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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거부한 '투명한 가방끈'들은 지금…

"나는 또 다른 대학에 와 있다"

"대학 안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둠코(별명·20) 씨는 1년 전에 '대학 거부선언'을 했다.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이 된 그는 "주변에 대학 가는 친구들을 보니, 가나 안 가나 별 차이 없구나 싶다"며 "대학에 안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현재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둠코 씨가 청소년 인권운동에 발을 들였을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지난 2008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입시공부에 모든 걸 바쳐야 하고, 좋아하지 않는 일로 친구들과 경쟁까지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그 즈음 우연히 청소년 인권운동을 접했다.

알고 보니 혼자만 입시경쟁 위주의 공교육 제도에 회의를 느끼던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던 1993년생 열댓 명이 뜻을 같이 했다. 지난해 수능을 앞두고 이들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낙오자가 아니라 대학 거부자"라며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학 중퇴 예정자, 중퇴자 등 20여 명도 '투명가방끈'에 합류했다. (☞ 관련 기사 : "우리는 낙오자가 아니라 대학 거부자다", "한국에서 대학은 '1000만 원짜리 청심환'"…왜?)

▲ 지난해 11월 1일 대학 거부 선언을 하는 19세 청소년과 20대 청년들. ⓒ프레시안(김윤나영)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지만…"

대학 거부 선언이 끝난 지 1년, 요즘은 '청소년 정치적 기본권 운동본부'를 꾸렸다는 그는 아르바이트와 활동을 병행하느라 분주하다. 부모님을 설득해 4년 대학 등록금 대신 자취 보증금을 얻었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면서 하고 싶었던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한다고 했다.

둠코 씨는 "예전에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안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경쟁이나 학교의 인권침해 문제,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길이 없는 문제가 내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확실히 정리됐다"고 말했다.

대학 거부를 한 뒤 겪은 어려움도 있었다. 그는 "대학에 안 갔다고 하면 놀았거나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해도 흔히 말하는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과 아무나 뽑는 일에 대우가 다르다"고 말했다.

취업에서 학력 차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는 "기업들이 '이 대학 나왔으니까' 뽑는다는 식이 아니라, '들어와서 같이 배우자'는 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둠코 씨와 함께 지난해 대학 거부 선언을 한 김재홍(20) 씨는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상근 간사로 일한다.

김 씨는 "주변에서 공부하는 것에도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나의 작은 능력을 발휘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대학에 와 있는 셈"이라며 "지금의 높은 대학등록금과 4년이라는 시간의 기회비용을 따지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학력차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그는 "학력에 따라 임금에 대한 차이가 있다"며 "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같은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으로 풀어야 할지, 아니면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학력을 하나의 경력으로 인정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대학 가지 않은 20%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

대학 거부 선언을 한 난다(별명·22) 씨는 "자기 삶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힘들게 만드는 게 지금 사회"라고 말했다.

다산인권센터에서 인권교육센터를 만드는 일을 하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살긴 하지만, 사실 나도 학력에서 완전 자유로운 건 아니"라며 "자기 선택을 제약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 한, 사람들이 대학을 다니지 않고도 마냥 행복하게 산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난다 씨는 "그럼에도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계속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작은 시작이 사회를 바꾸는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학 거부에 대한 오해에 대해 둠코 씨는 "우리는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만 "누구에게나 자기 선택이 있고, 대학에 안 간 우리의 선택도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거부 운동이 남긴 과제에 대해 그는 "대학에 가지 않은 20%의 사람들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사회가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애 '학벌 없는 사회' 상근활동가는 "대학 가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이다 보니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어려운 선택이고,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선언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청년 정책이 대학생 위주로 돼있고, 고졸 이하인 경우에 청년을 위한 지원 대책이나 제도적 지원이 전무하다"며 "매해마다 자의든 타의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이 사업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노동시장의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입시 문제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국가가 평생교육 차원에서 고등교육을 책임지고, 대학 서열구조를 평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3년도 대입 수능을 하루 앞둔 7일. 지난해 대학을 거부한 이들에게 '내가 원하는 교육 제도'를 물어봤다. 이들은 한결같이 '입시 위주의 줄 세우기식' 교육을 바로잡고 사회가 '다른 방식의 교육'을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한국 교육제도의 문제는 무엇이며, 교육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들의 답변.

난다 : 학생들이 자살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교육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지금의 '주입식 교육'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없다. 사실상 강요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해야 하는 걸 하는 느낌이다. 그러니 학교가 다름에 닫혀 있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지금 학교는 한계만을 보여주는데, 학생들은 폭력에 익숙해지니까 이 길을 벗어난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으니 불안해지고, 그러니 일상이 행복하지가 않다.

김재홍 : 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나보면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태에서 불안하다"고들 한다. "다른 친구는 꿈이 있는데, 나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하더라.

우리 교육은 청소년들이 꿈을 탐색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정해진 꿈'을 요구할 뿐이다. 학생들이 입시에 매달리지 않고도 여유를 가질 수 있고, 꿈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향으로 공교육이 변해야 한다. 대학도 진로에 맞게 전공을 선택하고 그에 맞게 학습할 수 있도록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부와 지식을 학교만의 고유한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만 지식을 배우는 건 아니다. 교사나 교수가 교실과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도 수준 높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일으켰으면 한다.

둠코 : 교육제도가 다변화됐으면 한다. 학교도 여러 교육기관의 하나다. 학생은 공교육을 선택할 수도 있고, 다른 기관을 선택할 수도 있다. 다양한 곳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도 여러 교육기관 중에 하나였으면 좋겠다.

교육에서 잘난 사람, 점수 높은 사람을 줄 세워서 뽑는 식의 경쟁은 없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잘 하면 그 사람의 특성을 봐줘야 하는데, 모든 사람을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소모적인 경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좀 더 여유롭게 일하면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서울대 자퇴생'이 아니라 '고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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