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3월 6일이 되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어린 노동자들을 기억하려는 소수가 모여 비슷한 풍경을 연출한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늘어나는 영정 사진과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숫자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들은 소위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이라 부른다.
3월 6일은 '삼성 백혈병' 노동자 중 세상에 최초로 그 이름이 알려진 고 황유미 씨가 6년 전 숨진 날이다. 부친 황상기 씨는 삼성이 주는 위로금을 받고 딸의 죽음을 잊는 대신 사회에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또 다른 '황유미'를 찾는 길을 선택한다. 그와 동참한 이들에겐 '반올림'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황유미'처럼 이름 없이 숨져갔다고 추정되는 이들은 6년이 지난 현재 79명이 됐다.
[황유미, 그리고 6년] ①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② '글로벌' 삼성, 6년의 피눈물 닦아줄까 ③ 이건희와 맞선 택시기사 실화, 상영될 수 있을까 |
이날 추모제 장소에 걸린 영정 속 노동자 중에는 '삼성' 노동자가 아닌 이들도 있고, '백혈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라고 불린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을 국가도, 기업도 대부분 외면하고 있다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1987년생 윤슬기 씨는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1999년 입사해 그해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지난해 숨졌다.
1973년생 김진기 씨는 매그나칩 반도체 청주공장에 1997년 입사에 2010년 만성골수성단핵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이듬해 숨졌다.
1980년생 김경미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1999년 입사해 2008년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이듬해 숨졌다.
1980년생 이윤정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1997년 입사해 2010년 뇌암 판정을 받고 지난해 숨졌다.
1987년생 박지연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2004년 입사해 2007년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0년 숨졌다.
1974년생 황민웅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1997년 입사해 2004년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5년 숨졌다.
1985년생 황유미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2003년 입사해 2005년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숨졌다.
1976년생 김도은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1995년 입사해 2009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지난해 숨졌다(고인은 그해 12월 산재를 인정받았다).
1984년생 박효순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2002년 입사해 2006년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지난해 숨졌다.
1976년생 이은주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1993년 입사해 2000년 난소암 진단을 받고 지난해 숨졌다.
1976년생 이숙영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1997년 입사해 2006년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6년 숨졌다.
12번째 영정에는 지난달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사망한 박 모 씨가 얼굴 없이 걸려 있었다.
▲ 피해 노동자들의 영정 사진 뒤 막혀 있는 삼성 본관 입구가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
"지금처럼만 계속 살아 있어 줬으면"
이날 추모제가 숨진 노동자들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투병 중인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 역시 모인 이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추모제에서 최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피해 노동자 유명화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1982년생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2000년 입사해 2001년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은 유 씨는 그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줬던 혈소판 수혈도 더 먹히지 않는 상태로 알려졌다. 맞는 골수를 찾지 못해 발병 후 13년째 수혈로 버텨온 부작용이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유 씨의 동생 유연숙 씨의 편지를 대독하며 흐느꼈다.
"(전략) 나타나지 않는 골수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린 게 벌써 12년. 제 골수가 맞지 않아 항상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남의 피와 혈소판을 맞아야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집 안에서의 생활. 남들처럼 뛰지도 못합니다. 조금만 걸어도 온몸에 피가 터져서 반점이 생기거든요. (중략)
언니가 곧 죽을 거래요. 의사는 정말 쉽게 말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병과 함께했고, 골수이식도 못하고 있고, 그동안 맞은 피와 혈소판들이 몸에 가득 쌓여서 모든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제 남의 피와 혈소판이 몸에서 거부를 합니다. 눈에서, 입에서, 온몸에서 피가 터지고 날마다 아프다고 우는 언니를 보면서 전 해줄 게 없습니다.
그냥 억울하고 슬플 뿐입니다. 삼성은 저희 언니가 원래 아팠을 거래요. 삼성이란 회사는 아주 조금만 건강에 이상 신호가 보여도 채용하지 않는 회사입니다. 저희 언니는 병치레 한 번 한 적 없는 건강한 첫딸로 삼성 들어가기 전에는 너무 건강하다는 판정도 받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물론 친척 중 백혈병 같은 희귀병에 걸린 사람도 없고요.
언니는 산재를 받으면 가족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고 말하네요. 자기 때문에 가족 모두 고생하고 돈도 들고 미안하다고. 산재가 돼서 치료라도 돈 걱정 안 하면서 받고 싶다며. 전 그냥 언니가 지금처럼이라도 계속 살아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암 만드는 공장을 반도체 만드는 공장으로 바꿉시다"
수요일 저녁 시간 지하철역 안으로 향하는 행인들은 삼성 본관 앞에서 벌어지는 이질적인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몇몇은 반올림이 내미는 전단을 거부하고 지하철역 안으로 향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SAMSUNG, LG 등의 로고가 박힌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하고 SNS 사이트로 전송한다. 기기 안에 쓰이는 부품 상당수가 피해 노동자들이 일했던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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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는 계속된다. 고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와 모친 박상옥 씨가 무대 앞으로 나왔다. 황 씨는 매년 추모제에서 자신의 딸이 처음에 어떻게 아팠고, 언제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며,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설명한다. 해가 지나도 그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지만, 황 씨의 말이 주는 무게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고 황유미 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따른 행정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으로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박 씨가 딸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흐느꼈다.
"(전략) 처음 삼성에 가겠다고 했을 때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것 후회하고 있어. 남들처럼 잘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옛날엔 웃고 즐거운 날도 많았어. 널 삼성에 보내지만 않았다면 이런 불행은 오지 않았을 텐데. 엄마·아빠가 죄인이구나. 미안하다 유미야. 아프다고 한마디 못하고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가냘픈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하던 너를 잊을 수가 없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엄마 나 죽었으면 좋겠어' 하는 말에 억장이 무너졌단다. 그래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이라고 하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엄마가 대학도 보내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해줄게."
▲ 딸 유미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박상옥 씨(왼쪽)와 황상기 씨. ⓒ프레시안(최형락) |
황상기 씨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쯤 되면, 삼성이 이 나라 기업이라면, 정부가 직권조사를 해서라도 강한 처벌을 내려야 합니다. 암 만들어내는 공장을 반도체 만드는 공장으로 바꿔야 합니다. 얼마나 더 죽고, 얼마나 더 병들어야 산재를 인정해줄 것입니까."
반올림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불산 누출 사고가 난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1934건의 법 위반 사례가 적발된 점을 들며 "화성공장보다 더 낙후한 기흥·온양공장은 어땠겠나"라고 호소했다.
황상기 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을 제작하고 있는 윤기호PD는 "상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무엇을 무서워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제작을) 결심하게 됐다"며 "아직 제작비를 더 모아야 하지만 도움이 늘어날 것이고 많은 이들이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는데 꼭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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