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피해노동자 지원 대책위원회(대책위)'는 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히며 "재판부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협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월 20일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관리자인 가해자 2명에 대해 각각 400만 원, 700만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지만, 사내하청업체인 금양물류 대표이사와 현대차에 대해서는 소송을 기각했다.
"폐업하고 간판 바꿔달면 책임 물을 길 없어"
재판부는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 일어나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자에게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을 책임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사업주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회사 그 자체(법인)"라고 판결했다. 사장이 아니라 회사가 책임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책위는 "재판부는 직장 내 성희롱을 용인한 대표이사의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며 "이번 판결은 자주 폐업하는 사내하청의 특성상 업체가 폐업하면 책임을 물을 길이 없어지는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금양물류 대표이사는 지난 2010년 9월 30일 직장 내 성희롱에 문제제기하는 피해 여성노동자를 해고한 뒤 5일 뒤 폐업 공고를 냈다. 얼마 뒤 금양물류는 '형진기업'으로 이름만 바꾸고 피해자를 제외한 소속 노동자들을 전원 고용승계 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 "성희롱도 억울한데, 돌아온 건 해고")
법원의 판결대로 '회사 그 자체'를 사업주라고 본다면 피해 노동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대상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폐업 신고 후 간판만 바꿔 다시 개업하는 하청업체의 특성상 사장이나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피해자 대리인인 정유림 금속노조 여성부장은 "금양물류 대표이사는 성희롱 당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부당 해고한 혐의로 형사재판(약식기소)에서 벌금을 물은 바 있다"며 "같은 사건으로 형사재판에서는 대표이사의 책임이 인정된 반면, 민사재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여성부장은 "만약 사업주를 대표이사가 아니라 '법인'이라고 간주하면 형사처벌에서 법인이 감옥에 갈 수 없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
재판부는 또한 "원고는 현대차가 실질적 사용자로서 불법 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희롱은 사적인 수단으로 근무시간 외에 일어났으므로 현대차의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성희롱 피해를 당했을 때 하청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는 원청 사용자는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며 "가해자들이 사적인 수단으로 가해를 했으므로 현대차의 책임이 없다는 결론은 성희롱 사건의 특수성을 외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그밖에도 "재판부는 문자와 음성 녹음을 제외하고 가해자들의 육체적, 언어적 성희롱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일관성 있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수많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법적해결을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업체에서 14년 동안 일했다가 관리자들에게 성희롱을 당한 여성노동자 A 씨는 "회사 내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9년 해고됐다.
이후 A 씨는 지난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희롱으로 인한 부당해고 사실을 인정받았고, 11월에는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를 인정받았다.
여론이 거세지자 현대차의 물류담당회사인 현대글로비스, 형진기업(전 금양물류)은 지난해 11월 해당 노동자를 이듬해 2월부터 형진기업으로 원직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피해자가 여성가족부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인 지 197일, 해고된 지 1년 반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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