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오바마의 지난 4년을 되짚어 봄으로써 앞으로의 정책방향을 가늠해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관찰이 될 것이다. 여러 영역 중에서도 우리와 관련이 깊은 소위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평가해보고자 한다. 오바마가 당선될 경우 연속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반대로 롬니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오바마가 남긴 자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나타난 바로는 롬니의 외교공약들은 실제 정책 디테일보다는 슬로건과 구호에 머무르고 있다. 외교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바마의 외교에 대한 비난에 진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롬니가 대통령이 된 후에 채워지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이익의 중심을 중동과 유럽에서 동북아로 이동시키고자 했다. 취임 초부터 미국 최초의 아시아태평양 대통령임을 선언하며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로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미중을 G2로 명명하며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중국 띄우기를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행보를 요청하였다. 또한 안보 및 경제 분야의 최고위급 전략대화도 만들었다. 임기 초엔 아시아를 중시하고, 중국과의 동반자관계를 발전시키려는 긍정적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양국 관계는 갈등국면이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 금융위기 해결책을 놓고 벌인 환율갈등은 물론이고, 남북한 갈등과 동북아 및 동남아에서의 영토분쟁을 둘러싼 패권경쟁도 심화되었다. 임기초기에는 만나지 않았던 달라이 라마를 접견한 것이나, 인권문제와 티베트, 그리고 타이완 무기판매 등을 놓고서도 갈등수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전임정부들의 경우는 취임 전에는 중국과 날을 세우다가도, 일단 정권을 잡으면 오히려 정상화되는 전례를 밟았으나, 오바마에 와서는 이러한 패턴이 역전된 셈이다.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미중의 패권경쟁은 2011년 11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외교잡지 <폴린 폴리시>(Foreign Policy)를 통해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인 톰 도닐론(Thomas Donilon)은 이를 '힘의 재균형'(rebalancing)이라고 불렀는데,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이를 견제하겠다는 의도이다. 아직 미국의 공식적 대외전략(NSS)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떠오르는 중국에 대한 미국 전략의 방향임은 분명하다.
본 전략은 대중 봉쇄와 협력의 양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먼저 봉쇄적 측면은 기존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호주는 물론이고, 인도,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싱가포르, 그리고 호주까지 중국을 둘러싼 국가들과의 긴밀한 군사적 협력을 통해서 중국을 포위하듯 견제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한미 FTA 비준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봉쇄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신설하여 협력의 차원을 높였고, 다양한 국제레짐에서도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오바마는 후진타오 등 중국지도부와 꾸준히 개인적 친분을 쌓으면서 협력적 관계를 추진해 왔다.
탈냉전 이후 지난 20년간 국제정치의 가장 큰 구조적 변화는 세력재편에 있고, 그 중심에는 아시아, 특히 중국의 부상이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약세와 중국의 부상은 가속화 되고 있다. 아시아로의 중심축은 이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예방 전략이며, 위험분산의 '헤징(hedging)'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에 중국을 직접 봉쇄하기에는 비용과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또한 중국이 진짜 위협이 될 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봉쇄와 협력의 이중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왔으며, 얼마나 더 올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과연 미국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대답은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요 근거를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중국과 아시아의 부상은 분명 큰 변화이고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유럽과 중동보다 아시아를 더 중시한다는 것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중동에서의 전쟁들을 마무리하고, 유럽이 금융위기를 겪고는 있으나 미-유럽 관계가 안정되어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전략적 축이 회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번째는 역시 미국의 금융위기 문제다. 임기 내 갖은 수단을 강구했지만 미미한 성과만 거두었으며, 앞으로도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부채더미에 앉아 자원동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는 국방예산감축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로의 이동은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중국의 맞대응으로 미중관계가 갈등국면으로 들어설 경우, 현재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봉쇄와 협력이라는 균형은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것이 상대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고, 중국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제로섬의 안보딜레마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미 미국 전략의 핵심을 자신의 하락을 늦추기 위해 중국의 상승을 방해하는 위협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신의 영역이라고 믿고 있는 아시아에서 하락하고 있는 미국에게 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빠른 군비증강을 통해 대비할 것이고, 미국은 다시 이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수년간 한반도와 남중국해에서의 갈등이 고조된 것은 눈여겨봐야할 전조이다.
한편,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은 미국의 재정위기를 감안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방위비 분담 요구는 물론이고, 미국의 대중국전략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최근 패트리어트 3 미사일 구입논란에서도 감지되듯이 단순한 무기구입을 넘어 미사일방어에의 참여압박도 가시화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또 다른 변수는 미국 대선 결과이다. 누가 당선이 되든지 당장에는 근본 정책기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 후보의 차이는 분명할 것이고, 이것이 상황전개에 따라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오바마가 재선될 경우 기존의 중심축 옮기기가 일정기간 지속될 것이지만, 롬니가 당선될 경우 양상을 달라진다. 선거 내내 보여준 롬니의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가 단순한 선거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상정해볼 수 있다.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는 발언을 실행할 경우 매우 우려스런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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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정치적 수사는 국내용이거나 또는 대외정책에서도 실제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치적 수사는 상대국의 인식과 기대를 형성하고, 따라서 때로는 대외정책의 중요한 결정변수가 될 수 있다. 요동치는 권력재편의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하락하고, 이 틈을 타 중국이 패권에 도전한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이 삼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공화당 정부의 성향상 선거가 끝나도 이 때문에 강성발언들을 쏟아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미국식 예외주의(American Execeptionalism)는 그 진실여부를 떠나서 미국외교정책의 핵심 변수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중국의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자극적인 발언을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도 현재 미국의 자극적인 정치수사들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정권 이양기를 거치는 과정 그 자체도 민감한 상황인데다가, 권력독점을 정당화해온 공산주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약발이 떨어지고, 민족주의가 급속하게 대두되는 상황까지 겹쳐있다. 또한 멈춤 없이 달려온 경제가 중국의 수많은 정치적 문제들을 은폐하거나 지연시켜왔는데, 최근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공세를 받아줄 여유가 없게 만든다.
최근 수년간 미국의 전략적 중심축이 아시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의 어려운 경제사정에서 미국이 패권약화를 만회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 전략은 미국의 의도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중간의 갈등과 불신이 축적되면서 충돌의 압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미래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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