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선후보들은 암 환자를 비롯한 중증환자의 표심잡기에 부심하는 모양새다. 일부 후보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가계 파탄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3대 비급여' 항목을 국민건강보험 안에 포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선택진료비가 없으며, 환자가 강제로 상급병실을 이용하는 사례도 드물다. 간병은 치료의 일부로 간주돼 병원이 입원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고 있다. '3대 비급여'가 가계 파탄의 원흉이라는 현실은 한국 보건의료제도의 특수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으며, 어떻게 바꿀 것인가? <프레시안>은 대선 한 달을 앞두고 중증환자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고통을 짚고, 역대 정부와 대선 후보의 보건의료정책을 분석하는 기사를 마련했다. <편집자>
-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암환자의 속내 <1> "암 진단 받고 회사 그만두면서 거짓말했어요" <2> 암환자들, 완치돼도 5년 뒤 '폭탄' 떨어진다 <3> 13살에 찾아온 암, 항암 투병보다 더 힘겨운 건… |
김성희(가명·51) 씨는 보름째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잔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그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남편을 간호하고 있다. 한 달에 200만 원을 들여 24시간 간병 서비스를 이용하느니 차라리 월급 130만 원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2007년 남편이 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부부 소득을 합쳐 한 달에 480만 원가량을 벌었다. 2009년 남편의 암이 폐와 갑상선에까지 전이됐을 때, 그는 천안에 있는 집을 두고 서울의 병원으로 올라왔다. 병원비로 이미 수천만 원을 쓴 상태였다.
김 씨는 "밖에 나가서 일을 못하니 자식들 뒷바라지를 못한다"며 "병원에서 간병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두 자녀는 대학생이다.
"입원환자·보호자 95%는 간병비 부담…건강보험 적용해야"
간병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증환자들도 간병비가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2010년 민주노총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이 서울대병원 등 종합병원 6곳에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 246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환자와 보호자의 95%는 간병비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병원 진료비 외에 추가로 부담하는 '24시간 간병비'는 평균 6만5000원이었다. 한 달 평균으로 계산하면 195만 원, 응답자의 평균 입원일수인 55일 기준으로 계산하면 359만여 원에 달한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와 보호자의 90.8%는 간병서비스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75.4%는 병원에서 직접 고용한 간병사의 서비스를 희망했다.
20년간 간병사로 일한 문용순(가명·62) 씨는 "부모가 암에 걸려서 오래 투병생활을 하면 막 결혼한 자제분들이 돈 문제로 신경이 곤두서있다"며 "간병일을 하다보면 노후가 지옥 같다고 느낀다. 누구나 아프기 마련인데 간병서비스가 제도화돼서 아프면 서로서로 간병을 받아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한국간병인협회 홈페이지 |
외국에서 간병은 치료의 일부, 병원 서비스에 포함
간병 문제를 환자 가족에게 맡기는 한국과는 달리, 사회서비스 제도가 발달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병원이 직접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이용료를 사회보험이 보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4년부터 간호보조료를 신설해 병상에 투입된 간병사(간호조수)의 비율에 따라 8단계로 서비스료를 차등 지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환자 대 간호인력 비율이 높은 경우 최고 2배의 간호료를 추가 지불함으로써 환자의 간병비 부담을 절감시키고 병원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
독일은 2004년 이전까지 입원 환자에게 제공되는 간병 수가를 따로 책정했다가, 2005년부터 포괄수가제를 실시하면서 전체 진료 수가에 간병서비스 비용을 포함시켰다.
환자들의 의료접근권이 낮은 편인 미국에서도 병원이 모든 입원 환자에게 간병서비스를 제공한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에서는 정부가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를 운영해 환자군 분류체계에 따라 간호료를 보상하고 있다.
간병으로 생기는 사회적 기회적 비용 1조2000억원
한국에서도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쇄신위원회 활동보고서'를 통해 2015년까지 간병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이 계획은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공단은 지난 14일 연구용역 중간결과 발표를 통해 간병서비스를 급여화할 경우 연간 최대 1조3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예측했다. 그런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6년 내놓은 연구결과를 보면, 보호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등 간병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기회비용 또한 1조2000억 원이었다.
대선 후보들도 간병서비스를 건강보험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2015년부터,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013년부터 간병서비스를 급여화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구체적인 시행 시기는 밝히지 않았으나 점진적인 간병서비스 급여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병원이 간병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방안에 대해서 안 후보는 원칙적 찬성 입장을, 문 후보와 심 후보는 적극적 찬성 입장을 밝혔다. 심 후보 측은 "간병인 월급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의 50%인 150만 원을 책정하되, 간호사 임금과 연동해 단계적으로 임금을 인상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안 후보 측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이행시기와 재원조달과 관해서는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보호자에게는 경제활동 보장, 환자에게는 상병수당 지급해야"
간병 문제로 환자 보호자가 직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중증환자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소득 보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일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6일 '대선후보에게 요구하는 보건의료분야 정책안'을 발표하고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의료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없어진다"며 "국민들이 민영의료보험에 드는 이유는 간병비 등뿐만 아니라 소득 감소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실직(29%), 수입 감소(22%)에 이어 의료비 지출(18%)은 기초생활수급자 편입 사유 3위를 차지했다. 경제활동을 하던 사람이 중증환자가 되면 사실상 실직하거나 휴직으로 수입이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증환자 발생은 사실상 가계파탄 1순위인 셈이다.
대부분 유럽국가들은 사회보험을 통해 중증환자가 직장에 복귀할 때까지 소득의 70~80%를 상병·질병수당으로 보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며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간병서비스를 건강보험에 적용해야할 뿐만 아니라, 소득 하위 60%인 서민층부터 평소 소득의 70%를 상병수당으로 보전하도록 건강보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직장인에게는 질병으로 인한 해고를 금지하고, 산재보험의 상병수당(휴업급여)을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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