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고무된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인 300명(제조업 200명, 도소매·서비스업 소상공인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인이 바라보는 경제 민주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소기업인이 생각하는 경제 민주화의 우선순위는 '대·중소기업의 시장 불균형 해결'이 63.1%,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개선이 20.0%, 신용카드 수수료 등 불합리한 제도 개선 9.8%, 재벌 해체 또는 재벌 개혁 3.6% 등의 순서였다.
중소기업계가 바라본 경제 민주화의 3대 과제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번 결과에 대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양극화와 대기업의 사업 확장에 따른 심각한 시장 불균형에 대한 중소기업의 문제의식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즉, 중소기업 업계가 바라는 경제 민주화는 시장의 불균형, 거래의 불공정, 제도의 불합리 등 '3불 문제'의 해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87.0%는 '경제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정부의 역할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응답했으며, 85.7%는 '경제 민주화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중소기업의 88.3%는 '이제는 우리 사회가 경제 민주화를 논의할 시기'라고 답했으며, 73.0%는 '경제 민주화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라고 응답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가? 더구나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 개편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성장으로 이끌어 복지 친화적인 기업 환경으로 만들 수 있는가가 관건인 문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정책으로 한국의 산업은 중화학공업, 조선, 전자, 반도체 등 재벌과 대기업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는 대기업의 성공이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이끌어오던 때여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이 더뎌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신자유주의는 확산하였고 산업은 점차 양극화되었다.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가 심화하였고, 대기업과 재벌의 반시장적 행위로 중소기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간한 '2012년 중소기업 위상 지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은 대기업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중소기업의 수출은 지난 2011년 기준 총 수출액의 18.3%로 2010년 대비 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 진출이 늘고 기술 경쟁력이 높아졌지만, 중소기업은 질적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중앙회의 2010년도 조사 자료에 의하면, 중소기업의 1인당 평균 연간 급여는 대기업의 46.9%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전체 산업체 수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종사자의 88%가 중소기업에 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시장 만능과 경쟁 지상의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로 집중화되었다. 이에 대기업은 상생과 동반성장의 길을 버리고 치명적인 하도급 구조를 통한 영원한 노예 계약과 기술 탈취 등의 편법과 탈법을 동원하여 중소기업을 압착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 그중에서도 고환율 정책은 수출 대기업에는 시장 확대와 수익의 극대화를 가져다줌으로써 고성장을 거듭하게 했지만, 원자재를 수입하여 이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에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초래했다. 이에 더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로 인한 이중고를 겪으면서 차례로 한계기업으로 내몰리고 무너져갔다.
더구나 대기업, 그리고 오너와 그 일가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 빵집, 커피, 떡볶이, 순대 등의 골목 상권까지 침범함으로써 자영업자들의 삶도 점차 피폐해졌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경제 구조는 사회 양극화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적 부를 시장 경제의 승자가 독식하는 기형적인 형태는 우리 사회를 점차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이제는 경제 민주화가 시대의 대세이고, 이에 역행하는 고삐 풀린 시장은 점차 정리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내놓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 구조 전환'은 그 방향성이 옳다고 본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건강한 기업 생태계의 조성, 중소기업의 자체적인 노력,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여기에 대기업의 추가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 등으로 자본의 자기 복제성, 자기 교배성을 차단하여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보다는 시장의 공정 경쟁에 방점을 둔 경제 민주화 공약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
한계기업의 퇴출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필요성
그러나 이러한 정책만으로는 결코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를 이룰 수 없다. 우리의 경제가 잘 성장하게끔 하고 기본이 탄탄한 내수 중심의 경제와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 민주화 정책과 중소기업 우대 정책에 더해 한계에 달한 중소기업의 퇴출 정책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라는 개입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한계기업을 단호하게 퇴출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먼저 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등의 보편적 복지 정책과 실업수당제도가 잘 짜여 있어야 한다.
이에 더해, 실업자에 대한 지속적인 재훈련과 재취업을 정부가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산업의 구조조정에 조응하여 노동 시장의 유연화가 가능해진다. 결국 국가는 개별적인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을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적 개입을 구조화해야 한다. 가령, 스웨덴에서 혁신적 노동시장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노동자들이 "시장을 설계했다." 이것을 가능하게끔 한 것은 실업급여 등의 보편적 복지 정책과 연대임금제도의 덕분이었다.
연대임금제도는 저효율 기업을 구조 개선하거나 퇴출하고, 고효율 기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산업을 구조조정했다. 이는 놀라운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A 기업의 평균 연봉이 4000만 원, B 기업의 평균 연봉이 2000만 원일 경우, 연대임금제도를 시행하여 A, B 기업의 연봉이 모두 3000만 원으로 정해졌다고 해보자. B 기업은 생산구조를 합리화하지 못하면 퇴출당한다. A 기업은 비용이 절감되므로 이를 재투자해서 규모와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
노동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산업의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산업 전체는 고도화되고 효율화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실업자를 보편적 복지 안전망으로 보호하고, 재교육을 통하여 노동의 질을 높이고, 직업 소개를 통하여 직업의 사회적 이동성을 보장해준다. 이것이 유명한 <렌-마이드너 모델>이다. 이 모델로 겨우겨우 연명하던 한계기업은 퇴출당하고, 노동시장은 더 유연해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비정규직 양산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한다는 것은 스웨덴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스웨덴에서 비정규직이란 파트타임 노동자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국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한계기업을 연명케 하는 수단이 됨으로써 노동시장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려 왔다. 비정규직의 양산을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양극화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는 자살률 세계 1위와 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기록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한계 중소기업을 연명시키는 것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개편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계 중소기업을 퇴출시키고, 국가가 실업급여와 실업수당을 통해 실업자를 보호하고, 직업 기술 재교육과 직업 소개 등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직업의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 보편주의 원리의 역동적 복지국가는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네 삶의 제도적 환경을 바꿀 때
이제 우리 사회도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를 동시적으로 시행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정부에 한발 다가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가 반드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렇게 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 복지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증세를 통하여 박근혜 정부의 보편적 복지 정책을 뒷받침하여야 하고,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을 인상해 경쟁력 없는 업체가 문을 닫더라도 이를 감수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실업급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용보험의 사각지대 때문에 사실상 실업자의 절반 정도가 실업급여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정부 재정으로 운영하는 실업 부조가 필요하다. 직업 훈련에도 많은 정부 재정이 들어간다.
실업자에 대한 지속적인 재훈련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국가는 적극 개입해야 한다. 한계기업을 연명시키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격차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중소기업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국가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하여 노동자가 현재의 일자리에 연연하지 않고도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재교육과 직업을 알선하고, 노동자들이 현재의 일자리를 잃더라도 생존권을 위협받지 않는 정책을 뒷받침한다면, 우리나라는 불안 없이 역동적 복지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더 이상 해고 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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