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은 잘했다. 하지만 너무 좀스러워서 동료들한테 왕따를 당했다. 필리핀 친구들이 "사다리 타기해서 뭐 좀 사먹자!" 고 하면 "난 안 먹고 빠질래." 하니 무슨 인기가 있겠는가.
그가 퇴직금을 못 받고 귀국할 때 신신당부했다. "외환은행 가서 해외송금계좌 만들어놓고 가."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싫어요. 안 만들래요." "왜?" "그냥 한국 통장으로 받을래요." "왜?" "지금은 원화가치가 낮아서 *달러로 바꾸면 손해예요. 그냥 한국 돈으로 갖고 있다가 나중에 원화 가치가 오르면 바꾸려구요." "그럼 니 마음대로 해."
그러고 귀국했는데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희귀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그에게는 한국 통장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기업은행 통장, 이건 한국의 친지에게 맡겨놓고 왔다. 돈이 들어올 통장이니까.
또 하나는 한국시티은행 통장, 이건 *폐기된 통장이므로 버릴까 하다가 그냥 필리핀에 갖고 왔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한국시티은행 통장으로 퇴직금을 넣은 거다. 필리핀으로 갖고 와서 찾지도 못하는 통장으로. 환장하지!
하도 노랭이 짓을 해서 "너 그러다 언제 한 번 크게 당한다." 고 한 적이 있는데 내 예언대로 된 거 같다.
미아리에다 차려?
*지금 달러로 바꾸면 : 해외송금계좌는 자동적으로 달러로 환전되어 송금되므로, 회사에서 입금하는 즉시 달러로 바뀐다.
*폐기된 통장 : 그는 돈을 다 찾아 잔액을 0원으로 만들면 통장이 자동적으로 폐기되는 줄 알았단다. 하여간 제멋대로 생각하는 데는 선수다.
*후일담 : 그는 한국시티은행 통장과 현금카드를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부치려다가 적발되어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우송 중에 분실되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는 모든 우편물이 전수 검사된다. 그래서 통장과 카드를 인편에 보낼 수밖에 없는데 믿을 사람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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