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죽음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계속되는 죽음은, 한국 사회 불안정성의 결과이자 경향이다. 1964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시행된 이래,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 수는 8만1393명이다. 2010년 '활동하는 의사 수 8만4489명'과 비등한 숫자다. 의사가 그렇게 죽어나갔다면 세상은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화재참사로 40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법원이 해당 기업에게 내린 벌금은 죽은 노동자 1명당 50만 원이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수가 우리나라의 14분의 1(2010년 기준)에 불과한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일터에서 발생한 죽음에 대해 '살인 행위'에 준하는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재해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후, 노동자 1명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기업에 약 7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제 노동자의 목숨 값이 낮은 한국 사회에, 일하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기업살인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 노동건강 공동행동 |
-기업살인 사회를 넘어 <1> 우리는 일터에 죽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2> 기록도 없이 사람 죽어나가는 그곳엔 무슨 일이… <3> '빽'없는 윤식이들은 '찍'소리 못하고 죽었다 <4> 순식간에 5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 단 한사람이 없어서… |
미국의 경제 구조 하에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다룬 책 <워킹 푸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월마트가 종업원들의 시간외 근무 수당 비용을 지급하지 않음으로 얻게 되는 이득에 대한 부분이다.
'남부 여섯 개 주 월마트 매장의 종업원들은 주당 40시간이라는 노동시간을 초과했음에도 회사 측이 시간외근무를 수당 없이 강제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종업원 측 변호사는 회사가 추가로 얻게 된 이익을 계산했다.
한 매장에서 250인의 시간제 사원이 일주일간 각각 1시간 수당 없는 시간외근무를 했다면 250시간의 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한 달이면 1000시간이 되고, 1년이면 1만2000시간이 된다. 텍사스 주에는 300개 이상의 월마트 매장이 있는데, 텍사스 주에서만 본래 종업원에게 돌아가야 할 30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이 절약되는 것이다.'
8달러가량의 한 시간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기업이 얻은 이익은 3000만 달러. 단 한 시간이 이 정도의 이익을 가져온다면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시간에 들어갈 비용을 '절약'할 때 기업은 얼마나 큰 이익을 얻게 될까? 더 나아가 한 사람의 근로시간 비용을 모두 '절약'한다면?
절약이 주는 이득 때문에 기업은 인력을 감축한다. 사람을 자른다.
감축의 우선순위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크지만, 때로는 정규직, 그것도 연차가 높은 직원이 될 수 있다. 연차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직원을 감원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비용을 절약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기업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나가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부양할 부모가 있고, 함께 가정을 이끌 배우자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어리거나 크거나 돈 들어갈 일은 태산인 자식들이 있다.
이득이 눈앞에 보이는데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려 하지 않으니, 기업은 여러 수단을 쓸 수 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 수단들은 대부분 폭력적이어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상처받은 이들은 아파한다. 때로 너무 아파, 죽는다.
2006년 이래 KT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204명. 사망자 수가 그 위험하다는 조선소 남부럽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자살로 인한 사망이다. 7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14명이다.
ⓒKT노동인권센터 |
회사에 불을 지를까, 자다가도 생각이 나
20년간 KT 직원이었던 A씨를 만났다. 그는 퇴직 후 몸담았던 KT 자회사에 대해 설명했다. 3년간 운영되었다가 사라진 회사다. 나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자회사를 만들어 직원들을 그리로 보냈는데, 회사가 3년 만에 없어졌다는 거지요. 그때는 전문화한다고 굳이 업무를 따로 떼어 자회사로 만들었으면서, 어떻게 몇 년 새 다시 없애버린 거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자회사는 우릴 내보내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4년 전, 중앙 전산업무 관리직이던 A씨는 KT가 VOC(고객민원처리)업무를 특화한다며 만든 자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의지로 간 것은 아니었다. 계속된 면담이 있었다. 면담의 내용은 제 발로 나가는 것이 이롭다는 것. 하지만 그는 끝까지 거부했다. 낮은 월급, 계약직인 지위도 마음에 걸렸지만, 무엇보다 자회사로의 전직이 정리해고 절차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회사는 전근 발령을 내렸다. 지방 지사의 현장직으로 발령이 났다. 이전까지 그는 IT 업무를 해왔다. 현장직이라면 전주에 올라가고 맨홀에 들어가는 일이다. 당연히 처음 접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의 거주지는 서울이었다. 한마디로 나가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4개월을 버텼다. 일은 낯설고, 다른 직원들은 윗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그를 따돌렸다. 4개월도 오래 버틴 거였다. 결국 그는 회사의 요구대로 자회사에 들어갔다.
이직할 때, KT는 약속했다. '3년 동안 업무 능력을 평가하여 상위 성적을 보이면 고용을 유지하겠다.' 그러나 3년 후, 아예 회사가 없어졌다. KT가 VOC 업무를 도로 가져간 것이다. 250여 명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 중 60여 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정리해고를 거부한 것이다. 사표를 받지 못한 회사는 그들을 또 다른 외주업체(KTIS)로 집어넣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100 콜센터이다. 낭랑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내뱉는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쉰이 넘은 그가 고객들의 상담 전화를 받는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업무 전화는 최하 60통. 인터넷, 휴대전화, 전화 등 KT의 서비스 요금 상품은 1000여 가지에 다다른다. 젊은이들이 발 빠르게 처리해도 과부하가 걸리는 업무량이다. 콜센터로 발령난 60여 명의 정리해고 거부자들은 대부분 쉰 살이 넘었다.
당연히 인사고과 점수는 D등급. 기본급이 낮고, 고과 점수에 따른 성과급이 주를 이루는 콜센터 임금체계에서 이들은 KT 정직원 때 받았던 임금의 3분의 1을 가져갈 뿐이다. 그 사이 아이 둘은 대학에 입학했다. 돈 들어갈 곳은 많고, 월급은 줄어만 간다. 게다가 이곳에 온 후 무슨 일만 있으면 징계가 내려져, 그는 이번에도 정직 5개월이다.
나는 왜 그만두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냥은 사람이 못 다니죠. 그렇지만 이게 너무 부당하다는 것을 아니까. 나는 굴복하지 않을 거다, 이런 마음으로 버티는 거예요."
처음 자회사에 들어간 이는 500여 명. 3년 사이 남은 이가 250여 명. 이들 중 사표를 쓰지 않아 콜센터로 이직된 이가 60여 명이다. 남은 이들은 '굴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버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일하면 미친다. 그도 말한다.
"지금은 그나마 진정이 됐지만, 여기로 옮기고는 한동안은 부글부글 했지요."
그는 조심스럽고 점잖은 사람이다. 그래서 초면인 나에게 '부글부글' 정도의 표현을 했다. 그러나 더 격하게 표현하는 KT 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다. B씨라 부를 그 사람은 내게 말했다.
"밤에 회사에 가서 불을 지를까 생각했어요."
밤에 누우면 울화가 치밀어 헛것까지 보였다고 한다. 어떤 날은 죽어버릴까 생각하고, 어떤 날은 회사에 불을 지를까 생각했다.
그는 민주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전근을 가야 했다. 특히 그에게 상처를 준 곳은 익산에서 군산 지사로 발령받은 후 소속된 상품판매팀이다. 상품판매팀은 보통의 영업팀하고 달랐다. 팀 구성부터가 남달랐는데, B씨처럼 민주노조 활동을 하거나 희망퇴직을 거부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구성만 보아도 회사 눈 밖에 난 직원들의 유배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일 같지도 않은 일', '자존심 구기는 치사한 일'을 했다. 아파트 돌아다니며 타업체의 전단지를 회수해오는 일 같은 거였다. 80년대 체신부에 속해있던 시절부터 현장 일을 하던 그가 전단지나 훔쳐오려니 속이 타 들어갔다.
직장 내 왕따, 감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날은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기에 경찰에 신고했는데, 범인은 회사 직원이었다. 이 정도는 약과다. 100 콜센터로 옮겨가길 거부해 상품판매팀으로 유배 온 114 직원은 관리자에게 근무시간에 사적인 업무를 보지 않았냐고 추궁당했다. 그런데 관리자가 증거라고 내놓은 것은 그녀의 일상이 분 단위로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을 본 그녀는 경악했다. 당연히 신경쇠약에 걸렸다.
B씨 또한 우울증을 겪었다. 밤에 잠이 안 와 불면증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산재 신청을 했고, 회사의 감시와 차별 때문에 생긴 직업병이라 인정받았다. 물론 KT는 직업병을 인정 못 한다며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갔다.
ⓒ정성희 |
"KT는 장치 산업이에요. 이곳에서 배운 기술은 여기를 떠나면 아무데서나 못 써요. 쓸 데가 없어요. 여길 나가면 펼쳐질 인생이 뻔한 거죠."
특정 기술을 가지고 20년 30년을 살아온 사람들. B씨는 말했다. 나간 사람 중에 고물상이라도 하면 그나마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그는 잘 살아야 했다. 그에게는 아들딸이 있었다.
"내 혼자 몸이라면 그만두지만, 우리가 전부 다 부모한테 받은 거 없고, 도토리 키 재기에, 재산도 고만고만하고. 그만큼 자존심 상하면서도 다니는 것은 다 내 새끼들 보고 그러는 거지요."
제 목소리를 내도 죄인, 나이를 먹어도 죄인 취급인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싸우고, 숨죽이고, 병에 걸릴 때까지 참는다. 때로는 참다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는 새노조 위원장에게 물었다.
"혹시 돌아가신 분들 중에서 노동조합에 와 토로하고 그랬던 분은 안 계신가요?"
위원장은 말했다.
"그 정도 되면 안 죽지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질긴데, 그럴 정신이 있으면 안 죽는다. 더 처절하게 외롭고 절망스러워야 죽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KT 노동자 14명은 그렇게 죽어갔다.
10년 간 1만 3000여 명 퇴출
그럼에도 죽은 사람, 버틴 사람보다는 회사의 뜻대로 나간 사람이 더 많다. KT가 민영화된 후 10년 간, 1만3000여 명의 노동자가 퇴출당했다. 구조조정 이전 KT의 규모는 4만4000여 명. 4분의 1가량이 사라진 것이다. 이들 중 많은 수는 A씨처럼 자회사에 계약직으로 배치되었다가 기간만료와 동시에 사라졌다. 수 천 명을 내보내는데 큰 공을 세운 CP(인력 퇴출 프로그램)는 이미 유명하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KT는 공기업 시절에 비해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국가 기간산업인 통신에서 두 배의 매출 이익을 낸 것이 그리 큰 자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익 증가는 경영진 보수 123.7% 인상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부족했는지, 얼마 전 KT 이석채 회장은 대학생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근로자들이 고급 일자리를 내놓지 않아 젊고 능력 있는 구직자들이 2류 일자리로 떠밀려 갈 수 밖에 없다."
이 말에 '나가려면, 제일 늙은 낙하산 회장이나 나가라'고 했던 해고 노동자들의 반응을 전할 필요는 없겠다. 취업의 험난함에 지친 젊은이들이 잠시 혹할 수는 있어도, 솔직히 다들 안다. 나이 든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가 그대로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19조 원의 흑자를 냈던 2009년, KT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8000여 명이었다. 그해 그 수만큼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KT 본사 정직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경쟁률이 200대 1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토록 힘겹게 들어간 KT에서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는 15년 이상 근무자들이다. 전산 관리직이었다는 A씨가 해고를 위한 단계로 자회사로 배정되었을 때 나이는 47세. 나는 말했다.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말을 줄인 표현)이네요."
그때 그가 얼마나 씁쓸하게 웃던지, 나는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기업, 아니 감원을 흑자 경영의 비결이라 보는 기업, 그곳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십오 년 후 그렇게 씁쓸히 웃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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