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새로운 연재 '올댓풋볼'을 시작합니다. 선수 출신으로 SPOTV에서 활발한 축구중계를 진행 중인 이주헌 해설위원과 축구 팬 사이에선 폭 넓은 지식으로 유명한 <풋볼리스트>의 서호정 기자가 앞으로 꾸준히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축구 이야기를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단순한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세계 정치와 문화, 경제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목인 축구를 새롭게 보는 관점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
올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한국 프로축구역사에 획을 긋는 발표를 했다. 승강제를 도입해 강등과 승격이라는 틀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승강제를 당장 올해부터 완벽하게 실시하기에는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연맹은 매년 단계적으로 1부 리그 팀을 줄이는 한편 2부 리그를 창설해 2014년에는 1부 리그 12개 팀, 2부 리그 8~10개 팀을 기반으로 하는 승강제 계획안을 내놨다.
올 시즌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이런 장기적인 프로젝트의 첫 기반을 잡는 해기 때문이다. 올 시즌 연맹은 스플릿(split) 시스템을 도입, 순위별 8개 팀을 둘로 나눴다. 이 때문에 각 팀들은 이전보다 많은 44경기를 치르게 됐다.
경기 수가 많아지면서 선수들이 받는 피로도가 커지겠지만, 나름의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 이 스플릿 시스템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스플릿시스템, 피말리는 승부
K리그 16개 팀은 지난달까지 30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 쌓은 승점을 토대로 상위 8팀, 하위 8팀을 결정짓게 되는데 상위 8개 팀은 다시 한 번 14경기씩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를 치러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당장 상위 스플릿(A그룹)에 들어간 8개 팀은 남은 14경기에서 리그 챔피언과 상위 3개 팀에게 주어지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목표로 경쟁하게 된다. 현재로써는 서울(승점 64)과 전북(승점 59)이 우승 경쟁의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위 스플릿(B그룹)에 포함된 인천, 대구, 성남, 전남, 대전, 광주, 상주, 강원 등 8개 팀도 마찬가지로 14경기씩 치르는데, 상위 스플릿과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강등'이다. 연맹의 발표로 군인 팀인 상주는 무조건 2부 리그로 내려가고, 상주를 제외한 최하위 팀이 K리그 역사상 최초로 강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이런 시스템은 시즌이 막판으로 갈수록 상위권 팀의 우승경쟁에만 주목하게 되던 기존 리그제의 단점을 극복하고, 1부 리그 잔류를 목표로 경쟁하는 하위권 팀 간의 경쟁에도 관심이 쏠리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강등제의 묘미가 올해부터 K리그에도 도입된 것이다.
▲프로축구 강등제가 프로축구 성장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지난달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2012 K리그 FC서울과 수원삼성 경기에 모인 서울 서포터들이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
원래 고수들 싸움보다 하수들의 싸움이 재밌다
탐색전으로만 일관하는 싸움은 재미가 없다. 누가 이기든, 치고받는 싸움이 재밌는 법이다. 승강제는 이런 재미를 준다.
해외 축구를 지켜본 축구 팬이라면 강등제의 묘미를 알 것이다. 시즌이 막판으로 치달을수록, 하위권에 있는 팀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며, 그 간절함이 경기력으로 나타난다.
당장 이번 주말(15~16일) 스플릿제 도입 후 처음 치러지는 경기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지게 된다. K리그 하위 스플릿에 포함된 팀들도 골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분명히 온다. 심지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점이 동률인 상태로 골득실 차로 강등하는 경우도 나올 것이다. 이 때문에 3대 0으로 이기고 있는 팀도 한 골이라도 더 넣기 위해 상대를 몰아붙일 것이고, 한 골이라도 덜 먹기 위해 매 경기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강등의 무서움
보통 1부 리그에서 강등 당한 팀은 '내년에 절치부심해서 승격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승격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2부 리그 팀들과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1부 리그도 TV중계가 쉽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2부 리그로 떨어진 팀은 곧바로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2부 리그에 소속된 경쟁 팀이 수준급의 지원이나 선수들을 영입한다면, 아무리 1부 리그 출신 팀이라 해도 승격을 장담할 수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특정 팀의 서포터가 평생을 바치더라도 승격하기 힘든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당장 해외리그에서 '100년만의 승격', '사상최초 승격'이 이뤄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TSG 호펜하임은 1899년에 창단했으나 재벌 구단주를 운 좋게 만난 덕분에 2008~2009 시즌, 처음으로 1부 리그에 올라왔다. 이 팀이 창단할 당시부터 응원한 서포터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팀이 1부 리그에서 뛰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위용을 떨쳤던 잉글랜드 축구 리그의 리즈 유나이티드FC는 한 번 추락을 시작한 후, 지금도 하부 리그를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결국 해답은 "강등당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적인 승강제 시스템을 원한다
연맹의 장기적인 승강제 프로그램은 이렇다. 올 시즌 상주를 포함해 두 개 팀을 강등시켜 내년 K리그(1부 리그) 시즌은 올 시즌보다 2개 팀이 줄어든 14개 팀으로 운영한다. 아직 2부 리그가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년에 승격하는 팀은 없기 때문이다.
내년 강등 팀은 (스플릿 시스템 없이) 1부 리그 14개 팀 중 최하위 두 개 팀으로 자동 결정된다. 그리고 12위 팀은 2부 리그 1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격과 강등을 결정한다.
2014년에는 비로소 완벽한 승강제가 완성되는데, 1부 리그 12개 팀 중 최하위는 자동 강등을, 11위는 2부 리그 2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거치게 된다. 즉 2부 리그에서 1위를 하면 자동 승격이 이루어진다. 프리미어리그나 프리메라리가에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축구 역사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짧다. 당연히 미숙한 점이 많고, 전통도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인 효과로 인해 많은 팬들이 축구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첫 시즌이라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하루빨리 안정이 되어 다른 리그가 부럽지 않은 K리그를 보고 싶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2 K리그 스플릿 시스템 그룹B(인천, 대구, 성남, 전남, 대전, 광주, 상주, 강원) 기자회견'에서 박항서, 유상철, 신태용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상주 상무는 무조건 2부 리그로 강등된다는 소식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
"남은 경기 보이콧" 상무의 반발
앞서 말한 '시행착오'의 문제가 대표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최근 상주 상무의 반발이다. 지난 12일 연맹은 이번 주말 있을 K리그 스플릿시스템 시작을 앞두고 개최한 미디어데이에서 상주 상무를 성적과 관계없이 강등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양 측이 얼마나 심도 있는 논의를 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상무의 박항서 감독과 관계자들은 심히 놀라는 모습이었고, 결국 이 결정에 반발해 '남은 잔여경기를 포기하겠다'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상무는 한국축구에서 매우 중요한 팀이다. 2년여라는 시간 동안 주요선수들이 군복무를 하면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무가 1부 리그에서 뛰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물론 수준급의 1부 리그 팀들과 경기를 하면서 선수들의 기량향상을 유도하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상무는 군인 팀이다. 프로축구팀이 아니다. 상무가 1부 리그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구단의 법인화, 선수들의 프로계약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불가능하다. 전국 현역병들을 공개 모집해서 선수들을 채울 것인가?
상무의 존재이유를 먼저 생각해 봐야한다. 상무는 남자라면 꼭 군대에 가야하는 한국의 현실과 선수들의 특성을 감안해 운영되는 팀이다. 선수들이 군대에서 보내는 2년 간 꾸준한 경기를 통해 기량을 유지시킬 기회를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국 1부 리그에 남느냐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수들이 기량하락 없이 2년 동안 운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태 이후 연맹은 후속발표를 하지 않고 있지만 금일내로 또 다른 소식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일이 원만히 해결되어 주말부터 시작하는 K리그에 큰 영향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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