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문학에 굵직한 자국을 남긴 소설가 고(故) 김소진의 선언이다. "애비는 종이었다"라던 시인 서정주, "아버지는 빨갱이였다"라던 소설가 이문열에 이은 그의 선언은 1990년대가 그 이전과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임을 밝히는 문학적 시도이기도 했다. 실제로 김소진의 소설에는 다양한 유형의 '아버지'들이 나온다. 해방정국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아버지를 둔 운동권 동기('개흘레꾼'), 여당 실세 정치인을 아버지로 뒀으나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이후엔 보수적인 외교관이 된 대학 선배('혁명기념일')…등.
이상에 들뜬 사회주의자, 권력에 취한 실세 정치인, 오입쟁이 재벌 총수, 그리고 이 모두가 아닌 '개흘레꾼' 아버지. 초라한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긍정은 1990년대가 품은 소중한 자산이었다. "나는 뿌리부터 옳다"라는 날선 자기 확신, "나는 내 뿌리를 쳐다보기 싫다"라는 콤플렉스. 이런 두 가지를 극복할 수 있는 씨앗이었다.
문학에서 '아버지'가 중요한 키워드로 꼽히는 현상은, 정치에서 '세대론'이 종종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봉건제,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고도성장, 민주화 투쟁, IMF 외환위기, 신자유주의 물결과 극심한 양극화 등으로 숨 가쁘게 넘어온 한국 현대사에서 '아버지'로 대표되는 '윗세대'는 늘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었다. 자식 세대가 겪는 비극의 씨앗을 뿌린 게 그들이었으므로.
실제로 그랬다. 김소진의 소설에 나오는 숱한 '아버지'들은 현실 그대로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격렬한 충돌이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는 자식이 가장 흔히 듣는 말이 '데모하지 말라'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운동권 안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뒷이야기는 늘 조금씩은 있었다. '운동권 핵심인 누구의 아버지가 실은 재벌 기업 임원이라더라, 다른 누구의 아버지는 검찰 고위 간부라더라'라는 식. 어떤 이들은 '아버지의 이념을 극복한 자식의 모범'이라며 찬사했고, 다른 어떤 이들은 '결국 아버지의 계급으로 돌아갈 이들이 젊은 한때 부려보는 무책임한 객기'라며 냉소했다. 어느 쪽이건 조금씩은 맞는 말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설령 객기로라도 아버지 세대와 부딪혀본 경험이 지닌 긍정성이다. 아버지 세대에 대한 비판은 결국 윗세대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첫걸음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집 안에 갇혀 있던 자식은 사회로 나오게 된다. 아버지와 거칠게 부딪혔던 자식이 설령 다시 아버지의 계급에 편입된다 해도, 의미가 있다. 그는 이제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아버지만 바라보던 자식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 나와 자신이 취할 이념을 스스로 택했다. 한마디로 그는 '어른'이 됐다.
김소진이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다시 화두가 됐다. 이번엔 문학이 아니라 정치에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중심에 서 있다. 박 후보는 재벌 개혁, 복지 등 진보적 의제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문제만큼은 예외다.
지난 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이 그 절정이다. 이날 회견이 예정돼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은 박 후보가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리라고 예상했다. 정수장학회가 MBC·부산일보 지분 매각을 추진한 사실이 드러난 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견 내용은 예상을 깼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정수장학회가 고 김지태 씨 측으로부터 강탈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를 따서 명명한 정수장학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유산으로 통했다. 보수언론 역시 정수장학회 문제를 박 후보의 아킬레스 건으로 꼽곤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후보 경선을 했던 지난 2007년부터 말이다. 대중의 상식뿐 아니라 법원 판결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최근 정수장학회 관련 판결에서 "과거 군사정부에 의해 자행된 강압적인 위법행위로 김 씨가 각 주식을 증여한 점이 인정된다"라며 박정희 정권의 강압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심지어 박 후보는 사실관계마저 잘못 기억하고 있어서 빈축을 샀다. 앞서의 판결 내용을 엉뚱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 박 후보는 "(김지태 씨) 유족 측에서 강압에 의해 강탈 당했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나? 거기에 대해 법원에서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법원이 원고패소 판결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시효(10년)가 지났다"라는 점이었다. 불법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대중 앞에서 항상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 왔던 박 후보였다. 그러나 '아버지' 문제에선 늘 횡설수설이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헷갈리는 게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인혁당 사건 관련 논란에서도 1차 인혁당 사건(1964년)과 2차 인혁당 사건(1974년)을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사실 관계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박 후보는 분명히 명민한 사람이다. 박 후보가 1998년 대구 달성구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내세운 거물 후보 엄삼탁과 맞붙으며 정치권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그가 그토록 빨리 한국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적었다. '평생 공주로 자란 사람이 험한 정치판에서 얼마나 버티겠나'라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박 후보가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당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떠오른 게 불과 6년 뒤다. '천막당사'로 옮긴 게 그때다. 이후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정치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박 후보가 결코 간단치 않은 판단력과 학습능력의 소유자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그가 자신의 대권행보에서 뻔히 예상된 쟁점이었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사실관계마저 헷갈려한다. 이는 똑똑함의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를 똑바로 보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관련 지식이 머릿속에 스며들지 않고 튕겨나가는 것도 그래서일 게다. 거기에 어떤 내면적, 심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아마도 정신분석학자의 몫일 게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실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가공해서 기억하는 버릇이 지닌 위험성이다. 자기 확신이 유난히 강한 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증상인데,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확인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토건 사업에서 이런 태도였다. 실용주의를 내세웠던 그였으므로, 대운하·4대강 사업의 무리한 추진이 정치적으로 손해다 싶으면 철회할 법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해봐서 다 안다"라는 맹렬한 자기 확신이 비판으로부터 귀를 막았던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건설업자 출신이므로 토건 사업에 대해선 특히 그랬다. '독선·불통의 리더십'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왔다.
박 후보가 지금 상태로 대통령이 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내 아버지에 대해선 자식인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믿음이 비판으로부터 귀를 막는 것이다. 이 대통령 집권기에 토건사업에 대해 그랬듯, 박 후보가 집권한다면 박정희 시대의 인권침해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지난 21일 보여준 태도대로라면, 박 후보는 이런 지적에 대해 임기 내내 '이명박 식 독선·불통의 리더십'으로 일관할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뉴시스 |
그러나 세상 누구도 아버지를 온전히 긍정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본 아버지와 밖에서 본 아버지 사이의 아득한 거리 앞에서 때론 놀라고 때론 상처받는다. 이 과정에서 겪는 혼란을 거치지 않는다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똑똑해도 여전히 가정이라는 성을 벗어나지 못한 공주, 왕자일 뿐이다. 가정 안에서 자식은 누구나 공주, 왕자니까. 그걸 극복하고 아버지를 똑바로 보게 될 때 '어른'이 된다. 핏줄의 끈끈함이 세상 누구에게나 공통이듯, 이런 법칙 역시 공통이다. '공주' 박근혜에게 김소진의 소설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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