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했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 정책은 '경제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민주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는 극대화하는 단계적 경제민주화', '대기업집단의 장점은 살리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는 경제민주화'라는 3원칙 아래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를 천명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제적 약자의 확실한 권익보호 분야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차별 해소',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화물운송기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 '납품단가 협상력 제고', '대형유통업체의 납품·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 근절', '가맹사업자의 가맹점에 대한 불공정행위 근절', '대형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 '건설 및 IT 분야 등에서 하도급 불공정특약에 따른 중소사업자의 피해방지', '소비자 권익증진을 위해 소비자보호기금 설립', '소비자 피해구제 명령제 도입',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의 획기적 개선분야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제도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공정거래 관련 법령을 위반하는 행위 전반에 대해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해당행위의 금지를 청구하는 제도의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과 법 집행의 공정성 강화', 대기업 관련 불법행위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에 대한 엄격한 대처분야에 ''특경가법'상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 강화', '회계부정에 대한 처벌 강화',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 엄격 제한',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일가의 부당내부거래 규정 강화', '부당내부거래 발생시 부당이익 환수', 기업지배구조 개선 분야에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사외이사의 경영감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소액주주 등 비지배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시스템의 구축',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도 단계적 도입', 금산분리 강화분야에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지주회사에서 금융계열사가 일정요건 이상인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 축소', '현재 은행과 상호저축은행에 대해서만 시행되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금융·보험회사로 확대'등이다.
박근혜 후보의 오도된 역사인식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국민경제의 제법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고, 개별 정책 가운데에는 빛나는 것들도 있다. 예컨대 총수 일가의 횡령 등에 대한 처벌 강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제도 폐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 축소, 중간 금융지주회사 설치 등은 보수정당의 후보가 내놓은 것치곤 돋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뿐이다.
우선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완전히 오도된 역사인식에서 출발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박 후보는 과거의 경제성장을 성장의 혜택이 전 계층에게 광범위하게 퍼진 좋은 경제성장으로 칭송한 반면, 오늘날-박근혜는 내심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다-의 경제성장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돼 양극화가 심화되고 성장잠재력이 저하되는 나쁜 경제성장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렇게 전도된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가지고는 제대로된 경제민주화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최대 현안이 된 산업 간, 업종 간, 기업 간, 지역 간, 계층 간, 노동 간 양극화의 범위를 줄이고 속도를 늦추는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습격이 아니었다고 해도, 한국사회에는 이미 양극화라는 이름의 악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씨앗을 뿌린 사람은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이다. 박정희는 재벌과 수도권, 영남을 중심으로 하는 불균형 성장 전략을 돌진적으로 관철시켰으며, 중산층과 서민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고지가와 고물가를 경제성장의 근간으로 삼았다. 즉 박정희가 설계하고 집행한 경제전략은 종국적으로 양극화로 수렴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근혜후보는 과거에는 양극화가 없었는데 근래에 들어와서야 양극화가 발생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의 치세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무조건 미화하고 분식하는 인식체계를 지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다. 공(公)과 사(私)를 염격히 구분하고, 사태와 사건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능력을 갖추어야 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재벌체제의 온존, 금융 개혁의 부재, 부동산 공화국의 지속
한편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금융개혁과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 등 너무나 중요하지만 누락된 부분이 있고, 국민경제를 넘어 대한민국을 사실상 지배하는 재벌체제에 대한 온존을 승인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재벌들이 기존에 한 순환출자를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인정해 주겠다는 건 세습을 전제로 한 재벌체제에 대한 투항을 의미하며, 명백하게 현존하는 대기업집단(재벌)을 규율할 대기업집단법의 제정을 거부한 것은 법규범을 통한 재벌 통제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또한 국민경제를 넘어 한국사회 전체에 엄청난 규정력을 행사하는 부동산 문제와 금융문제에 대한 개혁방안의 부재는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본질과 실체를 극명하게 증명하는 증거다. 박근혜 후보는 부동산 문제와 금융문제를 지금 이대로 둔 채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무지의 결과이건, 기득권층의 심기를 헤아린 것이건 부동산 문제와 금융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이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정직한 박근혜를 기대하며
그나마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 포섭된 내용들도 선언에 불과한 것들이 많다. 예컨대 박근혜 후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차별 해소',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화물운송기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 '납품단가 협상력 제고' 등과 같은 야심찬 정책 목표들을 천명했지만, 이를 이행할 경로나 방법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 들어 있는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는 재벌의 양보를 강제해내지 않고는 결코 제도화 할 수 없는 과제라는 사실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 있다.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명실상부'하지 않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명칭과 내용이 어긋난다. 이제라도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라는 거창한 표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게 정직한 태도다. 고작해야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거래의 공정성을 일부 제고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적 강자와 약자 간의 힘의 비대칭성을 승인하는 경제민주화, 재벌과 지주들이 지금까지 부당하게 누려왔던 특혜와 특권과 지대를 폐절시키지 않는 경제민주화는 대국민사기극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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