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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 파는 아내, 차마 못 보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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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 파는 아내, 차마 못 보는 남편

[기고] 울산 철탑 밑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크리스마스

천의봉·최병승 씨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울산 현대차 명촌주차장 철탑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15일 현재 91일 차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7일에 시작한 고공농성이 해를 넘기고, 영하 10도를 밑도는 겨울 강추위 속에서 힘겹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로 예정되었던 15차 불법 파견 특별 교섭은 정규직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와 비정규직 노조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노조)의 입장 차이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2010년 7월과 2012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 파견이며 이들이 현대차의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모르쇠와 폭력으로 일관하던 현대차가 내놓은 안은 불법 파견 정규직화가 아닌, 회사 측 기준에 따라 선별 채용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신규 채용'이었습니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비정규직지회는 해고 조합원을 포함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2010년 이후 일부 해고자들에 대해서만 하청업체 재입사 안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측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모집 공고를 냈다가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로 보류했던 '현대차 사내 하도급 업체 재직자' 정규직 신규 채용을 강행하고 있으며, 2016년까지 비정규직 35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사측은 지난 7일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최병승 씨에게 '9일부터 출근하라'는 인사명령을 내려 '해고 명분 쌓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울산지방법원은 한전과 현대차가 낸 '퇴거 단행 및 출입 금지 가처분 신청'과 '사내하청 불법 집회 금지 및 업무방해 등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 8일 농성장 철거 강제 집행을 시도하였으나, 조합원들의 저항으로 현수막 10여 개를 떼어낸 후 강제 집행을 중단하고 돌아갔습니다. 15일부터는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1인당 매일 30만 원씩, 총 60만 원의 간접 강제금이 부과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힘겨운 여건에서도 한겨울 고공농성 중인 천의봉·최병승 씨를 포함한 아산·울산·전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은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밤, 대법원 판결에 따른 불법 파견 인정과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마음을 담은 글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운 삽화를 넣을 수 있게 배려해주신 그림책아저씨님께 감사드립니다. <필자 주>

▲지난 5일, 천의봉·최병승 씨가 고공농성 중인 울산 현대차 명촌주차장 철탑 농성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시 희망만들기'의 한 장면. ⓒ연정

"우리 결혼반지 팔아야겠다…."
"그게 뭔 말이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형수랑 영화라도 한 편 보라"는 동료들의 배려로 모처럼 집에 온 광수(가명) 씨가 마치 아내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묻는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며 가졌던 '아내와 술 한잔하겠다'는 소박한 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결혼반지 팔자고…."
"와 그라는데?"
"애들 어린이집에 돈 보내야 된다."
"꼭 그래야 되나? 이거는 아니잖아."
"결혼반지가 모 필요하나? 나중에 좋은 거 해주라."
"…미안하다. 나중에 내가 좋은 거 해줄게."

광수 씨는 더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결국 아내와 함께 결혼반지를 팔러 나갔다. 아내가 금은방에서 반지 근수를 재고 반지를 팔고 있을 때, 광수 씨는 차마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결혼 7년차. 30년 동안 곱게 생활해 온 사람이 신랑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처가에 보내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두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광수 씨가 해고된 후에 아내가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불판을 닦아 번 돈으로 두 어린 딸을 키우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투쟁을 하고 있다. 그래도 여의치가 않아 결혼 예물과 패물을 팔아 생활해오고 있던 터였다. 문제가 잘 풀려서 아내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에 대한 미안함도 밀려온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철탑 위에서 보내고 있는 두 동지에게 물질과 마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고, 2010년도에 자신을 믿고 투쟁했던 현장 안에 있는 조합원들에게는 아직 좋은 안이 안 나오는 게 미안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흐른다.

"여서 뭐하노? 가자."

어느덧 반지를 팔고 나온 아내가 그의 팔을 잡는다. 정신을 차리고, 옷소매로 재빠르게 눈물을 훔친 광수 씨가 아내의 찬 손을 잡아 자신의 점퍼 주머니에 넣고 터벅터벅 걷는다.

"미안하다. 신랑 잘못 만나 그렇다고 생각해라. 나중에 잘됐을 때 같이 잘 살자. 좋은 거 해주꾸마. 다이아반지 해 줄게."

광수 씨가 크리스마스이브에 한 일은 결혼반지를 판 것이었지만, 그날 밤 그는 소망대로 아내와 술을 한잔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여느 날과 같이 김 씨는 철탑으로, 아내는 식당으로 각자 출근한다.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 내용을 그린 삽화. ⓒ그림책아저씨 mrpicturebook.com

비정규직 없으면 차 못 만든다

2012년 크리스마스 밤, 최병승·천의봉 씨가 철탑 고공농성 중인 울산 현대자동차 명촌주차장 농성장에서 만난 광수 씨는 30대 중반의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다. 2003년 입사해 울산 현대차 1공장 조립공정에서 베르나와 클릭 등에 타이어를 장착했다. 그는 2011년 울산공장 CTS 점거파업 농성으로 인해 해고를 당했고, 현재 부당해고 소송 중이다.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작업하죠. 업체 노동자들이 타이어를 달지 않으면 차를 내려서 작업할 수 없는 게 현대자동차의 컨베이어 시스템이에요. 혼재(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 라인에서 뒤섞여 일하는 방식을 뜻함)가 아니라도 업체를 빼면 작업이 안 돼요. 완성차를 만들 수 없어요. 혼재냐 아니냐, 컨베이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비정규직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차 생산이 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죠. 그게 자동차 생산 시스템이고, 현대자동차의 생산 시스템입니다."

광수 씨가 들어오기 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돼 일했던 그 공정에서, 현재는 하청업체 비정규직들만 일한다. 광수 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되었느냐의 여부가 불법 파견의 핵심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지난해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과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비용을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불법 파견된 사내하청 노동자 8270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그 전해 현대차 순이익(4조7000억 원)의 6%인 2859억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당, 청소, 경비 등 1만3000명의 비정규직 전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용은 9.6%로 추산되었다. 심상정 의원은 "현대차 순이익의 6%면 8조 자산가인 정몽구 회장 개인 돈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규모"라고 지적하기도 했었다.

정규직 사원증, 가장 소중한 크리스마스 선물

해고 3년차를 며칠 앞두고 있는 요즈음 광수 씨는 대법원에서 인정한 불법 파견을 무시하고 신규 채용안만을 고집하는 사측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속상하다고 했다. 생계 문제와 고생하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힘도 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해보고 싶단다. "안에 있는 동지들도, 바깥에 있는 해고자들도 정말 마음 다지고 제대로 싸워야 된다"고 했다. 광수 씨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받고 싶은 선물과 주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정규직이죠. 여기 있는 해고자나 다른 어느 동지한테나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은 정규직 사원증입니다. 제 뼈를 갈아서라도 할 수 있다면 그걸 이 동지들한테 주고 싶어요. 그게 진짜 제 속에 있는 진심입니다."

'항상 웃으면서 투쟁한다'는 기조로 생활한다는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박종평 의장은 철탑 밑에서 해고된 조합원들이 늘 농성장 사수를 하고 있는데, 연대 오는 분들이 위에 있는 두 사람만 챙겨준다며 웃는다.

"2010년에만 56명이 해고가 됐어요. 그 이전의 해고자들은 수도 없이 많고요. 노조 간부들이 다 해고자거든요. 생계 때문에 일하러 간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해고자는 25명 정도 됩니다. 낮에 왔다가 저녁에 애 보러 가는 분도 있고요."

박 의장은 "모든 조합원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대중공업 고(故) 이운남 조직부장 이야기를 하면서 가슴 아프고 슬프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했다. 다음날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는 고 이운남 조직부장은 지난 21일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용역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괴로워했다고 한다. 박 의장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컴퓨터 본체를 사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정규직이 되면 꼭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박 의장 역시 자신과 동료들이 정규직이 돼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한다.

"제가 능력이 되면 동료들한테 정규직 사원증 만들어주고 정규직으로 고용이라도 하고 싶어요. 여기 있는 분들, 정말 순수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거든요. 모두 행복하게 다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고공 농성 중인 울산공장 철탑 농성장 밑에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만들어졌다. ⓒ연정

컵라면과 배추된장국

철탑 아래 농성장 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던 해고 노동자들이 컵라면을 먹겠다며 주방 천막으로 들어간다. 날달걀 하나를 깨서 얹은 컵라면을 보니 침이 넘어간다. 주방에서 철탑 농성장 '짬장(주방장)' 박두원 씨가 조합원들이 먹을 야식을 챙기고 있다. 10월 철탑 고공농성이 시작된 이후 노조 총무의 지명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시작한 요리가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농성장 전체 식사를 다 준비하느라 벅찼는데, 지금은 철탑 위 두 노동자와 노조 임원·해고자 등 20명 분의 식사만 준비해 할 만하단다.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요. 요즘 바깥에서 밥을 먹다보면 조미료를 많이 쓰잖아요. 저는 위에 있는 동지들 건강을 위해서 그런 조미료를 안 넣고 육수를 내갖고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박두원 씨는 현대자동차 들어오기 전에 중국집 주방 보조 일을 한 경험이 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철탑에 배추된장국을 올리고, 저녁에는 해물 카레 볶음 우동을 만들어 밥, 달걀국과 함께 올렸다. 원래 계획은 떡 케이크와 와인이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면을 올리게 됐다며 아쉬워한다. 인터넷 레시피를 참고해서 메뉴를 정한다는 박두원 씨는, 천의봉·최병승 씨에게 가능하면 식사 때마다 다른 음식을 올려주려고 노력한다. 박 씨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보쌈과 된장찌개다. 만들어서 위에 올려줬더니 맛있다고 했다며 웃는다.

"맛있다고 해주면 좋긴 한데요. 맛없을 땐 맛없다고 얘기를 해줘도 되는데…. 다 맛있다고 그라니까 그게 진심인지, 안 그라면 고생한다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함께 웃고 싶어요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지 12년이 되는 박두원 씨 역시 2010년 파업으로 해고를 당했다. 그는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과 피해 보상, 명예회복·원상회복 등 비정규직노조에서 요구하는 6대 요구안이 관철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후손들이 고통스런 비정규직으로 살지 않는 건강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했다.

"뭐 올려줄까?"
"의봉아! 사랑해!!"

철탑 위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밑에 있던 해고노동자들이 손을 흔들며 외친다. 천의봉·최병승 씨는 지난 21일과 22일 한진중공업지회 고 최강서 조직차장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고 이운남 초대 조직부장의 사망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21일 저녁, 최병승 씨가 저산소증 쇼크로 인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회복되는 일도 있었다. 밑에 있는 조합원들은 힘든 시간을 견디는 위쪽의 두 사람을 위해 철탑에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는데, 두 노동자가 원치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 고공농성 중인 최병승 씨는 '운남이 형 선물인 듯하여 계속 눈물이 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주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물어보자 "위에 있는 두 동지들을 가족들한테 보내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해 올라갔던 그들이 비정규직이 철폐되어 내려올 수 있게 밑에서 지키겠다고 했다.

"받고 싶은 선물요? 같이 힘들어하고 눈물 흘린 모든 사람들과 다 같이 모여 웃고 싶어요."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는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값진 물건을 팔아 상대방을 기쁘게 해줄 선물을 사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는 남편에게 금시곗줄을 사주기 위해 소중히 길러온 긴 머리칼을 팔고, 남편은 아내에게 보석이 박힌 머리빗을 사주기 위해 가보로 물려받은 소중한 시계를 판다. 오 헨리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값진 보물을 상대방을 위해 가장 어리석게 희생해버린 가난한 이들 두 사람이야말로 선물을 주고받는 세상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동쪽에서 별을 보고 찾아와 선물로 황금과 유향, 몰약을 드린 참으로 현명한 동방박사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밤, 울산 현대자동차 철탑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고단한 이 시대에 동료들을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값진 보물을 선물하는 동방박사가 아닐까?

이운남 조직부장 장례식장에 간다고 하자 해고 노동자들이 "이곳의 따뜻한 온기를 전해 달라"며 인사를 한다.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철탑 농성장을 떠난다. 밤바다 바람에 묻어오는 해고 노동자들의 웃음소리가 따뜻하다.

*본 글은 <정세와 노동> 1월호와 <참세상>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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