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가 뒤바뀐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을 넘어 법원까지 재벌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강도를 잡으라고 소리친 사람을 '고성방가죄'로 처벌하는 나라입니다. 10년간 불법 파견을 저질러온 정몽구 회장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하면서 송전탑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에게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것이 이 나라 법원입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 대표가 했던 정의로운 행동이 잊히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노 대표의 복권을 위해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의원직을 잃었지만 이 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과 맞서 싸운 노회찬 대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1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범죄자가 뒤바뀐 판결
의원직 상실로 오는 4월 24일 재보궐 선거가 예정된 노회찬 대표의 선거구인 노원병에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가 출마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회찬 대표는 4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여기(노원병)는 이미 진보정의당에서 후보를 내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한 지역이고, 저희가 어렵게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탈환했던 지역"이라며 "안 전 교수가 오지 않더라도 야권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이므로 여기에는 좀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진보정의당은 "정치 복귀의 첫 번째 선택지가 노원병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일방적인 출마 선언에 대해 진보정의당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고, 노 대표는 안철수 전 교수에 대해 구태 정치라고 직격탄을 쏘았습니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도 안철수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에 대해 비판을 가했고, 민주통합당의 여러 의원도 안 전 교수에게 부산 영도에 출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노회찬 "안철수 노원병 출마는 구태 정치"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의 조기 등판이 이처럼 뜨거운 화제가 되는 것은 대선 패배 이후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민주통합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대형 정계 개편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원병이든 부산 영도든 안철수의 등장과 신당 창당은 민주통합당을 뿌리째 흔들 것입니다. 이미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구태 정치에 대한 염증은 안철수 현상이라는 새 정치에 대한 기대로 나타났고, 먹고살기 힘들어진 노동자 시민은 정치판이 바뀌길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번에 10석을 얻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노동자, 서민들에게 외면받은 진보정당들도 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는 안철수 신당에 들어갈 것이고,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진보정당들의 통합이 추진되고 있으며,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당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야권 연대'입니다. 민주통합당은 부산 영도 안철수, 노원병 진보정의당, 충남 청양·부여 민주통합당으로 야권 연대를 통한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진보정의당도 노원병에서 진보정의당 후보로 야권 단일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등판으로 대형 정계 개편, 야권 연대는 불변
노회찬 대표는 노원병에 대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유권자들의 뜻을 묻는 것이 이번 선거의 주요한 성격이 되는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은 "노원병은 유권자들이 선택한 노회찬 공동대표의 의원직이 사법부에 의해 짓밟힌 곳"이라며 "삼성 X파일 문제를 전면화하고 재벌과 사법 개혁을 제대로 실현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사회 최대 재벌인 삼성의 문제를 전면화하고, 삼성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후보로 진보정의당에서는 노회찬 대표의 부인 김지선 씨를 전략 공천하기로 했습니다.
천호선 최고위원은 김 씨에 대해 "여성의전화를 이끌어 온 존경받는 여성운동가이고 국무총리상까지 받은 인권운동가"라며 "가난 때문에 16세에 공장 활동을 시작해서 두 번이나 구속되기도 한 노동운동가다. 중졸 학력이지만 40대에 검정고시를 거쳐 50대에 방통대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가 된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에 맞서 싸울 후보가 노회찬 부인?
김지선 씨가 노동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해왔고,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에 맞서 싸울 후보가 왜 김지선 씨입니까? 남편과 함께 지역구를 관리해왔고, 두 차례의 선거를 통해 얼굴이 알려져 인지도가 높기 때문입니까?
'지역구 세습'이라는 비판에도, 무조건 당선이 되어야 삼성에 맞서 싸우다 억울하게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 대표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입니까? 1999년 울산 동구청장이었던 김창현 씨가 구속되자 부인인 이영순 씨가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기 때문에 진보정당의 가치와 원칙에 문제가 없습니까?
삼성에 맞서 싸우다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 대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이라는 불의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문제입니다. 노회찬을 대신해 부인이 나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고 앞으로 싸워나갈 이들을 대표하는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삼성이라는 불의에 맞선 대리전
▲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프레시안(최형락) |
백혈병으로 죽어간 딸에게 백지 사표를 요구했던 삼성에 맞서 6년간 싸운 고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는 삼성의 비인간적 폭력과 10억 원이라는 회유에 맞서 산재를 인정받고,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200명의 백혈병 환자를 찾아내고 끝내 삼성을 교섭으로 끌어낸 이종란 노무사와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삼성에 맞선 싸운 활동가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목숨 걸고 삼성과 싸운 노동자들
진보정의당이 한국 사회 최대 재벌인 삼성의 문제를 전면화하고, 삼성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후보로 삼성과 싸우는 사람들을 추천하고, 당운을 걸고 삼성에 맞서 투쟁을 벌인다면 아마 많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응원할 것입니다.
설령 당선되지는 못하더라도 '악덕 재벌' 삼성이 저질러왔던 불법과 잘못을 폭로하고,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삼성 노동자들을 알려내고, 삼성의 불법 파견, 부당노동행위, 노조 파괴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진정한 '진보정당', 노동자 정당의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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