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삼성가(家) 재산 분쟁' 판결이 과거 '삼성 특검' 수사 결과와 배치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가 14일 밝혔다. 당시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삼성 특검의 부실함이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씨가 지난해 이건희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에서 이 씨가 요구하는 삼성생명 주식 등의 상속재산이 10년의 제척기간이 경과했거나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부분 각하, 부분 기각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 이건희 회장의 완승으로 끝난 판결이었다.
이번 상속 분쟁이 삼성에 대한 이 회장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정도의 판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세간의 예상이었고, 판결 내용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누가 승리했는가를 떠나 이건희 회장의 상속재산에 대한 재판부의 성격 규명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우선 재판부가 삼성생명 차명주식의 상당 부분이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이 아니라 1988년 삼성생명 유상증자 당시 제일제당, 신세계의 실권분이 차명재산으로 전환된 결과임을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이러한 판단은 삼성그룹 임직원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이 이건희 회장이 상속받은 차명재산이라고 밝힌 2008년 '삼성 특검'의 입장과 배치된다. 삼성 특검은 당시 임직원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 51.75%가 상속된 차명재산이라고 발표했는데, 재판부가 이번 판결에서 1988년 9월 삼성생명의 유상증자로 발행된 신주 중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실권분 26%가 새로운 차명재산으로 전환됐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들에게 차명재산 지키는 법 가르쳐준 판결"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특검은 당시 (삼성생명 차명주식이 상속재산이 아니라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이건희 회장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차명주식 전부가 상속재산이라고 판단했는데, 이 부분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이 재확인되었다"며 "삼성 특검은 시민단체도 확인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간과함으로써 사실상 '삼성 봐주기' 내지 '삼성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이처럼 삼성 특검은 차명재산의 원천과 그 사용처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음으로써 이번 삼성가 형제들 간 상속 분쟁의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법 정의와 경제 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 호기를 날려버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당시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삼성생명 주식 실권은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및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과 같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총수일가가 불법적 사익을 취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으므로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상의 불법 행위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그 어떠한 형사적·민사적 제재도 받지 않았다"며 "이번 1심 판결 내용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이건희 회장은 형제들에게도 재산을 나누어주지 않아도 되지만 이건희 회장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이, 그리고 삼성그룹의 소유구조의 골간이 불법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이번 재산 분쟁 판결의 문제점 역시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우선 재판부가 액면분할로 증가된 주식은 상속재산으로 인정하고, 무상증자로 증가된 주식은 상속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아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이번 판결의 한계로 남았다고 경제개혁연대는 설명했다.
또 이건희 회장은 상속받은 삼성생명 차명주식 등을 혼자 관리하면서 배당금과 의결권 등을 독차지했지만, 10년의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공동상속인들의 권리가 소멸된다는 결론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결론적으로 상속재산을 10년간 '숨기'거나 다른 재산과 '섞기'만 하면 다른 공동상속인들이 상속회복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이번 판결은 재벌 총수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차명재산을 지킬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지침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차명재산의 운용·관리 등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너무 미흡한 것이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초래한 근본 원인인 만큼 금융실명법 등의 법제도적 개선 노력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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