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영석 씨와 백자 씨의 이번 공연 내용, 음악인으로서 삶과 고민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문화 노동자' 연영석 씨의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백자 씨의 이야기를 싣고자 합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공연 내용을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백자 씨는 대학 재학 중 노래패 활동과 노래 만들기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여 1997년 포크 모임 '혜화동 푸른섬' 활동을 했습니다. 1999년 민중가요에 대한 의지를 갖고 노래모임 '우리나라'를 창단해 노래와 음악감독을 하면서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1집 앨범 [가로등을 보다](2010년), 산악인 다큐멘터리 <발 없는 새>와 <벽>에 들어간 음악을 모은 소품집 [걸음의 이유](2009), 미니앨범(EP) [담쟁이](2012)를 냈습니다. 2011년에는 영화 <걸음의 이유>(감독 김철민)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음악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노래가 자신에게 위로를 주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를 주고 마음을 열게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백자 씨의 이번 공연에 많은 참여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필자>
ⓒ콘서트 '동행' 기획위원회 제공 |
사회적인 이름 '백자'
"백자입니다. 3시 장소를 망원역 2번 출구로 옮겨도 괜찮을까요?"
일요일 오후 약속 시간 1시간 30분 전, 홍대로 예정되어 있던 장소를 바꾸어도 되겠느냐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괜찮다고 하고 망원역에서 백자 씨를 만났다. 그가 안내한 곳은 가게 밖으로 천막이 쳐져 있는 작은 찻집이었다. 찻집에 들어가서야 처음 만나는 이에게 맛있고 저렴한 커피를 사주고 싶어 장소를 바꾸었다는 것을 알았다.
백자 씨는 노래패 '우리나라'와 솔로가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규모가 있는 팀 공연 섭외가 줄고 있는 추세라 최근에는 홍대 앞 클럽 '살롱 바다비'와 'FB'에서 월 2~3회 솔로 공연을 하고, 집회와 투쟁 사업장 등에서 공연을 주로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가수 시와, 이씬, 정문식, 처절한기타맨 등과 함께 '철탑에 방한용품 보내기 노란 봉투 공연'을 제안해서 추운 날씨 속에 6시간 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울산 현대자동차 철탑 고공 농성장에 다녀온 뒤로 계속 마음에 걸려 '면피용'으로 준비한 일이라고 했다. 뜻밖에도 많은 뮤지션과 시민들이 함께해주어 핫팩과 내복·목도리 등의 방한용품을 울산(현대자동차 비정규직)·평택(쌍용자동차 정규직·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전주(전북고속 노동자) 철탑에 보낼 수 있었다. 예상에 없던 자발적인 성금 모금까지 되어 세 곳에 투쟁 기금을 나누어서 송금했다. 소회를 묻자 "면피는 한 것 같은데,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 계속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백자 씨는 인터넷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도 열심히 한다. 최근에는 2집 음반 작업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백자 2집 십시일반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문득, '백자'라는 이름의 내력이 궁금해졌다.
"대학교 1학년 때, 풍물패를 했어요. 남원 필봉으로 전수를 갔었는데요, 그때 애들 사이에 '자'자 붙이는 게 유행이었어요. 이 씨면 '이자', 송 씨면 '송자' 이러다가 저는 백 씨니까 '백자'가 된 거죠. 곡 쓸 때도 '백자', '백자' 하다가 진짜 백자가 됐죠. 사회적인 이름이라고 봐야죠."
스무 살에 백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이후 20년 동안 곡을 쓸 때도, 노래를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그의 이름은 '백자'였다. 대학 동창들은 지금도 만나면 "백자"라고 부른다. 그는 백자라는 이름이 주는 책임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민중가수가 된 초현실주의자
▲가수 백자. ⓒ연정 |
"신에 대한 공격이죠. '신, 네가 있냐?' 그때 쓴 시들이 대부분 그래요. 초현실주의에 빠져가지고 글자도 거꾸로 쓰고, 인조인간에게 인간성을 부여할 거냐 말 거냐 이런 거. 마치 그런 게 지금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자냐는 질문과 비슷하게 느껴져요. 그때 연애시는 써본 적이 없어요. 연애도 못했고요. 연애시는 대학 때 연애하면서 썼어요."
고3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가 다니던 학교에도 해직 교사가 생겼다. 백자 씨는 삭발을 하고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민중가요 테이프도 많이 들었다. 일찍 세상을 안 덕분에 대학에 들어가서 뒤풀이 때는 선배들이 '뽕짝'을 부르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형이 사준 기타를 배운 것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의 시작이었다. 백자 씨가 시를 써주면 기타를 잘 치던 고등학교 동창이 곡을 써주는 일을 몇 번 반복하다가 자신의 시에 직접 곡을 붙이고 싶은 욕심이 생겨 곡까지 쓰게 된다. 신입생 때부터 풍물패와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곡을 많이 썼다. 고3 때 열심히 본 <노동해방문학> 내용을 생각하며 <어느 노동자의 눈 속에서>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 혼란에 직면한다.
"노래는 계속했지만, 운동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갈피를 못 잡았어요. 그러다가 <이등병의 편지>를 만드신 김현성 씨가 중심이 된 '혜화동 푸른섬'이라는 포크 모임에 들어갔죠. 민중가요에 대한 갈증이 계속 나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우리나라' 친구들을 만난 거죠."
1999년 백자 씨는 민중가요를 본격적으로 해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창단, 활동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앨범에 수록된 <한결같이>(2집),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4집), <달려달려>(우리나라 4집) 등 집회 현장에서 많이 불리는 노래는 이 시기 백자 씨가 만든 노래다. 팀 음악을 하면서 솔로 음반을 내보자는 우리나라 내부 논의를 통해 그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1집 음반을 내면서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 백자 씨의 솔로 활동기간은 이제 4년차에 접어든다.
공연, '에반게리온이 폭주하는' 희열감
음반을 내면서 몇 차례 콘서트를 했지만, 무대에 서는 일은 '무대 공포증'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늘 긴장되는 일이다. 공연은 긴장감과 동시에 관객들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경험하게 한다. 에너지가 확 올라오면서 마치 '에반게리온이 폭주하는 듯한' 희열감을 2011년 콘서트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민중가수들이 드럼, 베이스, 기타, 건반 등 '풀밴드'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백자 씨는 2년 만에 하는 풀밴드 공연이 재밌고 기대된단다. 처음에는 잘 안 맞다가 연습을 통해 어렵게 딱 맞았을 때의 희열감이 좋단다.
"(이번 공연의 콘셉트는) '삶이 팍팍해도 걸어가보자'예요. 제가 선곡한 노래 중에 <낙타의 발>이나 <걸음의 이유>가 그런 내용들이거든요. 힘들 때 썼던 곡들인데, 삶이 팍팍하고 막막해도 걸어가보자는 얘기죠. 지금 새로운 정권 들어서고 다들 막막한 상황이기도 하잖아요."
콘서트 '동행'에서 연영석 씨와 함께 무대에 서는 소감을 물으니 기분이 좋단다. '영석이 형이랑 둘이서 공연할 수 있는 걸 보니 내가 급이 좀 올라갔구나'하는 생각이 든단다. 우리 민중가요가 고유한 음악 색깔 없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데, 연영석 씨의 음악은 대중음악평론가들에게도 '독특하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 의미 있다고 한다.
"형 노래는 민중가요면서도 틀이 없어요. 가사와 곡 그리고 형의 보컬.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형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봐요. 약간 어눌한 거 같으면서 걸쭉한…. 반드시 뭘 해야 한다는 당위에 짓눌려 있지 않아요. <간절히>에서도 보면 '나 일한 만큼 받는 세상'이라는 가사를 써요. 굉장히 높은 얘기를 누가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노래하잖아요. 일상적이면서 편안하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민중성이 있는 거 같아요. 포크록의 리듬이 형의 목소리하고도 잘 어울리는 거 같고요."
▲연습이 끝나고 연영석(왼쪽)과 함께. ⓒ연정 |
'카톡 해고' 시대에 '노란 봉투'가 던지는 메시지
이번 공연은 <노란 봉투>와 <낙타의 발>(신곡), <담쟁이>, <걸음의 이유> 등 사회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담은 노래들과 <경포대에서>, <서성이네>(신곡), <저 바람 속으로>(신곡) 등 인간 존재와 사랑에 대한 성찰이 담긴 서정적인 노래로 이루어진다.
<노란 봉투>는 2003년 민중가수 김성만, 노래패 맥박, 류금신, 박준, 연영석, 지민주 씨 등이 만든 음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래]에 실렸던 노래다. 비정규직 노동자인 주봉희 씨가 쓴 글을 백자 씨가 다듬고 곡을 붙여 만든 이 노래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조차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에 '일할 권리마저 없는' 파견 노동자의 서러운 삶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러운 삶은 변함이 없다. 10년 전 해고의 불안이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들만이 느끼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정규직을 포함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귀하는 파견법에 의거 해고되었음을 통보합니다"라고 되어 있던 노래 중간에 나오는 멘트는 최근에 "귀하는 해고되었음을 통보합니다"로 바뀌었다. 이것은 백자 씨가 이 노래를 홍대 클럽에서도 자주 부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란 봉투'를 지나 '문자 해고'를 넘어 '카톡 해고'가 이루어지는 2013년, 새롭게 편곡한 <노란 봉투>가 청중의 가슴에 어떤 메아리로 울릴지 궁금하다.
세상아 이 썩어빠진 세상아 맘 놓고 일할 권리마저 없는 세상아 이 미쳐버린 세상아 뒤집어 엎을 세상아 - <노란 봉투>(2003) |
나를 찾아 걷는 것이 걸음의 이유
지난해 총선이 끝나고 만든 신곡 <낙타의 발>은 '암울하다', '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지독한 더위와 끝이 안 보이는 사막에서 느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낙타처럼 걸어가자는 제안이 담긴 노래다. <담쟁이>는 도종환 시인의 시 낭송을 직접 듣고 그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는 시구에 큰 울림을 받고 만든 노래인데, 기대와 달리 많이 '뜨지는' 않았다 한다. <걸음의 이유>는 2007~2008년경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시절에 만든 노래다. <발 없는 새>와 <벽>이라는 산악 다큐멘터리 음악 작업을 하면서는 전문 산악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함께 술도 마셨다.
"하루에 이만큼 올라갔다가 자려고 내려오기도 하고, 올라가서 이만큼 갔다가 줄에 매달려서 자고 다시 올라가기도 해요. 그러다가 못 올라가기도 하죠. 주변에서 욕을 많이 먹어요. '너는 뭐냐? 죽을 수도 있는데, 거기를 도대체 왜 가는 거냐?' 물어본대요. 이 사람들은 정상을 반드시 오르겠다는 게 아니라 걸어가고 있는 그 속에서 자기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산악인들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백자 씨는 이 당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주변에서 "돈도 안 되는 걸 왜 해? 애 낳았으면 가정 꾸리고 돈 벌어야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다. 이 당시 "나는 왜 걷는 거지? 왜 가고 있는 거지?"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만든 노래가 <걸음의 이유>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그 무언갈 찾아 숨이 막혀오고 다리가 풀려도 난 멈출 수 없어 길을 찾아서 걸어갈 뿐야 나를 찾아서 걸어갈 뿐야 - <걸음의 이유>(2009) - |
백자 씨는 자신의 노래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빡센' 민중가요로, 대학 이후 우리나라 활동을 하면서 생산해낸 노래들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노래다. <바보>(EP [담쟁이])나 <울고 싶던 어느 날>(1집) 같은 노래가 그 부류에 속한다. 이번 공연에서 부를 노래들은 후자와 '전자+후자' 성격을 갖는 노래들이다. 후자에 속하는 <경포대에서>(EP [담쟁이])는 사연이 많은 노래로, 수배 중이던 1993년 추석 때 경포대에서 지낸 며칠 동안의 도피 생활이 모티브가 된 노래다.
"경포대 여관에 며칠 숨어 있었어요. 여관 아저씨가 이상하게 생각하죠. 명절인데 왜 왔냐고. 바다 보고 싶어 왔다고 했어요. 밤에 경포대 나가보면 바람 불고 아무도 없어요. 혼자 걷는 거예요. 바람이 옷깃을 잡고 물어보고 그러죠. 그런 마음에다가 또 거기서 사랑의 추억도 있는데, 결국 헤어지기도 하고. 사랑이란 그렇듯이… 그런 마음으로 썼던 곡이죠."
바다가 외계에서 왔을 수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생명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것도 이 노래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바다여 너는 어디서 그 머나먼 어디서 왔길래 수많은 얘길 품고서 또 어디로 가는 것이냐 둥근 달은 가로등처럼 흔들거리는 밤 바다 바람은 옷깃을 잡고 내 걸음의 끝을 붙들어 - <경포대에서> |
이번 공연에서는 사랑 노래도 여러 곡 부를 예정이다. 백자 씨는 다른 민중가수들에 비해 사랑 노래를 많이 만든다. 지난해에 만든 <서성이네>는 첫사랑에 대한 철학적이면서 인문학적인 고찰이 담겨 있는 노래라고 이야기한다. '그대의 가로등이 되어 가끔 그대가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저 좋은 풍경이고 싶고, 눈 내리는 날엔 하얀 눈송이를 비추어 그대 깊은 상처를 덮어주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가로등을 보다> 역시 비슷한 노래다. 그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아련함과 답답함, 그리고 미련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했다.
떨쳐버릴 수 없는 나의 오랜 미련들 나는 너를 아직 너를 기다리네 바보 같은 시간과 바보 같은 나 나는 너를 아직 너를 서성이네 - <서성이네> |
▲백자 2집 십시일반 프로젝트 '웹포스터. ⓒ100ja.com |
나에게 노래는 위로를 주고받는 일기
"저는 노래라는 게, 예술이라는 게 일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숨기고 거짓말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어요. 모든 노래에는 다 개인적인 동기가 있죠. 자기를 속일 수가 없이 자기 그대로 나오는 것 같아요. 나오면 쓸 수밖에 없어요."
곡은 주로 그가 힘들거나 슬프거나 분노할 때 나온다. 그리고 그 곡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위로를 받는다. 아들 륭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자신이 륭이를 낳았고 륭이가 자신의 자식인 건 맞지만, 자신의 소유는 아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대학 때 이후로 만든 노래들이 100곡이 넘지만, 그게 자신의 소유는 아니다.
"그 곡들이 누군가에게 가서 나름대로 자기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곡을 쓰는 과정에서 위로를 많이 받아요. 그 곡들이 나한테 위로를 줬던 것처럼 듣는 사람에게도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다, 함께하는 걸 의도해서 내가 만든 민중가요를 듣는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마음을 열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죠."
2집 앨범 제목을 '반성문'으로 하라는 얘기도 듣는다. 백자 씨는 그만큼 자신의 음악이 어둡다고 했다. 홍대 클럽에 가서 공연할 때, 인디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과 할 수 있는 음악 사이에 괴리를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도 음식과 비슷해서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로한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밝고 재밌는 음악을 해보고 싶다.
"언젠가 SF나 무협으로 곡을 한번 써보고 싶어요. <와호장룡>에 나오는 주윤발. 아, 바람이 부는데, 대나무 위에 주윤발이 서 있는…. 거기에 서서 뭘 느낄 수 있을까? 호연지기? 일단 저는 힘닿는 데까지는 제가 세상에 대해서 느끼는 것, 세상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걸 할 거예요.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서 노래를 할 거고요. 저는 그렇게 할 뿐이고, 그걸 어떻게 느끼는지는 사람들의 몫이겠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 남진우,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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