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2010년 필자가 엮어서 같은 해 10월에 펴낸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한겨레출판) 서문에 쓴 글 중 일부다.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조단의 조사 결과를 보면서 필자가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 '장기적인 동북아 긴장 고조'였다.
지금까지도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동북아 각국은 물론 남한 내에서도 일치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각국은 자신들의 군사행동을 '천안함'에 빗대 정당화해온 측면이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각국의 이런 '자기 중심적 천안함 해석'은 결국 각국의 군비 증대로 나타나고, 긴장 강화로 귀결될 것이다.
3년 전 한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은 남한 사회를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백령도 인근 물살이 강한 해역에서 잠수함 등을 찾고 경계하는 초계함인 천안함이 3동강이 난 채로 물속에 가라앉았고, 46명의 꽃 같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자체보다 남한 사회를 더욱 크게 흔들어놓은 것은 당시 민군 합동조사단(단장 윤덕용, 이하 합조단)이 발표한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다. 사건 발생 후 두 달 가까이 지난 5월 20일 합조단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북한의 130톤급 연어급 잠수함이 무게 1.7톤의 중어뢰인 CHT-02D를 발사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합조단은 자신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우선 연어급 잠수함의 실체부터 의문이다. 우리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 이전에 한 번도 130톤급 연어급 잠수함을 언급한 적이 없다. 70~80톤급인 소형 잠수함과 대형인 로미오급(1800톤)과 상어급(300톤)만을 언급했다. 하지만 대형 잠수함은 그 크기 때문에 백령도 해역으로 들어올 수 없고, 소형 잠수함은 1.7톤의 어뢰를 발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급조해낸 것이 '130톤급 연어급'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또 결정적 증거물이라고 제시한 어뢰 추진체는 부식 정도가 너무 심했다. 러시아 조사단은 <한겨레>가 특종 보도한 자체 보고서에서 이 추진체가 "6개월 이상 수중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폭침의 증거라고 합조단이 제시한 흡착 물질들은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수로부터 데이터 조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합조단이 내놓은 선체나 어뢰 흡착 물질 성분은 폭발에 의해 생기는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침전에 의해 발생하는 황산수화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합조단이 폭발 실험 결과 생성된 흡착 물질에 대해서까지 황산수화물의 에너지분광(EDS) 분석 결과를 내놓은 것은 조작이라는 주장이다. 폭발 물질에선 산화알루미늄에 해당하는 에너지분광 분석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조단이 폭발 실험 결과 데이터가 선체 및 어뢰 흡착 물질의 결과 데이터가 같다고 주장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폭발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의혹 해소를 위해 합조단이 한 폭발 실험을 다시 해보자는 주장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승헌 교수는 합조단 관계자로부터 '300만 원이면 이 실험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방부와 합조단은 불과 '300만 원'이면 되는 이 재실험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어뢰 폭발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물기둥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폭발이 있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숨진 병사들의 주검 상태도 훼손되지 않았다.
이렇게 합조단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천안함 폭침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당시 6.2 지방선거를 의식한 탓인지 이 가설을 진실인 것처럼 밀어붙이고 서둘러 공식화했다.
이는 마치 어떤 '이상한 건축업자 이야기' 같다. 어떤 건축업자가 집을 짓는 데 쓰이는 여러 가지 건축자재들의 목록을 제시했다고 하자. 그런데 실제 살펴보니 그 대부분이 규격 미달인 건축자재였다. 그런데도 그 건축업자는 집이 멋지게 완성됐다고 주장하면서, 국민들에게 높은 가격에 팔아치웠다고 하자. 그 건축업자가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은 호의호식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그의 잘못된 주장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조단의 조사 결과도 이 건축업자의 건축자재 목록처럼 증거 능력이 부족한 증거 목록이 수두룩하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합조단과 국방부는 해명을 거부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기에 시민들 상당수가 합조단을 부실 건축업자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국가의 권위를 생각할 때도 빨리 해소돼야 할 일이다.
사실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합조단의 가설'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아니면, 좌초, 기뢰 폭발, 미국 잠수함 충돌설 등 다양하게 제기돼온 '다른 가설'들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이라는 책을 엮어낸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봉인 뒤에 가려진 천안함의 진실'이 무엇인지 물어오곤 했다.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이 "모른다"였다. 다만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제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합조단의 최종 조사 결과는 '천안함 폭침'이라는 가설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사실뿐이다."
이렇게 가설을 진실처럼 밀어붙이는 상황은 남북한은 물론 동북아 전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북한은 합조단이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 뒤 천안함 사건이 남한 정부가 벌인 모략극이라고 주장하면서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미국과 남한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대규모 무력을 이용한 군사적 위협을 하고 있다"(2010년 9월 29일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투박한 추론이지만, 북한의 이런 '천안함 모략극 주장'은 북한이 내부적으로 핵 개발 이유 등을 북한 주민들에게 설명할 때도 그 밑자락의 일부가 됐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북한의 잠수함 공격 등에 대비한다면서 서해 5도 지역에 군사력을 늘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미국도 미국 나름대로 천안함 사건을 활용해 한반도 서해 지역에 항공모함을 보내는 등 중국을 포위하는 군사전략에 활용하고, 중국은 이에 반발해 자체 군사력 증강에 힘을 쏟는다.
물론 이 나라들의 군비 증강이나 훈련 강화는 더 큰 틀의 전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군비를 늘려가는 각국이 모두 '천안함 사건'을 그 이유로 들어도 모두 자국 국민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모순된 상황이 천안함의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봉인돼 있는 '천안함의 진실에 이르는 문'을 다시 여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철두철미하게 다시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전의 합조단 조사를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정부가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핵심적인 사안에 대한 재조사 내지는 재실험을 통해 국론 분열 상황을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 등은 천안함 관련 수중 폭발 모의 실험을 다시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 실험 결과를 통해 앞서 언급했던 이승헌 교수의 합조단 자료 조작설의 진위를 가려보자는 것이다. 만일 실험을 해서 합조단이 발표한 내용과 같은 실험 결과가 다시 나온다면, 합조단의 발표가 갖는 권위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반면 이승헌 교수의 주장이 맞다면, 더 광범위한 재조사에 대한 여론이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상황 인식과 대응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유엔 제재로 형성된 위기 국면에서도 '신뢰 프로세스'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잘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천안함 문제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만큼 국민 통합을 위한 다양한 카드를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이전 보수 정권 감싸기가 아닌 국민 통합이라는 큰 틀에서 천안함 문제에 접근해나가길 기대한다.
▲ 2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 용사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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