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삼성 고위 관계자가 반도체공장 피해자 보상 문제를 대화로 풀자는 대안을 피해자 가족의 소송 대리인을 통해 전달했다"며 "대화를 통해 (피해자들이) 소송은 취하하고 조정절차를 통해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반올림도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반올림 측은 즉각 반발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전자가 반올림에 공식적으로 대화를 제안한 적도 없었고,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삼성전자가 18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돈으로 무마하겠다는 뜻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맹비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다가 2005년 백혈병에 걸려 2년만에 숨진 고 황유미(23)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또한 "삼성이 공식적으로 대화를 제의한다고 들은 바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황 씨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최초로 사회에 알린 제보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을 통해 지난 8월부터 협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삼성이 보조참가인으로 참여 중인 산재 소송에서 빠지는 것과 보상기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피해자와 근로복지공단간의 산재인정 소송에서 '보조참가인'으로 관여하는 소송은 총 3건(피해자 9명)이다. 그러나 이 노무사는 "이미 소송이 몇 년째 진행되는 상황에서 삼성이 보조참가인에서 빠져도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삼성전자는 또한 피해자들과 대화가 이뤄질 경우 지난해 마련한 '퇴직 임직원 암 발병자 지원 제도'를 기준으로 보상하고 여기에 맞지 않더라도 납득할 만한 경우라면 보상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이 제도는 반도체·LCD 공장에서 1년 이상 일하던 임직원이 퇴직한 뒤 3년 이내에 삼성전자가 정하는 14가지 종류의 암에 걸리면 10년간 치료비를 지원해 주고, 암 치료 중 사망하면 위로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에서 일했다가 암 등 희귀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146명 가운데 이 제도의 자격조건에 해당해 지원을 신청한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 퇴직 후 수년 뒤에서야 뒤늦게 암을 발견하거나 재직한 지 1년도 채 안 돼 발병한 경우, 14가지 암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등은 해당되지 않는 탓이다.
게다가 이 제도를 발표했던 지난해 8월 당시 삼성전자는 도의적인 지원임을 강조하면서 반도체와 LCD공장의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에도 삼성전자는 직업병을 인정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화에 대한 제안은 현재 진행 중인 산재 소송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과학적으로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만큼 삼성전자가 직업병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 반올림이 고(故) 윤슬기 씨의 49재인 지난 7월 20일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삼성전자에서 일한 뒤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는 올해만 해도 6명에 달한다. 지난 16일에는 추가로 2명이 올해 5월과 8월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 직업병 문제'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이에 반올림은 비상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노무사는 "삼성전자가 소송 취하 등 대화의 전제조건을 걸었는지 알아본 뒤, 피해자와 유가족들과 대화할지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며 "유가족 가운데는 삼성전자가 산재를 인정하고 사과하기 전까지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18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 최우수 삼성전자 부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6년간 일하고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가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에서 일한 뒤 희귀병에 걸렸다는 제보자는 146명, 사망자는 58명(6명은 올해 사망)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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