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현재 한반도 상황이 위기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위기에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의문점이 있다.
첫째,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 달이 더 지났지만 북한의 정확한 핵 능력을 모르는 상황에서 북의 핵무장을 기정사실로 여긴다는 점이다. 북의 핵 실험이 고농축 우라늄인지 아니면 플루토늄인지, 폭발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지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북한의 핵실험 성공 주장에만 근거하여 북한이 마치 핵무장을 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문제다. 이 점을 모호하게 처리하면서 북한의 주장을 우리가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이 바라는 바가 아닌지, 더 냉철한 자세가 요구된다.
둘째, 비핵 국가가 국제적 감시망을 피해 핵무장을 하려면 가장 조용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핵을 개발하여 완성도를 높이다가 어느 날 의심할 여지없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드러내 국제 사회가 인정하게끔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냉전 초기에 소련은 자신의 핵 개발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다가 핵을 실전에 배치한 다음에야 이를 인정하는 '기정사실화 전략'을 구사했다. 소련뿐만 아니라 인도, 남아공,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어느 핵 개발국을 보더라도 핵 개발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시키다가 어떤 시점에 국제 사회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런데 아직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지 않은 북한이 굳이 헌법에 핵보유국 조항까지 신설하고 국제 사회에 핵실험을 예고하는 요란한 방식을 택하는 이유가 뭘까? 또한 어렵게 구축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적대국인 미국에 공개하면서까지 핵 개발 능력을 외부에 노출시킨 이유는 또 무엇인가? 북한이 이렇게 시끄럽게 핵을 개발하니까 유엔 안보리가 무려 4개의 대북 제재 결의안(1718호, 1874호, 2078호, 2094호)을 통과시켰고, 국제 사회의 더 강화된 감시와 제재로 핵무기 보유가 더 늦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가 북한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은 이제껏 핵 보유국이 통상적으로 선호하는 기정사실화 전략과 가장 동떨어진 이상한 경우다.
▲ 지난달 12일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핵실험 보도. 북한은 '제3차 지하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
셋째, 최종 병기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안보를 달성하는 데 있어 비핵 통상 무기, 즉 재래식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의미를 내포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냉전 초기부터 핵을 증강한 명분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과도하게 팽창시킨 재래식 군사력을 감축하면서 그 공백을 핵무기로 메운다는 것이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의 경우에도 이런 현상은 예외 없이 나타난다. 핵을 보유하는 목적이 적대국에 비해 재래식 전력이 심각하게 열세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함이거나 그것이 아니면 재래식 무기 감축을 합리화하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태도를 보면 핵을 개발하면서 오히려 재래식 전력에 의한 대남 협박에 더욱더 몰입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핵과 재래식 전력에 의한 동시 위협은 북한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초래하는데, 왜 북한이 이렇게 멀리 나가느냐는 의문이다.
이 세 가지 의문을 기초로 북한의 전쟁 위협 배경을 들여다보면 북한의 의도가 드러난다. 북한의 국가 목표는 체제 안전과 생존을 보장받겠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핵무장 및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두 가지를 장기적 핵심 전략으로 삼겠다는 의도이다. 이를 위해 현재 정전협정을 교란하면서 미국을 대화와 협상의 장에 불러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서 한반도 평화·번영을 지향해 온 민주평화세력은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첫째, 이제껏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한의 비핵화와 동시적으로 진행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어 왔는데, 핵을 가진 북한과도 평화협정을 도모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둘째,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직도 북한과 대화와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는 것 아닌지, 새로운 판단이 요구된다. 무조건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며 지난 20년의 비핵화 노력이 실패했다고 지레 비관적인 인식으로 기운다면 이는 자칫 북한을 과대평가함으로써 한반도 위기 해결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위기의 와중에도 한반도 전면전의 구체적인 가능성과 개연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준전시체제를 선포하고도 북한의 김정은은 지하의 국가 지휘 시설에 위치하지 않고 서해에서 동선을 노출시켰다. 전쟁을 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남쪽도 비상상황에서 주말에 장성들이 골프를 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은 임명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전쟁을 하는 나라라고 보기 어렵다.
남과 북이 실제 전쟁을 할 능력과 의도가 없으면서 서로 협박할 수밖에 없는 담력 게임(chicken game)의 성격이라면, 이는 심리적 차원의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전도 장기화한다면 실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위기 관리는 북한의 능력보다는 의도를 관리하는 것이 그 핵심이고, 그 주된 수단은 외교다.
분명히 전제되어야 할 것은 '북한에 대한 설득은 불가능하다'는 비관주의에 빠지면 어떤 위기 관리든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벼랑 끝의 위기에서도 새로운 대화와 협력의 지평을 확대해 왔다. 1994년에는 전쟁 위기에도 불구하고 제네바 합의라는 성과를 이뤘다. 2005년 9월에 BDA(Banco Delta Asia, 방코델타아시아) 사태로 한반도 정세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더 이상의 협상이 불가능한 국면이 초래되었으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도 새로운 협상의 돌파구가 열렸다.
가장 비관적인 시기에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한 한반도 위기 구조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긍정과 낙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껏 남과 북은 상대방을 협박하는 전쟁 기술도 발전시켜 왔으나, 반면에 벼랑 끝에서 위기를 관리하고 전쟁을 막는 평화의 기술도 발전시켜 왔다.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우리의 주도적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지금은 전쟁의 논리가 아니라 평화의 논리로 우리 인식의 균형을 되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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