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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성 성기가 있어야만 남성이 될 수 있나

[인권오름] 성기 성형 없던 성전환 남성의 성별 인정, 의미와 과제

다른 사람이, 또는 나라가 당신의 성별이 무엇이라고 정해준다면 어떨까? 단 두 가지의 선택 중 하나로 '당신은 남성입니다' 또는 '당신은 여성입니다'라고 말이다. 운이 좋게도 당신이 스스로 남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남성'이라고 정해준다면 괜찮겠지만, 당신은 암만해도 스스로 여성인데 '남성'이라고 정해준다면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을 것이다. 본인이 남성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남성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성인데도 자꾸만 남성으로 호명하는 순간, 주체는 그야말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혹은 다른 사람에게, 또는 나라로부터 나의 성별을 인정받기 위해서 의료적으로 필요 없는 수술이나 '치료'를 받으라고 하면 어떨까? 원치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남성 또는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라고 한다든지 불임 수술을 강제하면 어떨까? 이것 역시 운이 좋게도 자신도 호르몬 투여를 하고 싶고 생식기관의 일부 또는 전부의 절제 없이는 불편함과 고통을 겪는다면 (부작용이 없다고 전제했을 때) 괜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나는 지금 상태에서 건강하다고 여기는데 신체에 의료적인 조치를 가하라고 하면 그 또한 엄청난 고통이다. 게다가 이런 의료적 조치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성기 성형'을 요구하지 않은 첫 법원 결정

지난 3월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남성 성기 성형을 하지 않은 성전환 남성 다섯 명에 대하여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란 기재를 '여'에서 '남'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전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외과 수술을 거치지 않은 성전환 남성에게 성별 정정을 허가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처럼 성별 정정을 위해 성기 성형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가혹하다는 취지에서 허가 결정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뒤이어 3월 26일에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도 같은 취지의 결정이 있었다.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법정책연구회'와 이번 사건 당사자들이 함께 현재의 성전환자 성별 정정 요건이 엄격한 현실을 바꾸어보고자 고민하고,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얻어낸 소중한 결과였다.

현재의 성전환자 성별 변경은 대법원 판례와 예규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법률은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미 16대와 17대 국회에서 성전환자 성별 변경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생물학적 성별'과는 '반대'인 성에 부합하는 '외부 성기'는 꼭 만들어야 성별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견에 가로막혀 제정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대선 후보들에게 성전환자 성별 변경에 관한 입장과 대안을 밝혀달라는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국가인권위를 강화하겠다는 말만 했다가 동문서답이라는 비판을 받고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답변을 다시 준 바도 있다. 이처럼 국회나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이와 관련한 입장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대신 대법원 판례와 예규가 성전환자 성별 변경을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으로 허가하고 있는데, 판례와 예규는 그 요건으로서 만 20세 이상일 것, 혼인 중이 아닐 것, 미성년자 자녀가 없을 것, 생식 능력이 없을 것,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생물학적 성별과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탈법적인 의도가 없을 것 등을 요구하는 동시에 필수적으로 2인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서, 부모의 동의서 등을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요건들은 사실 성별을 규정하는 요소라고 보기 어렵다. 자신이 어떠한 성별이라는 정체성은 20세가 넘어서 확고하게 획득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혼인 중에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며,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지 여부와는 더욱 관련이 없어 보이고, 생식 능력 유무와도 관계가 없으며, 성전환 수술 여부나 외부 성기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정신의학적 진단을 받아야만 알게 되는 것도, 부모의 동의에 의해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들 요소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의 유지나 발현에 도움이 되는 수단일 수는 있지만, 이들 요소의 실현이 선행되어 그 개인의 성별 정체성과 사회 생활에서 인식되는 성별이 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성별을 공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러한 요건들을 하나하나 넘어서야만 한다. 당신이 트랜스젠더인 사람이든 아니든 이를 통해서만 자신의 성별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 어려움이나 고통이나 난감함은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적어도 성별 정정에 있어 '외부 성기'의 요건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로써 대법원 판례와 예규가 바뀐 것도 아니고, 성전환 여성의 경우에는 어떠한 결정이 나올지 알 수 없으며, 그 외에도 위와 같은 엄격한 과정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남성' 또는 '여성'의 입증

뿐만 아니라 성별 정정 절차에서는 자신의 원래 모습과 관계없이 전형적인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보여야 한다. 옷차림, 외모, 두발, 태도, 살아온 역사, 성적 지향 등에 있어서 전형적으로 여겨지는 남성 또는 여성의 모습을 법원에 내보일 것이 요구된다.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시작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 '다른 남자보다 더 남자다움', '다른 여자보다 더 여자다움'을 입증하도록 요구받거나 적극적으로 드러내도록 하는 압력을 받는다.

이는 일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기어코 '생물학적 성별'의 특징들을 찾아내려고 하는 시선 속에 놓인다. 성전환 남성은 그저 '남성'이지만,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외모나 목소리, 말투나 행동에 있어서 '남성'이라는 생각이 들면 "와, 진짜 남자 같네"라고 하고, 충분히 '남성답지' 않으면 "역시 완전한 남자는 아니네" 또는 "역시 여자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아마 성전환 남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진짜 남자네"라거나 "(남자이긴 하지만) 여자 같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남성은 적어도 '남자는 아니'라거나 '여자'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게 되기가 쉽다.

트랜스젠더 공동체 내에서도 '진짜 남자', '진짜 여자'이기 위해서 성별 규범이 많이 강조되기도 한다. 특히 법적 성별이 변경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이렇게 '진짜 남자임', '진짜 여자임'을 통해 성별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성별 변경 이후 이러한 과도한 남성성 또는 여성성을 표출하는 부담을 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이처럼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 또는 성별을 변경한 트랜스젠더가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인 사람보다 성별 규범의 압력이 적고 다양한 성별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이러니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스스로 '진짜 남자임' 또는 '진짜 여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별 규범의 압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지 트랜스젠더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종종 가족 관계나 친구 집단 사이에 등장함으로써 과도한 공격성 또는 과도한 수동성, 이성 간 결혼이나 이성 간 성관계를 강요하기도 하는 등의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벌어진다. 이처럼 성전환자 성별 변경의 문제는 생물학적 성별에 관한 규범성이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성별 규범성과 고정관념에 갇혀버리기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남성임'과 '여성임'을 확인하기 위한 입증 책임의 부과는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반대의 성'으로서 완전히 분리되는 '남성'과 '여성'의 양극단이 정상적인 성별 상태라는 규범성에 따른 것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남성 또는 여성으로 파악된다면 그의 성별 정체성은 무조건 남성 또는 여성이고, 이러한 남성 또는 여성은 충분히 '남성답거나 여성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실제의 삶들이 보여주듯 이는 사실이 아니지만, 사회가 가지고 있는 관념의 벽은 높고, 확고하다.

따라서 성별 정정 절차가 보여주는 진짜 문제는 사실, 이렇게 '남성됨'과 '여성됨'을 고정적이고 규범적으로 파악하는 우리 사회의 관념, 그리고 '남자가' 또는 '여자가'라고 하면서 내뱉게 되고는 하는 우리의 태도와 실천의 문제다.

성기 중심성은 넘었지만…여전한 여성(남성)'됨'의 요구들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번 결정은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법원이 성별을 바라보는 데 있어 성기 중심성을 넘었다는 점은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준비하면서, 대법원 판례와 예규가 보여주듯 외부 성기를 중심으로 성별을 판단하는 고정관념에 자주 맞닥뜨려야 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결정으로 인해 많은 성전환 남성들이 성기 성형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성별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성기 성형은 비용도 매우 많이 들고, 위험성과 부작용의 가능성도 높아 성별 정정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었던 터였다. 서부지법의 결정이 나오던 날, 한 성전환 남성이 이 소식을 듣고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꿈을 쌓았다 허물었다 하며 미래를 꿈꾸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또 성전환 남성들에게 혁명과 같은 일이라며 기뻐하시는 사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프기도 했지만 벅차기도 했다.

앞머리에 언급한 것처럼, 사람의 성별은 타인이나 나라가 정해줄 수도 없고, 신체 구조 특히 생식기가 호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 또 한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말처럼, 자신의 신분을 공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성기 성형이나 불임 수술 등 의료적 조치를 강제하는 것은 국가가 법적인 이유로 의료 시술을 처방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전환자 성별 정정의 요건은 지금보다 대폭 완화될 필요가 있다. 이미 다른 영국, 독일, 스웨덴, 아르헨티나 등 많은 나라에서는 불임 수술을 강요하는 등의 요건을 폐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것이 법원이나 입법부의 몫일 수만은 없다. 근본적으로는 '남성(됨)'과 '여성(됨)'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해야 한다는 관념, 그리고 '남성(됨)'과 '여성(됨)'이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단지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남성됨'과 '여성됨'을 증명해야 하는 무수한 순간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우리는 전형적이고 규범화된 남성 혹은 여성이 되어야 하는 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꼭 '남성 성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번 결정은, 이러한 과정으로 나아가는 한 발자국이다.

(*이 글은 "누가 성별을 판단하는가: 서부지법의 남성 성기 성형 없는 성전환 남성의 성별인정의 의미와 과제"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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