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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자유' 지키던 20대 천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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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자유' 지키던 20대 천재의 죽음

미국 정부 수사 받던 에런 스워츠, 자택에서 목매 숨져

인터넷 서핑에 익숙한 이들은 RSS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Rich Site Summary'의 약자인 RSS는 블로그나 뉴스 사이트 등에서 제공하는 주소를 등록해 놓으면, 웹사이트에 매번 접속하지 않고도 새로 게재된 글을 자동으로 받아 읽게 해주는 기술이다(예컨대 <프레시안>의 RSS 피드를 받아보기 위해서는 전용 RSS 주소(☞바로 가기)를 등록하면 된다).

2000년 12월 RSS 1.0 버전을 만든 프로그래머 사이에 1986년 11월 8일생으로 만 14세에 불과했던 컴퓨터 영재 한 명이 끼어 있었다. 컴퓨터 회사를 운영하던 로버트 스워츠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둘러싸여 자라온 에런 스워츠라는 소년이었다. 에런 스워츠는 그 후 '모든 이는 온라인상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모토를 내세운 인터넷 활동가가 됐다.

하지만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뉴욕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만 26세. 평소에도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고통을 겪던 그였지만, 최근 그에게 해킹 혐의를 적용해 압박을 가하던 미국 수사당국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유가족들과 인터넷 활동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2008년 미국 연방법원의 전자문서시스템(PACER)에서 약 2000만 쪽에 달하는 문건을 내려받은 것이다. 일반 이용자들이 PACER를 이용하려면 소정의 이용료를 내야 하지만, 스워츠와 같은 인터넷 활동가들은 이미 대중의 비용으로 구축된 자료를 다시 돈을 내 열람하는 것에 대해 반대해 왔다.

이어서 스워츠는 2010년 후반에서 2011년 초반에 걸쳐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디지털 학술도서관 JSTOR에서 480만 건의 논문과 서류를 내려받았다. MIT나 JSTOR 측은 그를 고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수사당국은 그가 내려받은 자료를 포기하겠다고 합의한 이후에도 사기 및 컴퓨터 범죄 등 최대 13개 혐의를 적용해 스워츠를 압박해 왔다.

인터넷 활동가들은 미국 수사당국이 인터넷 자유를 옹호하는 진영을 압박하기 위해 스워츠를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고 비난한다. 스워츠가 인터넷에 대해 지켜온 신념은 지난해 미국에서 해적 행위 방지 입법 시도에서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인터넷 통제 시도와 상충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컴퓨터 천재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다음은 <뉴욕타임스>가 12일 게재한 스워츠의 부고 기사 중 주요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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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정보의 자유 지키려던 20대 천재 프로그래머의 죽음

▲ 지난달 촬영된 에런 스워츠의 사진. ⓒAP=연합뉴스
10대의 나이로 인터넷 이용자들의 콘텐츠 전달 방식에 영원한 변화를 가져온 기술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이후 자유로운 정보 이용을 위한 전사가 됐던 천재 프로그래머 에런 스워츠가 11일 뉴욕에 있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워츠의 삼촌 마이클 울프는 26세인 스워츠가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보인다며 스워츠의 친구가 시신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14세 때 스워츠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온라인 정보를 구독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인 RSS 개발을 도왔다. 그는 나중에 인터넷 세계에서 민중의 영웅(folk hero)이 돼 온라인상의 많은 파일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하지만 2011년 7월 스워츠는 과학·문학 분야 학술자료를 제공하는 JSTOR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불법으로 얻어 전체 데이터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480만 건의 논문 및 서류를 내려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그에게 적용된) 온라인 사기 및 컴퓨터 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었으며 그는 최대 35년의 징역형 및 100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IT분야 자문단으로 일했으며 뉴욕 카르도조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수전 크로포드는 "에런은 전 세계 정보의 흐름을 바꾼 놀라운 신기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워츠가 "이해하기 힘든 천재"였다며 "나이 든 이들도 그에게 경외심을 갖고 다가갔다"고 말했다.

삼촌 울프는 과거에 우울증 및 자살 충동과 싸우는 자신에 관한 글을 썼던 조카에 대해 "세계를 바라보고, 머릿속에 확고한 논리를 세웠지만 세상이 그런 논리에 필연적으로 부합한 것은 아니었다. (에런은) 그것에 때때로 힘들어 했다"고 회상했다.

스워츠는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뒤 회사 및 단체를 세우고, 또 하버드대 에드먼드 사프라 윤리센터의 연구원이 되는 등 떠돌이 삶을 살았다. 그가 세운 회사는 (나중에) 유명 온라인 뉴스 사이트 '레딧'(Reddit)에 합병됐다. 그는 또 할리우드 영화 자본의 지지를 업은 인터넷 해적 행위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등 사회정의 이슈에 대한 온라인 캠페인을 촉구하는 단체 '디맨드 프로그레스'(Demand Progress)를 공동 설립했다.

대중은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정보 공개 활동에 참여했을 때 문제점을 찾았다. 2008년 그는 미국 연방법원 전자문서시스템인 PACER에 접속했다. PACER의 문서는 1장당 10센트가 과금된다. 그런데 정부 문서에 더 용이하게 접근하자는 모토로 설립된 'Public.Resource.Org'의 창립자 칼 맬러머드와 같은 활동가들은 그런 문서들이 애초에 국민의 비용으로 생산된 만큼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 합법적으로 문서를 획득해 무료로 온라인에 게재하려는 맬러머드의 이러한 노력에 동참해 스워츠는 공공 도서관의 무료 계정으로 PACER의 전체 자료의 약 20%에 달하는 2000만 페이지의 문서를 내려받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정부는 그 프로그램을 차단했고, 맬러머드는 자신들이 아무런 법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법적 문제가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에 떨었다. 그는 한 기사에서 "난 즉각적으로 법원이 과잉 대응할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그는 스워츠에게 "변호사와 얘기할 필요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스워츠는 2009년 인터뷰에서 "난 연방 수사관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상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 열쇠를 걸어 잠그고 한동안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모친에게 전화를 했다고 덧붙였다. 연방 수사당국은 이 사안을 조사했지만 기소하지는 않았다.

스워츠는 2011년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 연방 수사당국의 기소장에 따르면, 대중이 JSTOR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MIT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침입했다. 이를 위해 캠퍼스 내 컴퓨터 관련 배선을 뜯어내 노트북을 연결하고 가짜 아이디로 대학 네트워크에 접속했다고 연방 수사관들은 밝혔다.

스워츠는 480만 개의 문서가 담긴 자신의 하드 드라이브를 포기했고, JSTOR 측은 이 사건을 고발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카르멘 오티즈 미국 연방검사는 "당신이 컴퓨터를 쓰건 쇠지렛대를 쓰건, 문서와 데이터를 훔치건 돈을 훔치건 도둑질은 도둑질이다"라며 압박했다.

1995년에 세워진 JSTOR는 비영리 재단이지만 온라인 학술 발간자료 구독료로 수만 달러를 벌 수 있다. JSTOR은 자료를 모으고 게재하는 데 돈이 필요하며 때에 따라 보조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9일 JSTOR는 1200 종류의 학술지 내용을 대중에게 자유롭게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맬러머드는 스워츠의 행동에 찬성하지는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지식에 대한 접근과 정의에 대한 접근은 모두 돈 문제로 귀결되며, 에런은 이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이를 결코 범죄 행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워츠는 자신의 재판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지인 퀸 노튼은 12일 그가 재판에 대해 말할 때를 언급하며 "재판이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든 것은 확실하다. 재판이 그를 몰아붙였다"라고 말했다.

노튼은 최근 몇 년이 스워츠에게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스워츠는 힘들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 노튼은 구체적인 병명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워츠가 "우울증과 함께 만성적이고 고통스러운 병과 싸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워츠는 여전히 "적어도 세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희망에 차 있었다고 노튼은 덧붙였다.

SF소설가이자 인터넷 활동가 코리 닥터로는 자신이 공동 편집하는 블로그 '보잉보잉넷'(BoingBoing.net)에 추모글을 올렸다. 그는 한 이메일에서 스워츠에 대해 "타협할 줄 모르고, 원칙주의자이며, 똑똑하고, 흠이 있지만 사랑스럽고, 배려하며, 멋진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는 에런 스워츠와 함께 있어 더 나은 곳이 됐다"고 덧붙였다.

닥터로는 스워츠가 가까운 지인들에게 강요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썼다. 그는 "에런은 세상 사람들과 친구, 자신의 멘토들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규범을 요구했다. 그 규범은 그가 자신에게 설정한 것과 같다. 하지만 이는 누구도 (아마도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에겐 강요하지 않는 우정의 증거다"라고 밝혔다.

2007년 인터뷰에서 스워츠는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자살에 대해 생각했던 경험을 설명했다. 그는 또 (자신의 블로그에)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고 썼다. 그는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껴안으면서도 더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느끼는 기쁨을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에 화만 더 난다. 모든 것이 슬픔에 물든다"라고 썼다.

상태가 악화됐을 때 스워츠는 "마치 연이은 고통이 머릿속에 퍼져 가는 것 같다. 몸을 허우적거리며 출구를 찾지만 아무것도 없다. 번지는 것처럼 느끼고, 자신의 몸을 허우적거리고, 탈출구를 찾지만 없다. 이것도 중간 단계의 고통일 뿐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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