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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대화록은 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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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상회담 대화록은 판도라의 상자

[한반도 브리핑] 연산군도 사초를 열람하고 무오사화 일으켜

정문헌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전 청와대안보실장 등 배석자들은 정문헌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증언했다. 오히려 10.4 선언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구를 설치하여 NLL을 유지한 상태에서 서해를 갈등과 분쟁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조선시대 임금들도 사초를 열람 못해

하지만 새누리당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정문헌 의원의 주장과 배석자들의 주장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해야한다는 주장에서부터 국회 정보위에서 대화록을 열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공세를 퍼붓고 있다.

민주당의 입장은 정문헌 의원의 주장이 사실왜곡이므로 국정조사나 대화록 열람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할 경우에 항상 국정조사를 하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해야 하느냐며 반박하고 있다.

국정원이나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되어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은 국가기밀사항이다. 마치 조선시대의 사초(史草)와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조선 왕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한 것이다. 그 기록을 사초라고 하고 실록의 기초자료가 된다. 임금도 사초를 볼 수 없었다. 임금이 사초를 보면 역사를 왜곡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관이 사초에 대한 기록 때문에 나중에 화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법적으로 사초의 열람을 사관만 가능한 것으로 보장했다. 사관의 안전과 집필권도 보장된 것이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태어날 수 있었다.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대한민국 외교 파탄의 길

조선시대에 사초의 열람을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한 것처럼 우리도 국가기밀로 지정하여 열람을 제한하고 있다. 만약 정상회담 기록을 열람할 경우 우리 외교는 파탄나게 될 것이다. 정상회담이란 두 나라 사이의 현안에 대해서 국가원수 자격으로 결단을 내리는 회담이다. 두 나라의 국익과 관련된 최고의 외교가 정상회담이다. 앞으로 어떤 나라의 정상들이 우리와 정상회담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는 나누려고 할 것인가? 남북의 신뢰회복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상회담 대화록공개를 거부하는 것이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곡해는 연산군 시절에도 있었다. 조선의 임금들은 당대의 사초를 볼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연산군은 사관들로부터 사초를 빼앗아 보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문제삼아서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사관들은 사초의 내용보다는 국왕이 사초를 열람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중시했다. 그러자 연산군은 "반드시 어떤 사정(事情)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사초를 보고야 말았다. 당시 사관들은 원칙적인 입장에서 국왕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연산군은 오히려 사초에 기록된 내용들을 감싸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그들조차 국문을 했던 것이다. 연산군의 사초열람을 저지하려는 사관들의 노력이 조선왕조실록이 태어난 배경이었다.

연산군의 의심과 정문헌의 의심

사초열람을 반대하는 사관들이 어떤 사정이 있을 거라면서 의심하고 문초한 연산군의 행동은 솔로몬의 명재판과도 대비된다. 잘 알려졌다시피 솔로몬은 서로 진짜 아기 엄마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을 향해서 아이를 칼로 반으로 나누라는 판결을 한다. 가짜 엄마는 이를 수용했으나 진짜 엄마는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연산군이라면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진짜 엄마를 마치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며 고문을 했을 것이다.

중앙일보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당시 조명균 청와대 비서관이 디지털 녹음기로 정상회담을 녹음하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18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정상회담에 배석한 김만복 국정원장과 조 비서관이 각각 메모한 내용과 녹음파일을 참고해 대화록을 만들었다"고 한다. "국정원이 만든 이 대화록은 한 부 더 만들어져 청와대에도 전달됐다. 또 김 전 원장과 조 전 비서관의 메모수첩도 국정원에 함께 제출됐다"는 것이다.

북한 통전부가 전달한 비밀합의사항의 정체는?

이로써 정문헌 의원이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노 전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007년 10월 3일 3시 백화원초대소에서 단독회담을 했고, 회담 녹취록은 통전부가 비밀 합의사항이라며 우리 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는 주장은 허위사실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정문헌 의원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대화록을 열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이 대화록 열람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심증 때문이다. 마치 연산군이 사초의 열람을 반대하는 사관들에 대해 "반드시 어떤 사정(事情)이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을 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정문헌 의원은 북한의 통전부(통일전선부)가 회담 녹취록을 우리 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측이 가지고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은 우리 측이 녹음한 것에 기초해서 작성한 것이다. 대화록에 대한 정문헌 의원의 전제가 허구로 드러났다.

정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대화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 멋 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라며 구두 약속을 해줬다"고 말했다.

북한의 통전부가 작성한 녹취록에 근거했다는 정문헌 의원의 발언은 원인 무효이다. 정문헌 의원의 발언이 원인 무효이기 때문에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노무현의 땅따먹기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상회담 대화를 열람해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없다. 오히려 정문헌 의원이 대체 어떤 자료를 보았는지, 북한의 통전부가 작성한 대화록을 어디서 입수해서 보았는지를 밝혀야 할 일이다.

노무현의 직설화법 논란, 그러나 NLL 지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NLL을 지키면서 평화지대를 만들겠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정상회담 준비에 대한 당시 언론도 "정부는 내달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관련, NLL을 재설정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현재의 NLL을 기준으로 평화수역 설정을 논의한다는 입장을 최종 정리"했다고 보도했다.(한국일보 2007.9.7)

노무현 대통령 역시 정상회담 이후 2007년 11월 1일 민주평통 연설에서 "그 선(NLL)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 아니냐. 그 선이 합의돼 있는 선이라면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충돌이 발생 않도록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그래서 그 위에다 군사적인 문제는 묻어놓고 경제문제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자는 것"이다면서 NLL을 지키면서 경제협력을 통해서 평화를 창출했다고 대국민 보고를 했다.

물론 노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이고 비유가 강한 화법 때문에 이 연설 역시 NLL포기라고 논란이 되었다. 당시에 노태통의 연설 가운데 "실질적으로 거의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를 놓고 괜히 어릴 적 땅따먹기 할 때 땅에 줄 그어놓고 니 땅 내 땅 그러는 것 같다"는 대목이 있었다. 그때 한나라당은 이 발언에 대해 "영토를 포기해도 된다는 말이냐"고 강력히 비판했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NLL을 지키면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북한과 합의했다는 것은 당시 국방장관이었고 이후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했던 김장수 전 장관도 시인하고 있다. 김장수 장관은 2007년 11월 17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동어로수역을 통해서 평화수역화하는 것은 NLL(해상불가침경계선)을 철저기 지킨다는 뜻에서 가능한 것"이라면서 "(노무현)대통령께서도 NLL은 새로운 해상경계선이 설정되기 이전까지는 확실하게 지켜나가겠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런 자료와 증언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했다는 정문헌 의원의 발언이 허위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연설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상회담 이후 11월 26일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북한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노무현 대통령도 서해 북방한계선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국방장관이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것이 연산군이 말한 '어떤 사정'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마치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을 부정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여겨지는 것이다.

즉 김일철의 말이 노 대통령이 마치 정상회담에서 'NLL 땅따먹기 발언'을 한 것인 것처럼 여겨지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김일철의 발언에 비춰 볼 때 북한은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을 내부교육과 대남협상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수세력은 이에 편승에서 남한에서 정치공세를 퍼붓는다. 정문헌 의원의 발언도 북한의 통전부에서 작성했다는 문서가 근원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북한과 남한 보수세력의 '적대적 의존론'의 한 단면같이 보인다.

친아들의 몸에 칼을 대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

하지만 김장수 국방장관은 "김 부장이 그런 얘기를 한 것은 맞다"며 "그러나 그 얘기를 정상회담에서 들었다는 것인지, 노 대통령이 민주평통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을 한국 언론에서 봤다는 것인지는 얘기하지 않아 어디서 인용한 말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한겨레 2012.10.11)

정문헌 의원의 발언이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국익을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주장을 보수정당이 거침없이 하고 있다. 그래서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논란은 선거 때마다 불어오는 일종의 북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서해평화협력지대와 남북공동어로구역은 NLL 기준으로 해서 합의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이 합의를 정치공세로 활용하고 있다.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이 몸에 칼질을 해서 반으로 나누자는 가짜 애미와 비슷한 태도이다. 진짜 어미의 아들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논쟁에서 국익과 같은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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