로 이윤을 보장받았다.

그렇게 탄생한 군산복합체는 미국을 전능한 초강대국으로 유지하는 핵심 기구가 됐다. 오늘날 세계 군사비의 절반 가까이 미국 혼자서 지출하며,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2가 쓰는 만큼의 에너지를 미군이 쓰고 있다. 120여 개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고, 7000명의 정부 공무원이 정식 외교 업무로 무기 판매와 관련한 일을 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냉랭한 말처럼 자유로운 산업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주먹'은 '미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이 민주주의를 질식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나 미국은 자본주의의 협박꾼이었음을 고백한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 베트남전 반전 운동 등 군사적 제국주의에 대해 성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44년에 존 플린이 <우리가 행진할 때>에서 "미국은 영구적인 위기 상태를, 사실상 영구적인 전쟁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분석한 바 있었다. "우리에게는 적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 적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제적 필연성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그의 예지는 오늘날 더욱 적절하게 들린다. 미국은 양극의 냉전이 끝난 1992년 이후 10년 동안 세계 군비는 50%가 줄고 미국의 군비도 28%가 줄어드는 사태를 목도했다. 군비 감축 경향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이슬람 근본주의가 유포됐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10년 동안 급감하던 세계의 군사비를 다시 급격히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시아 회귀'에 앞서 '중국 부상'이 유포됐다.

적들이 필요한 전략은 군비 경쟁을 가속화한다. 군비 경쟁에 따라 수많은 무기 사업들이 도입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재정적으로 방만함에도 이는 모두 세금으로 감당해야 한다. 이지스함의 경우, 1척 건조비만 1조 원에 무장비가 2000억~3000억 원에 달한다. 레이더 출력 용량으로만 3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발전 용량이 들어간다. 게다가 모든 장비가 최첨단 무기이기에 유지하고 정비하는 일에 많은 비용이 수반되고, 고도로 숙련된 운용 기술과 정비 기술이 필요해 교육·훈련 비용도 엄청나다. 현재 한국은 3척의 이지스함이 있지만 3척을 더 건조할 계획이다. 미국이 오래전부터 직면한 가중되는 적자와 부채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이 그 원인 중 하나였다.

군비 경쟁은 첨단 무기 몇 개를 운용하겠다고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는 쪽으로 더욱 가게 할 것이다. 대신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에 대한 투자다. 이는 기술의 진보일지는 몰라도 인류의 진보일 수는 없다. 상대방도 똑같이 첨단 무기로 대응하려고 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비대칭 전력이 될 만한 핵이나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에 더 집착하게 할 것이다. 북한이 핵에 더욱 집착하는 것은 바로 군비 경쟁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게다가 현대전이라는 오늘날의 전쟁은 가공할 무기들에 의한 공멸이라는 결과를 내포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벌인 전쟁으로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졌는지를 본다면 강대국이 약소국에 벌인 전쟁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됐다. 군사 강국끼리 맞붙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는 역설을 넘고 반복되는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끊을 해법은 단순하다. 함께 무기를 줄여가는 길이다. 공멸의 군비 경쟁과 군사력의 남용을 막고 무기를 없애간 인간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국제인도법, 국제인권법, 제네바 협약, 국제사법재판소, 여성·평화·안전에 관한 유엔 결의안, 특정 재래식 무기 금지 협약, 대인 지뢰 금지 협약, 확산탄 금지 협약, 그리고 얼마 전 무책임한 무기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유엔에서 채택된 무기 거래 조약까지 세계의 수많은 시민, 비정부 조직, 국제 기구가 다른 길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세계 각국 시민은 '세계 군축 행동의 날'을 제정해 공동으로 군축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오늘날 세계 군사비 지출은 1조7500억 달러(1900조 원)로 매년 증가해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으며 군사비 지출 상위권 10개 국가가 세계 전체 군사비 중 4분의 3을 쓰고 있다. 상위 100대 무기 기업들의 판매액은 한 해 4111억 달러(450조 원)에 이를 정도다. 이러한 무기 판매액 대부분은 국방 예산에서 지급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분명해진다.

군사력은 안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강력한 무기만으로는 국민을 지킬 수 없으며 오히려 부메랑이기도 하다. 군비 경쟁 속에서는 전쟁이 항상 있으며 전쟁 준비 속에서는 평화가 요원하다. 그 대신에 한국이 선도적으로 군축을 시작한다면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지역의 평화를 열어가는 열쇠를 쥐게 될 것이며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는 물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게 할 것이다. 군축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무기가 아닌 인류에 대한 희망으로 서로 마주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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