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고(故) 최강서 씨의 빈소를 '기습 방문'한 것에 대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실망감을 내비쳤다.
지난 2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앞 천막농성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만난 김 지도위원은 연말 들어 잇따라 발생한 노동자들의 죽음과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은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3일째이자 회사가 고인의 죽음에 대한 교섭을 세 번째 거부하던 날이었다. 최 씨의 죽음 문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노사 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통합 노력의 일환으로 순수하게 조문했다"고 밝힌 상태다.
최 씨의 죽음에 대해 김 지도위원은 "노동자들은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벼랑 끝에 몰렸다"며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무엇을 요구했고 왜 죽는지를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그는 "시대 교체, 경제 민주화, 국민 대통합을 하고자 한다면 약자들의 삶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며 "아픈 사람들의 고함을 못 들은 척하고 대통합됐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편집자>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프레시안(김윤나영) |
프레시안 : 크레인 농성을 마무리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정부에 대한 서운함도 많았을 텐데, 크레인에 올랐을 때를 포함해 지금까지의 소회를 들려 달라.
김진숙 :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노동 정책은 노동자들에겐 최악이었다. 노동자들이 의사를 전달할 통로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노동자들의 투쟁이 극단적으로 변했다.
전국 곳곳을 다녀 봐도 천막이 없는 곳이 없다. 나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많다. 단순히 단식하고 천막 치는 걸로는 누가 쳐다도 안 봤다. 송전탑이나 크레인에 올라야 겨우 알아준다. 크레인에 올라가서도 100일, 200일이 지나야 "아, 저기 사람이 있나보다" 하는 정도다.
그 정도로 노동자들이 내몰려 있다. 워낙 많은 노동자들이 잘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됐다.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았고. 그나마 싸우는 노동자들은 장기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려서 싸웠다.
그런데 정부는 제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청문회 과정에서도 사측이 경영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수주 물량을 의도적으로 필리핀으로 빼가기 위해 노사 합의 사항을 어기고 정리해고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에도 노동부 장관은 오히려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었다. 정부가 파업에 대응할 때도 무조건 밟고 깨고 연행하는 기조였다. 그러니 노사 관계가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 정부가 노사 중재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투쟁으로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나?
김진숙 : 그렇다. 정부는 최소한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용자가 무리하게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거나 노사 합의를 위반하거나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때, 사용자를 견제하고 통제하라고 정부 기관이 있는 것 아닌가. 만약 노동부가 나서서 약속 위반 사항, 노동자를 무리하게 정리해고하는 상황에 대해 제재하고 철퇴를 내렸으면, 내가 크레인에 올라갈 이유도 없었고 최강서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쌩까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나"
프레시안 : 현 정권 들어 노조에 대응하는 방식이 이전에 비해 달라졌다고 느끼나?
김진숙 : 이 정권 들어서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발레오만도, KEC 진압 과정에서 하나의 매뉴얼이 있었다. 정리해고하고, 직장 폐쇄하고, 용역깡패 투입하고, 복수노조가 만들어지고 민주노조가 무력화됐다. 정리해고가 회사 경영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다.
이런 과정에서 특히 복수노조 조항이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대단히 큰 수단이었다. 안 그래도 민주노조 운동이 위축되고 고립돼 있던 상황에서 타임오프제와 복수노조가 완전히 숨통을 끊는 역할을 했다. 한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복수로 설립하게 해놓고 교섭을 한 곳과만 하겠다는 의도는 명백하다. 한진에서도 민주노조를 탈퇴하고 복수노조에 가입하면 휴업에서 복귀시켜주고 다음 고용을 보장해주겠다면서 사람들을 협박했다. 당장 생존이 목에 걸린 노동자들이 얼마나 버티겠나. 이는 양심이나 신념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 지역에서 책임지고 선도적으로 노동운동을 해왔던 노조들이 있다. 부산의 한진중공업, 구미경북지역의 KEC, 경기 평택의 쌍용차, 대전충남의 발레오만도와 같은 사업장들을 다 폐쇄해서 똑같은 매뉴얼대로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그 결과 지역의 노동운동 전체가 다 역할을 못하고 연대가 무너져 내렸다. 복수노조 도입이 노조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민주노조를 깨기 위한 전략적인 공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노동운동이 대응을 못한 것이다. 특히 복수노조와 정리해고가 맞물리니 노동자들에게 더 고통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복수노조 제도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프레시안 :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도 들려 달라.
김진숙 : 정리해고 요건도 강화되어야 한다. 물론 기업의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때가 있다. 한진 같은 경우도 회사가 정말 어려운지 우리가 일을 해보면 안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서 정리해고가 악용된 경우가 너무 많다. 정리해고법 자체가 폐지된다면 바람직하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중간 단계로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법은 있다.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화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도 비정규직이 많은데 2년 지나고 정규직이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2년 안에 다 잘린다. 12월에 특히 해고가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12월은 계약 해지의 달로 인식될 정도다.
악법은 폐지하고 있는 법은 본연의 취지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가 전혀 제 역할을 안 한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도 노동부가 감시·감독만 제대로 하고 법으로 정해진 사안을 지키지 않는 책임자들을 처벌하기만 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쌩까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나. 이건 나라도 아니지. (대법원은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현대차에서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편집자>)
"벼랑 끝 내몰린 노동자 상황, 5년 더 연장"
프레시안 : 지난 대선 과정과 결과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다.
김진숙 : 노동자들이 문재인 씨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렇고 강서도 그랬을 것이라고 본다. 누구를 지지하고 반대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 5년이 너무 노동자들에게 고통스러웠으니까, 워낙 절박했던 만큼 뭔가 다른 변화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지금은 생존의 벼랑에 몰려 있는 사람이 풀포기 하나를 움켜쥐고 매달려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정리해고된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내가 과연 여기서 살아서 한 발을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저리 떨어질 것인가'의 기로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은 우리한테는 그 풀포기가 뽑힌 의미였다. 그만큼 절망이었다.
프레시안 : 연말 들어 잇따라 노동자들이 죽었다.
김진숙 :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던 상황이 5년 더 연장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내몰렸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졌다.
강서도 그랬지만 울산의 이운남 동지도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해고돼서 크레인 농성을 하다 용역경비들한테 개 맞듯이 맞고, 끌려 내려오자마자 구속됐다. 그 이후에 아무리 싸워도 해결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혼자 택시 운전을 하면서 살았는데 그 상처가 얼마나 컸겠나. 폭력에 의해서 자신의 의견과 요구들이 짓밟히고, 묵살당하고. 그런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철탑에 올라가고 그 다음에 하청지회 동지들이 파업을 하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피를 흘리면서 진압당하는 걸 보면서 그 고통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한국외대 지부장, 수석부지부장도 대법원 판결까지 가서 복직을 했는데 그 이후에도 노조에 대한 탄압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조합원이 30명으로 줄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나. 피를 말리는 것이지. 노조 간부를 한다는 게 이 시대에는 정의를 위해서 혹은 노사 간에 대등한 힘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돼버렸다.
2003년도에, 강서가 입사한 지 2년차쯤 됐을 땐데, 그때만 해도 자기한테 이런 일이 닥치리라는 걸 누가 상상을 했겠나. 그때는 20대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김주익·곽재규 동지가 죽었을 때만 하더라도 '저 사람들은 왜 목숨까지 던져가며 그래야 하나' 그런 생각을 안 했겠나.
프레시안 : 최강서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들려달라.
김진숙 : 크레인에 올라가기 전부터 단식도 해보고 1년 넘게 회사 앞에서 출근 시위를 했다. 오전 7시에 통근버스가 들어올 때 때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겨울엔 되게 춥다. 강서가 키가 크지 않나. 횡단보도를 건너온 강서가 출근길에 한 번씩 따뜻한 두유를 사서 내 주머니에 넣어주고 가곤 했다. 그때만 해도 그 친구가 강서라는 걸 몰랐다. 나중에 이 친구가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크레인에 있을 때도 강서는 내게 신경을 많이 써줬다. 걱정도 많이 해줬다. 그때는 조합원들이 생활관에서 철야농성을 했었다. 부산에서는 찌짐이라고 하는데, 부침개를 구워서 올려주기도 했다. 내가 크레인에 오른 뒤 밥을 잘 못 먹으니까 하얀 죽을 뽀얗게 끓여서 참기름을 얹어서 올려 보내기도 했다. 강서가 요리도 잘했다. 낚시로 도미를 잡아서 도미찜도 해줬다. 그리고 저녁마다 문자도 보내고 트위터에서 쪽지도 보내고, 세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크레인에서 내가 밥을 못 먹고 있으면 불안해했다. 2003년에 그런 일(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반대해 2003년 김주익·곽재규 씨가 목숨을 끊었다. <편집자>)을 겪은 사람들이니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러니 밥 먹으라는 소리도 못 하고 걱정만 했다. 그런데 강서는 크레인 중간지점까지 뛰어 올라와서 밥 먹으라고 고함 지르고, 끓인 죽을 밧줄에 매달아놓고 내가 가져갈 때까지 아래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강직하고 사람들한테 따뜻하고 세심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아마 자기 혼자만 그런 고통을 겪었다면 강서가 그렇게까지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료들, 동지들의 고통을 흘려보내지 못했던 거다. 자기가 그렇게라도 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아지기를, 해고자와 무기한 휴직자들이 현장에 복직해서 이전처럼 살기를 원했으니 저렇게 한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 사측은 강서의 죽음을 "생활고에 의한 죽음"이라면서 개인의 문제로 몰아간다. 막말로 서른다섯 살 시퍼런 청년이 단순히 개인의 생활고가 문제였다면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못 먹고살겠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강서는 누구보다도 정의로웠다.
2011년 11월 13일 합의안에는 휴업 얘기가 없다. 그냥 정리해고자 원직 복직이다. 그런데 사측이 그 합의를 어기고 복직자들을 무기한 휴직시켰다. 합의 이후에도 계속 탄압만 해대니까. 유서에도 있듯이 정말 "죽어라고 밀어내는 회사"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인이 회사에) 당부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던 걸 보니까.
51억 손배소 158억으로 늘리고 3000만 원 더 찾아내는 회사
프레시안 : 최강서 씨의 유서에 적힌 "158억 손배소 철회, 민주노조 사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김진숙 : 손해배상 158억3000만 원은 상징적이다. 이미 2003년에 똑같은 사안으로 두 사람(김주익, 곽재규)이 목숨을 잃었다. 손배는 또한 노사 합의를 어긴 대표적인 사례다. 노사 합의에서 분명히 "손배가압류는 최소화한다"고 약속을 했음에도 회사는 손배액을 초반 51억 원에서 158억 원으로 늘렸다. 그래놓고는 또다시 3000만 원을 찾아내서 또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이런 식으로 사람의 피를 말렸다.
사실 파업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다. 노동 3권에도 단체행동권은 보장돼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파업을 불온시하고 불법시한다. 파업하면 형사상의 책임뿐만 아니라 손배가압류 같은 민사상의 책임까지 지운다. 노동자들의 유일한 무기인 노동력을 팔지 않겠다는 게 파업이지 않나. 우리가 우리 상품을 팔지 않겠다는데 거기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민주노조 사수'라는 문구도 그렇다. 지금 이 천막농성이 210일째인데 교섭조차도 안 되지 않나. 회사는 아예 교섭권을 인정 안 한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금속노조하고는 교섭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뭘 어떻게 하겠나.
거기다가 차례차례 (한진중공업지회가 운영하던) 소비조합 폐쇄, 신협 폐쇄, 사내 병원 폐쇄, 노조 사무실 폐쇄…. 돌아다녀보면 공장이 감옥이다. 담장을 높이 쌓아놓고 출입하는 데도 하나하나 출입증을 다 확인하고, 소비조합도 없어진 상황이라 지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커피 하나 빼 마실 자판기, 담배 하나 살 데가 없다. 지금 공장을 완전히 수용소로 만들어 놨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순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무조건 탄압해서 민주노조의 목숨줄을 끊어놓는 게 목표다. 우리가 그동안 교섭 자리에서도 몇 차례 경고를 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또 다른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그런데도 저 사람들(사측)이야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안 여기는 사람들이니까.
"힘 약한 사람 짓밟고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게 상생과 화합?"
프레시안 : 박근혜 당선인은 '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 관계를 정착시키겠다'는 노동 공약을 내놓았는데, 어떻게 보나?
김진숙 : 우리가 바라는 바다. 처음부터 노동자들이 투쟁부터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봐야 조합원들이 따라주지도 않는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크레인에 올라가고 철탑에 올라가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내몰리기 때문이다.
한진 같은 경우도 교섭이 아예 안 되는 상태로 210일째다. 내가 크레인에 올라가기 전에도, 교섭을 하더라도 회사는 똑같은 얘기만 했다. "적자다. 적자다. 적자다. 사람 잘라야 한다." 우리는 "그러면 너희들 것도 내놔라." 우리를 해고한 다음날 임원들은 임금을 인상했다. 174억 원을 주주에게 배당했다. (당시 한진 측은 배당 규모가 24억 원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우리는 그 돈만 양보해도 안 잘라도 된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을 밀어붙이는데, 그나마 최소한도의 저항을 하는 것이다. 그것조차 안 먹히면 목숨을 던지고, 크레인에 올라가고, 철탑에 올라간다.
쌍용자동차도 이미 청문회에서 회계를 조작해서 부당하게 정리해고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 청문회에서 새누리당 측은 금융감독원과 법원이 각각 '회계 기준 위반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그러면 바로잡아야지. 당시 노동조합이 순환휴직 받아들이겠다, 무기한 휴업 받아들이겠다, 임금 삭감 받아들이고 보너스도 안 받겠다고 했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해고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해고를 해서 얻는 이익만큼 우리가 내놓겠다는 게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요구였다. 그런데 사측이 안 받았다. 무조건 잘랐다. 그리고 23명이 죽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올바르게 전달되고 바로잡히면 노동자들이 왜 죽고 왜 철탑에 오르고 왜 크레인에 오르겠나. 그런데 소통할 통로가 하나도 없다. 아무리 떠들고 외쳐도 누구 하나 눈여겨보는 정부 당국자가 하나 없다.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노동부에서 한 명도 안 왔다. 그럼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정부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내몰린 현실들을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쌍용차 같은 경우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들을 복직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들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한진 같은 경우도 노동자들이 탄압당하고 회사가 노사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 (정부가) 우리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합의대로만 이행해달라는 것이다.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2003년 노사 합의가 이행만 됐어도 최강서는 안 죽었다. 이후 2년 동안 투쟁을 안 해도 됐다. 그런 합의들을 자본은 번번이 어기는데 정부는 이런 자본을 왜 처벌하지 않는가. 힘 약한 사람을 짓밟아놓고 "너 꼼짝 말고 있어." 그래놓고 세상이 평화로워졌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 사람의 목숨을, 숨통을 틀어막고 "얘 암말도 안 하니까 세상이 참 평화롭네." 지금 박근혜 씨가 말하는 상생과 화합이라는 게 이런 것 아닌가.
"박근혜, 정몽구에게 대법 판결 이행하란 한마디만 했다면…"
프레시안 :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6일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한 "정리해고 자제"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프레시안(김윤나영) |
쌍용자동차. 새누리당은 분명히 대선 후에 국정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대선 끝났다. 철탑 위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1년보다 더 긴데, 그 약속들을 이렇게 방기하는 것에서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철탑 위에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박근혜 씨가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대법원 판결 이행하라고 한마디만 하면 해결된다. 막연하게 정리해고를 자제해라고 말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안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 한진 같은 경우 "노사 합의 지켜라. 너희들은 왜 합의를 안 지켜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노?" 그 말 한마디면 된다. 그래야 그 말들이 무게를 갖고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재벌 중심의 민주화가 경제 민주화인가?
프레시안 : 지난 대선 최대의 이슈 중 하나가 경제 민주화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민주화 정책을 평가하자면?
김진숙 :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노동자들이다. 사실 우리 경제가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부가 편중되는 것이 문제지. 현대차 같은 경우도 정몽구 씨의 주식 배당금은 수백억 원이다. 순이익은 수조 원이고. 그게 다 어디서 나왔겠나? 비정규직을 착취한 결과다. 이 돈을 제대로 분배하면 경제 민주화는 저절로 이뤄진다. 고용을 올바르게 하고 분배를 정의롭게 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다. 한진중공업도 적자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자르고 비정규직을 쓰면서 남긴 흑자를 사측이 일방적으로 챙겨가는 게 아니라, 해고된 노동자들을 정당하게 복직시키고 비정규직으로 고용하지 말고 노동자들을 정상적으로 신규 채용하면 부산 지역의 경제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도 노동청에 가보면 실업급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다 한진 사람들이다. 작년에는 전부 한진 작업복이었다. 하청 노동자들까지 하면 7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했던 공장이다. 그런데 지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300명이 채 안 된다. 지금 다녀보면 알겠지만 이 공장 앞에도 옛날에는 골목골목이 다 식당이었고 안전장구 파는 곳이었다. 지금은 식당이 다 문 닫았다. 한 집 남았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바로 앞의 시장도 정리해고 이후 반 이상 규모가 줄었다.
지역경제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채 외치는 경제 민주화에는 아무 내용이 없다. 그냥 미사여구다. 약자가 중심이어야 제대로 된 경제 민주화다. 그런데 우리는 전부 재벌 중심으로 민주화한다.
"황우여·한광옥, 기자들에게 사진 찍히는 게 목표인 것처럼…"
프레시안 : 비정규직, 정리해고, 불법파견 등 노동 현안 해결과 '국민 대통합'을 위해서 박근혜 당선인에게 당부할 말이 있나?
김진숙 : 며칠 전 최강서 빈소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이종훈·서용교 의원이 아무 연락 없이 왔었다. 유족과 간부들도 오는지 아무도 몰랐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간부들을 지나쳐 쑥 들어가서 분향하고, 그때서야 간부들이 새누리당에서 온 걸 알았다.
정말 분향하고 싶고 이 죽음에 대해 뭔가 대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미리 몇 날 몇 시에 어떻게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왔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자기들 생각이 어떻고 어떻게 해결됐으면 좋겠고 사측에 어떤 것들을 촉구해 보겠다는 이야기들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마치 기자들한테 사진 찍히러 온 게 목표인 것처럼 후다닥 왔다가 후다닥 가버렸다. 유족한테 위로 한마디 제대로 없었다. 여기까지 와준 건 고마운데 그건 예의도 아니고 순서도 아니다.
정말 새누리당이 선거 기간 내에 말했던 시대 교체, 경제 민주화, 국민 대통합을 하고자 한다면 약자들의 삶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왜 죽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노동자의 죽음이) 박근혜 당선인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의 절망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래야 국민 대통합이 나오지. 아파서 죽는 사람이 아파서 죽겠다고 고함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는데 다 못 들은 척하고 아픈 사람 하나도 없으니까 대통합됐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강자 중심이 아니라 약자 중심의 통합이 돼야 한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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