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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군소 진보 조직의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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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군소 진보 조직의 시대인가

[남재희 칼럼]<24> 장기표 씨의 녹색사민당 발기를 보며

장기표 씨가 녹색사회민주당을 준비한다고 신문들에 큼직한 광고를 계속 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나는 사적인 인연(같은 대학 같은 동아리)도 있고 하여 그와 친하게 지냈으며 지금도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지역 잡지에 쓴 <문주 40년>이란 연재물에 그와의 이야기를 포함시켰다.

우선 광고문만을 주의 깊게 읽어 보았다. 진보정당에서는 보수정당의 경우보다 정책의 비중이 더욱 큰 것이기에 면밀히 본 것이다.

▲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뉴시스
정보화와 세계화의 정보문명시대란 구절은 그가 너무도 되풀이 하여 쓰는 것이어서 이제 그의 상표가 되다시피 하였다. 대충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는데 정당의 핵심적인 정세 판단이라면 보다 더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강령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옛날과 같은 노동 중심으로는 안 되고 조직도 정책도 일대 전환해야 하겠다는 것인데 그 방향이 제시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세율 인상에 관한 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참 좋았다. 이왕이면 더 나아가 전문가들이 산출하는 증세추정치까지 제시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한다. 유럽에서 비슷하게 하는 나라들이 있으니까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담하게 그런 주장을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좀 처진다. 원전(原電)을 억제한다고만 했는데 이미 독일 정부는 시한을 정하여 원전을 완전 폐기한다고까지 발표하지 않았는가. '녹색' 운운의 표현이 무색하다. '녹색'이란 표현이 그럴 듯하여 붙여 본 것이란 비아냥을 받을 만하다. 김종철, 최열 씨와 같은 평생을 건 꾸준한 녹색운동가들 인맥과의 관계는 어떤지 모르겠다.

이승만 정권이 북진통일을 부르짖을 때, 조봉암의 진보당은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대단한 용기였다. 이번에 장기표 씨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북한 인민을 적극 도와 민족 통일에 대비한다" 운운했다. 그저 그런 이야기로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이란 말을 들을 만한 대담성은 없는 것인가.

장기표 씨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학생, 노동, 민주, 진보 운동의 외길을 평생 동안 걸어 왔다. 그래서 그 상징성이 매우 높은 인물이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이 생겨날 무렵 그도 처음에는 관여를 했었으나 의견이 다르다고 발을 뺐다. 그리고 한국노총과 합류하여 녹색사민당을 만들어 선거에 나섰다.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민노당에 훼방만 놓은 꼴이 되었다. 나는 한국노총의 당시의 상황에서 그들과의 사민당 운운한 것은 출발부터 착각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고 결과가 나쁜 것만을 탓하는 듯하다. 요즘은 한국노총이 달라졌지만, 그때의 상황에서는 정당을 할 형편이 전혀 못 되었던 것이다.

왜 그는 진보정당의 큰 흐름에 합류하지 못했고, 또 지금도 그런가. 본인으로서야 여러 가지 사정도 있겠고, 또 노선 차이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보기에는 우선 분파주의자란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노선문제도 그와 그 주변이 내세우고 있는 것이 이른바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결론은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고 그래서 함께 당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듣고는 참 당혹스러웠다.

우선 '사회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이론적인 문제가 나온다. 법리론적으로는 의회 제도를 존중하고 의회를 통해 균등사회를 위한 사회변혁을 하겠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다. 정치사상사적으로는 복잡하다. 같은 사회민주주의의 흐름도 나라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나 명칭이 각각 다르다. 흔히 사회민주주의라고 할 때 그것은 독일에서 발달한 것, 즉 사회민주당(SPD)의 사상을 일컫는다. 영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사회민주당이 한때 노동당에서 분파하여 생기기는 했었지만, 그들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페비언이즘(Fabianism: 영국의 페비언협회가 주창한 점진적 사회개량주의, 편집자)을 말한다. 프랑스는 대개 사회주의란 용어를 쓴다. 미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을 그냥 리버럴이라고 한다. 물론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란 말을 안 쓰는 것은 아니나 대개 리버럴로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사회민주주의' 운운의 용어에 너무 매이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진보적'이란 포괄적 표현 아래 폭넓게 끌어안고 이해하는 것이 편리할 줄 안다.

8년쯤 전에 언론인 김재명 씨가 쓴 책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에서 임정 국무위원이던 장건상 씨 편을 보면 이런 일화가 나온다. 진보당이 태동하던 무렵 장건상 씨는 조봉암 씨에게 사회민주주의자만으로 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봉암 씨는 학술단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정당을 만들려는 것인데 그렇게 좁혀서 하면 어떻게 하느냐, 진보적인 인사들을 모두 포용하여 정당이란 용광로 속에 넣고 그 활동과정을 통해서 금이나 철이나 찌꺼기를 가려내는 순서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대하였다고 한다. 물론 공산분자들은 철저히 배제했었다.

짐작컨대 장기표 씨의 녹색사민당 창당 노력은 거기에 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사태의 진전을 보아가며 지금 정당화를 서두르고 있는 복지사회운동과의 합류도 생각할지 모르겠다. 인맥을 볼 때 그런 느낌이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날의 진보운동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진보는 분열하면서 (다음 단계로) 발전한다"는 명제도 성립될 것 같다. 특히 장기표 씨가 강조하는 '정보문명시대'에는 강력한 단일 조직의 진보정당보다는 게릴라처럼 흐트러진 진보정당과 진보세력들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그리고 일을 당하여 연합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선진국에서 그런 양태를 볼 수 있다. 물론 주력정당이 있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조직들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 중앙통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중대한 쟁점이 있을 때는 그 중구난방이다시피 한 세력들이 힘을 모아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넓은 시야를 갖고 볼 때 장기표 씨의 이번의 노력을 격려한다 하여 '분파주의' 운운의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될 줄 안다.

'대해불양수(大海不讓水)'란 말을 진보당 간사장 윤길중 씨가 좋아했다. 그 말을 약간 색다르게 이렇게 풀어 보면 어떨까. 진보의 큰 흐름에는 이런 저런 많은 지류들이 있어야 하고 또 모여야 한다.

백조는 마지막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하여 swan song이란 말이 있다. 장기표 씨의 swan song처럼도 느껴지는 이번 창당준비 선언이 결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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