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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경제민주화 모른다"

[이정전 칼럼] "박근혜, '신뢰받는 정치인' 맞나?"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대를 넘으면서 우리나라는 20-50클럽에 가입하였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경제대국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행복도는 선진국처럼 상당히 높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 직후 한 해를 빼고는 경제성장이 꾸준히 지속되었고 소득수준도 계속 높아졌는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고,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안철수 전 후보의 말대로 높은 자살률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낮은 출산율은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어두운가를 요약해서 말해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한국개발원(KDI)은 우리나라의 '삶의 질'이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한국개발원이 개발한 지표에 따르면 삶의 질에서 우리나라는 OECD의 39개국 중에서 27위를 기록했다. 100명 중에서 70등 한 셈이다. 최근(2012년 10월)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우리 국민의 삶의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론조사에서 눈에 띠는 점은,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행복감의 정도도 높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높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계층에서는 38.3%인 반면, 200만 원이하의 계층에서는 16%에 불과하였다. 이 결과는 선진국의 경우와 다르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국민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선진국에서 일관성 있게 관찰되면서 이른바 "행복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왔다. 과거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우리나라도 행복의 역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단계에 와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우리 국민 대부분이 행복의 역설을 그리 실감나게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 비록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대에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빈부격차가 워낙 커서 국민의 대부분이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행복의 역설은 오직 우리나라 소수의 부유층, 즉 3인 가족 기준으로 연봉 7,8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에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고소득계층의 경우 소득수준이 높아지더라도 그들의 행복도는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중·저소득계층의 경제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긴요하다.

요즈음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구호로 시끄럽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놓고 말이 많지만, 결국 그 핵심은 빈부격차 완화다. 어차피 양극화의 해소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정치권이 진정 경제민주화를 이루려 한다면, 우리나라 중·저소득계층의 소득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이 떠드는 경제민주화는 왠지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나마 경제민주화를 가장 소리 높여 외치던 박근혜 후보가 최근 재벌규제에서 한 발 빼면서 경제민주화 구호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고 말았다.

박근혜 후보의 전략은 경제성장과 경제민주화를 상충된 별개의 것으로 보고 각각을 따로 추진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이다. 이 전략을 재벌 쪽에서 강력하게 요구하였겠지만, 박후보 주위에 포진해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전문가들이 재벌 쪽의 요구에 적극 호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하며 정부는 시장에서 최대한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기조다. 이런 신자유주의 '정경분리의 원칙'에서 보면, 성장은 경제적인 이슈고 경제민주화는 정치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이 둘은 별개의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입장은 '선 성장, 후 분배' 혹은 '선 효율, 후 형평'의 원칙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에 대한 미국 재계 및 정계 지도자들의 맹신이 2008년 미국 금융붕괴를 가져오고 세계경제위기를 초래한 한 원인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4.0을 쓴 칼레츠키의 진단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재계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이 어떻게 한 나라 경제를 망치는지를 자세히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붕괴에 이은 세계경제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한 가지 뼈아픈 교훈은, 성장과 분배 그리고 효율과 형평이 상충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분배가 잘 되어야만 지속적 성장이 가능해질 정도로 오늘날 우리나라와 미국의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빈부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일반 서민의 지갑이 가벼워지다 보니 내수도 꽁꽁 얼어버렸고, 계층간 격차가 고착화되다보니 우리나라 경제의 기둥이 되어야 할 청장년층이 희망과 활기를 잃고 있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지속적 성장과 효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을 위축시킨다고 재벌들이 주장하지만, 그러면 과거 대기업 친화적 성장정책이 과연 서민들의 경제여건과 고용창출에 얼마나 기여하였던가. 지난 10년 고용 없는 경제성장을 우리는 맥없이 쳐다보기만 하지 않았던가.

경제민주화는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그럼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시장의 질서가 바로 잡혀야만 비로소 중소기업이 활기를 찾게 되고 고용이 늘어나며, 나아가서 효율과 경제성장이 뒤따르게 된다. 요컨대,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은 상충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구상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박근혜후보는 김위원장의 이런 깊은 의도에 공감하고 힘을 실어줌으로써 경제민주화 논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후보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그래서 박후보는 경제민주화를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박후보의 변절은 '국민행복추진'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소 그녀가 높이 쳐들었던 '신뢰받는 정치인'의 구호조차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훌륭한 대통령이 되려면 시대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과거에 비해서 성장보다는 분배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시되는 시대요, 효율보다는 공정성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다. 박후보는 이런 시대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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