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쌍용차문제는 집안어른 같은 분들에게는 지난 몇 년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노동문제에 인색한 언론 탓도 있겠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우선순위를 노동문제에 두지 않는 것도 이유라 하겠다. 지난 몇 년 간 쌍용차해고자들은 쌍용차문제를 알려내기 위해서 많은 투쟁을 했었다. 전국 순회투쟁도 했었고, 해고자 복직 없는 매각반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산업은행 농성투쟁 등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뭘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산업은행 총재 면담을 요구하며 투쟁했을 당시 경찰과의 충돌로 조합원들만 24명의 연행자가 발생했는데도 어떤 언론에도 나오지 않았었다. 죽음이 이어질 때만 소식은 전해졌다. 보도 자료를 내고, 공장 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면 기자들 몇몇, 정치인들 몇몇, 조합원들도 얼마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눈물만 흘리는 소식이 전부였다. 그렇게 이어지는 죽음 앞에서도 쌍용차투쟁이란 참 무기력했다.
그때 우리는 희망버스를 만났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85크레인에 올라간 6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체념했을 때,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을 찾아가고, 위로하고, 응원하자는, 지침이나 이해관계가 아닌 본래의 연대를 복원하자는 희망의 버스를 우리는 운명처럼 만났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일 때 우린 감격했었고, 한진중공업과 공권력이 희망버스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우리는 우리 모두가 김진숙이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었다. 그리고 수많은 '소금꽃'들의 힘으로 한진중공업에게 해고철회에 준하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연대에 대한 생각과 투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 투쟁을 즐겁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참여하는 개인에 대한 배려가 함께 싸움을 만들어 나갈 때 어떤 힘들을 갖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다 되어간다.
ⓒ정택용 |
희망버스 이후 수많은 '소금꽃'이었던 사람들이 대한문에서 또 다시 수많은 상주로 나섰고, 유성에서는 올빼미가 되었었고, SJM에서 노동자들은 씹던 껌이 아니라고, 현대차에서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는 한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힘들로 쌍용차문제는 3년 만에 청문회를 열 수 있었고, SJM 노동자들은 직장폐쇄를 철회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진실을 밝혀내고, 사태해결로 진전시키는 힘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으로 길거리에서 비바람에 맞서, 편견과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또한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의 문제도 세상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천막을 치고 투쟁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었다. 추석차례만 지내고 밥만 먹고 나와서 과일 한쪽 집에서 못 먹고 나왔다는 오십줄의 노동자들 몇몇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금속노조를 몰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지난 가을 조남호 회장이 청문회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조합원들을 선별해서 장기휴업을 보내고, 일부는 교육을 빙자한 회사의 입장만을 강변하는 겁박도 이어졌다. 현장 복귀 시에도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노동자들은 다른 부서로 재배치해서 부당노동행위도 자행했다고 한다. 결국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동자들끼리 반목하게 만들었고, 158억30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손배가압류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청구한 상태였다. 다가오는 11월의 복직 약속도 어떻게 될는지 잘 모르겠다고, 만약 되더라도 장기휴업이나, 교육을 통해 선별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어용노조에 가입하는 조건이 우선이라는 예상이었다. 그 기막힌 이야기들을 숨 쉬듯 담담하게 하는 내내 초로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눈빛을 내비췄다. 다행이었다. 포기만 않는다면 우리는 늘 희망을 함께 만들어 왔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10월 6일, 다시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시동을 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맞춰 영화인들이 한진중공업의 1년 전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자발적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가을, 우리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서 힘껏 노래하고 춤을 췄던 것처럼 다시 한진중공업의 기만적인 약속 불이행과 노조탄압에 맞서 거침없이 모였으면 좋겠다.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다시 찾아가고, 위로하고, 응원하자는, 지침이나 이해관계가 아닌 본래의 연대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또다시 그들의 싸움으로만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위해서 함께 깔깔깔 웃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다시 그 뭉쳐진 희망들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었듯, 그들의 희망이 결국 우리의 희망으로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차비는 오르지 않았다. 작년과 똑같다. 작년 당신의 마음처럼.
10월 6일 토요일 09시 30분 대한문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참세상>에도 보냈습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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