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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와 카사노바

[김운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8>

제 7 장. 주정뱅이와 카사노바

□ 사라진 돈

1964년 미국의 헥터(Hecht)씨 부인은 자신이 그 동안 거래해 온 증권회사인 해리스 업햄(Harris Upham & Co)를 법정에 고발하였습니다. 1957년 53만 달러에 달하던 그녀의 재산이 불과 6년 만에 25만 달러로 격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지 뉴욕 월스트리트의 모습(1867년 초기, 1929 대공황 당시, 2000년대).

헥터씨 부인은 원래 매력적인 영국 아가씨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와서 헥터씨의 가정부로 일했습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주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에 성공했고 1955년 남편의 사망으로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녀는 평소에도 이재에 밝았지만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이 유산을 증권회사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증권회사의 손아귀에 들어간 후 수익은 고사하고 원금조차도 반감해 버린 데 대한 분노로 고발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6년 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증권회사는 헥터씨 부인의 계정을 통해 9,000건의 상품거래와 1,300회의 주식거래를 발생시켰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헥터씨 부인은 무려 1만 건이 넘는 수수료를 지불해야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결국 증권회사는 핵터씨 부인의 계정으로 증권회사 직원들을 먹여 살린 셈이기도 합니다. 수수료로 살아가야하는 증권회사로는 불가피한 일이었겠지요.

(1) 블러 경제

그 동안 우리 경제나 세계경제를 이끌어 오는데 경제학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경제무대가 금융자본들의 투기장으로 전락한 지가 오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 또는 저개발 국가들은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선진국 사이에서도 경제이론은 제구실을 하기가 쉽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기술변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경제 예측을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미래 경제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 지표나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것들이 미래를 예측하기는 부실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을 명쾌하게 알기 위해서는 '불러 경제(Blur Economy)'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블러경제란 스탠리 데이비스(Stanley M. Davis)가 주장한 것입니다.

블러(blur)란 사진 촬영과 관련된 용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다보면 화면이 흐려서 사물을 정확히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메라가 좋지 못한 것이라면 좋은 카메라로 바꾸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찍을 경우에는 좋은 카메라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즉 빨리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사진으로 잡으려면 영상이 흐릿하게 나와서 물체의 경계를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바로 '블러'입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물체를 사진 찍을 때 그 물체의 경계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블러 현상을 없애려고 하면, 그 대상물(피사체)과 동일한 속도로 움직여야 합니다. 아니면 고속촬영과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카메라에 담으면 됩니다. 그런데 현대의 경제학이라는 것이 과거의 카메라와 같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희미하게 대상물이 찍힐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데이비스가 말하는 것은 현대의 경제가 바로 '블러경제'라는 것입니다. 즉 데이비스는 기술· 노동·자본이 지배하던 과거와는 달리 신경제가 지배하는 현대는 속도(speed), 연결성(connectivity), 무형적 가치(intangible)가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변화의 속도가 증대하면 고객에게 끊임없이 제품을 업그레이드해야하고 이로 인해 생산자가 고객과 보다 밀접하게 연계가 되고 그 결과 브랜드의 신뢰성, 감정적 만족도 등의 무형적 가치가 실제상품보다 더욱 주요한 가치가 된다는 것이지요.(1)

문제는 현대의 경제학이 고속 카메라나 경제지표를 반영하면서 바로 바로 움직여서 현실의 경제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설령 그 정확한 실체를 포착한다고 해도 장기적인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자체가 가진 문제이기도 합니다.

(2) 주정뱅이의 경제학

현대의 기업은 금융시장(financial market)을 통해서 자본(capital)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투자(investment)를 모색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어느 때보다도 빨리 자본을 모을 수가 있고 이를 토대로 기업의 성장을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오히려 이 때문에 기업이 투기장 속으로 내몰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자본시장에 관해서 간단히 짚어봅시다.

자본시장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본시장 이론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모디글리아니(Modigliani)와 밀러(Miller) 교수(이하 MM이라 함)의 논문과 마코위츠(H. Markowitz)의 포트폴리오에 관한 논문들이 출판되고난 뒤부터입니다. MM이론은 투자와 자금조달 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 틀을 제공했고, 마르코비츠는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을 기초했습니다. 이후부터 자본시장에 대한 이론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샤프(W.Sharpe)는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모형(portfolio model)을 확장하여 더욱 발전시켜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CAPM : Capital Asset Pricing Model)을 만듭니다. 그리고 앞 장에서 본 숄즈(M. Scholes)는 옵션가격결정 모형(Option pricing model)을 제시하여 노벨상(Nobel prize)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람은 자본시장 이론의 성립 이전에 주가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투자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방식에 많은 시사를 준 바쉬리에(Louis Bachelier, 1870∼1946)의 「갈지자(Random Walk) 이론」이 있습니다.

위의 이론들은 매우 복잡하여 여기에 다 소개할 순 없고, 우리 같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갈지(之)자 이론」에 대해서 좀 살펴보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사실 주가(株價)의 변동만큼 사회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도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 주식의 가격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만약 귀신이 발행하는 내일신문이 있다면, 재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일 듯한데요. 경제학 교수들이 투자를 한다고 해서 성공확률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흔히 경제학 교수들은 "내가 만일 내일의 주가를 예측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 한 권의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을 써서 돈을 버는 것보다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농담처럼 그의 아내가 시키는 대로 주식 투자를 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 타당한 주식 투자일지도 모릅니다. 주부들은 어울려 다니면서 여러 가지의 정보를 다 듣고 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내일의 주식가격을 오늘 알 수만 있다면야 누군 인들 부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만큼 주식시장에서는 정보(information)가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2)

주가 움직임에 관한 첫 학문적 연구는 바쉬리에(Louis Bachelier)의 박사학위 논문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주가가 무작위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래서 이를 술 취한 사람(주정뱅이)의 발걸음에 비유하여 「갈지(之)자 운동(random walk)」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 왼쪽은 15세 때의 바실리에의 사진, 오른쪽은 사무엘슨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바실리에는 자신의 박사논문인 '투기이론(Théorie de la spéculation, 1900)'에서 금융시장의 가격변동을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으로 모형화했습니다. 여기서 브라운 운동이란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 1773~1858)의 실험(1827)에서 물에 띄운 꽃가루 입자가 물 위를 끊임없이 불규칙적으로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는 것을 관찰한데서 나온 말이죠. 당시 브라운은 식물의 수정과 교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꽃가루 입자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으로 판단했으나 담뱃재 입자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센세이션(sensation)이 일어납니다.

바실리에는 자신의 박사 논문에서 만약 주식의 가격이 시장에 관한 모든 합리적 정보와 예측을 반영한다면, 아이러니하지만 주식의 가격은 예측 불가능 할 수밖에 없고 결국 주식 가격은 「갈지(之)자 운동(random walk)」을 따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논문은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고, 바실리에도 평범한 학자로 일생을 마칩니다. 그러다가 1953년 켄달(Kendall)이 「갈지자 운동론」을 재확인하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맬킬(Malkiel)등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증명했고 결정적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사무엘슨(Paul Samuelson, 1915∼2009)에 의해서 바실리에는 크게 재평가되었습니다. 사무엘슨은 바실리에의 이론을 대부분 수용하고 일부만 수정하여 주가의 변동을 설명하게 됩니다.

갈지(之)자 이론의 중요성은 여러 면에서 나타납니다. 이 이론은 무엇이든지 일정한 규칙성(regularity)을 요구하는 기존의 학문적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환영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론이든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려면, 엉터리라도 깔끔한 어떤 규칙성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어야하기 때문이죠.

이 이론은 일반적으로 "주가(stock price)의 움직임은 과거의 유형을 반복한다."는 기술적 분석방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주가는 오직 주가만이 안다."는 것입니다. 주가의 변동에 시계열 규칙성(時系列 規則性, Time Series Regularity)은 존재하지 않고 주가 변동도 현재 또는 미래의 주가 변동과는 관계없으며 따라서 장래의 주가 예측에도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시간이 가거나 말거나 주식 가격 변동의 규칙성을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과거의 주가의 동향을 가지고 미래의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술 취한 사람(주정뱅이)이 지금까지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딛었나를 보고 앞으로 내딛을 한 발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술 취한 사람이 오른발을 내디딜지 왼발을 내디딜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달리 말하면,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아들을 낳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과도 다를 바 없다고도 합니다. 즉 아들을 낳기를 고대하는 어떤 딸부자 집에서 벌써 다섯 명의 딸만 연이어 낳았다고 해도 다시 아들을 낳을 확률은 여전히 50 퍼센트 라는 것입니다.

결국 주가는 마치 술 취한 사람이 비틀비틀 걷는 것처럼 제멋대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이론이 제대로 일반대중에게 인식되었더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로 패가망신(敗家亡身)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주가(stock price)나 환율(exchange rate)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경제변수인데 그것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주가와 환율은 과거의 변화나 패턴에 제약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므로 오늘의 주가나 환율이 내일의 주가나 환율을 예측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전 사회가 투기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항변하실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금융 수학, 계량경제학이나 통계학 등이 워낙 발달하고 정교하게 프로그램화되어 "무엇이든지 프로그램으로 돌리면 주가 뿐만 아니라 지구 종말의 날도 예측할 수 있을 텐데 뭐가 걱정이에요 ?"라고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경제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모델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소비(C)와 소득(y)에 관한 모델(수식의 형태로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있다고 합시다.(매우 쉬운 수식이니 어려워하시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오세요. 과정은 모르셔도 결론만 아시면 됩니다)

C = ay + b ……………………………………………… ①

여기서 y를 소득(yield)이라고 하고 C를 소비(Consumption)라고 한다면 ①식은 일반적으로 소득(y)이 증가하면 소비(C)도 증가할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a 라는 것은 소비의 변동 폭이 되겠고 b 는 상수(constant)가 되겠지요. 그런데 그 동안 『경제학 원론』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 a, b 라는 것에 집중해봅시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과거의 소비(C) 패턴에서 추론한 수치일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a, b 라는 것이 미래에도 과연 상수(constant)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상수의 형태가 된 것은 과거의 소득과 소비 관계를 자료를 충분히 모아서 평균적으로 정리하여 만든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요즘과 같이 공과금 인상이 예상된다거나 세제(taxation system) 변동이 예측된다거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거나 불경기가 심화되어 다음 해에 소득이 떨어질 것으로 사람들이 예상한다면 이 상수 자체가 변하게 됩니다.

즉 내년도에 경기 침체가 되면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데 필요하지 않은 외식(外食)이나 여행, 태권도, 에어로빅(aerobic dance), 헬스(fitness) 등 각종 취미 활동과 관련된 부분들을 예산 항목에서 제거하겠지요. 그런데 이 제거되는 방식 또한 일정한 기준이 있겠지요. 아무리 돈이 없어도 반드시 할 것은 해야지요. 그래서 이 소비의 변동 폭이 일정한 방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즉 상수가 변수화(變數化)되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①식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바뀌게 됩니다.

C = a[f(y)] + b[g(y)] ………………………………………… ②

그렇지만 이 f(y)나 g(y)에서도 또 많은 상수들이 있을 것이고[예를 들면 C = a(my + n) + b(ky + l)], 그것 또한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예측하는 수밖에는 없겠지요. 그러면 또 상수가 나타나는데 결국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결국 ①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도구로 경제를 운영한다는 것은 현대 경제가 가진 매우 암울한 속성입니다.

위의 수식들을 이해 못하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때 과거 정보를 토대로 분석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결코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허술한 방식으로 자본주의 금융시장이 운영된다는 것이죠.

좀 어려운 전문용어로 요약하자면, 자본주의 금융시장은 외삽법(外揷法, extrapolation method)을 사용해서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는 워낙 복잡한 변수들이 많아서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판단하기도 어렵고 더구나 한정된 차원의 수식으로 판단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n 차원의 분석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이 외삽법은 번역이 좀 잘못된 말인 듯도 한데, 그 뜻은 과거의 추세가 미래에도 그대로 지속되리라는 전제 하에 과거의 추세선(趨勢線)을 연장해 미래 일정 시점에서의 상황을 예측하는 미래예측 기법을 말합니다. 외삽법은 투사법(projection)이라고도 합니다.

내일의 주가를 안다는 것은 주가를 예측한다기보다는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 요소들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결정적인 요소들이라는 것이 너무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주로 경제적인 변수들을 예측하고 분석하겠지만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이 전문가들이 볼 때는 주가가 떨어질 사안인데도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경우도 있고 또 정반대의 경우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과거 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사망(1994)했을 때도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이것도 이해하기 어렵죠. 김일성의 사망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될 것이므로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일반인들은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본다면 오히려 김일성이 생존했을 경우 남북관계가 호전될 가능성이 더 있었습니다. 남북 양측이 모두 정치적으로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태였고, 당시 미국이나 한국정부의 물밑 접촉도 상당했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현대의 자본시장이라는 것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는 전문가의 시대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는 경제를 지탱하는 자본시장이 사실은 안개 속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설령 김일성 사망이라는 정보를 하루 전에 알았다하더라도 주식을 팔아서 돈을 벌지 주식을 사서 돈을 벌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말대로 주식을 사고판다는 케인즈의 농담도 달리 본다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잘 알아야 주식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달리 말하면 펀드매니저(fund manager)의 입장은 점쟁이(fortune-teller)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저 눈치로 때려잡는 점쟁이보다 나을 것이 없죠. 그래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10개월 동안 원숭이(monkey)와 금융전문가인 펀드매니저(fund manager) 4명이 주식 모의투자 수익률 게임을 했습니다. 원숭이는 주식 종목이 적힌 다트(dart)에 화살을 던져 맞힌 종목을 사고, 펀드매니저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투자를 했습니다.(3) 10개월이 지난 후 원숭이는 - 2.7%의 손실을 기록했는데 투자 전문가들의 성적은 - 13.4%를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원숭이에게 진 것이죠. 이런 것이 주식이라는 것입니다.(4) 도박과 같이 둘 다 딴 사람은 없고 모두 돈을 잃었지만 펀드매니저가 더 많이 잃고 만 것이죠. 마치 "노름판에서 노름꾼들은 모두 돈을 잃었는데 하우스 주인(노름판을 열어준 사람)만 잘 먹고 잘산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은 함부로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주식을 하는 것이나 도박을 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이 같은 주가의 갈지자 특성보다도 더 큰 문제는 전 국민이 도박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전 국민이 노름판(gambling house)으로 가게끔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가지는 역동성의 원천이기는 합니다만 자본주의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것은 옛말이 된 지 오랩니다.

(3) 카사노바의 시대

케인즈는 주식의 투자를 미인대회(beauty contest)에서 우승자를 뽑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합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인대회 우승자를 잘 선택하는 것이 주식 투자의 성공이라고 한다면 그 미인에 대해 상세히 아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들의 성향입니다. 다시 말해서 심사위원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에 성공이 달려있고 심사위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기가 어렵습니다.

▲ 존 메이너드 케인즈

케인즈는 직관적으로 주식시장(stock market)은 미인대회(beauty contest, beauty pageant)와 같다는 농담을 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그 스스로 제대로 인정한 셈입니다.

사실 미(beauty)의 기준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지는 않죠. 결국 세계의 미인이라는 것은 당대 패권 국가나 민족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 미인의 결정은 그 미인대회 심사위원들의 몫인데 그 심사위원들은 주로 당대 패권국가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대부분의 심사위원들도 당대의 카사노바(Casanova)들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뽑아야 미인대회가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누가 세계최고의 미녀인가를 알고 싶다면, 이 카사노바들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보를 가진 사람들은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들을 매수하여 특정인을 최고 미녀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카사노바.

지금 저는 미인대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는 마치 주식시장의 동향을 말하는 듯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주식시장에도 보면, 흔히 말하는 기관투자가(institutional investor)라든가 각종 투자은행과 투기성 단기 자본(hot money)들, 큰손들이 따로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 같은 개미 투자가(ant investor, retail investor)들이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막강한 정보력과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주식시장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주가를 조작할 수 있는 힘과 유력 인사들을 매수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재수가 없으면 잡히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를 운영 유지해야하는 자본시장의 움직임이 주정뱅이의 걸음걸이 같다거나 미인대회의 우승자를 뽑는 식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회를 보면 매우 견고하고 안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거죽들을 한 겹이라도 벗기게 되면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이 거대한 사회가 이렇게 허술하고 위험한 토대 위에 서있는가 해서 말입니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견고하며 우리가 아는 학문도 본질적이며 안정적일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우리가 그 동안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구성해왔던 많은 이론이나 사고의 체계를 붕괴시키고 맙니다. 이 상황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야, 이것이 학문이었어?"라고 말입니다.

주식시장이나 미인대회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모두 농축된 종합 선물세트입니다. 주식 시장이 도박처럼 돈으로 돈을 버는 형태라면, 미인대회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기능은 다른듯하지만 본질은 같다는 말입니다.

자본주의에 만연한 미인대회라는 것은 섹스산업(sex industry)의 또 다른 전위대로서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인간 상품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인간을 하나의 상품으로 소외(Alienation)시키는 구체적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일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몸을 가꾸고 치장하는데 몰입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이 되고 사람의 능력보다는 죽은 세포조직(피부)의 아름다움에만 몰두하는 일이 일상화됩니다. 여기서 인간사회의 가치는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건전한 근로의욕을 강화하여 사회적인 불평등(social inequality)의 해소를 통한 유토피아의 건설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눈먼 돈이나 공짜 점심(free lunch)에 정신이 팔려 사회의 구심점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아름다움조차도 왜곡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책도 하나같이 '미인 = 착한 사람'의 등식이 성립되고 동기나 수단이 어떠하든 '부자 = 좋은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사회를 더욱 불확실하게 그리고 더 큰 불행으로 몰고 갑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식시장이 가진 문제와 그것이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매우 위험한 본질이라는 점을 미인대회라는 예를 들어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학문적 지식들이 주식시장이나 자본시장의 분석에만 몰두하고 그 운동 원리에만 관심을 쏟는 사이 우리 사회는 더욱 왜곡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경제학은 말 그대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학문입니다. 그런데 이 경제학이 미국판 경영학과 결합하더니, 노름꾼들의 전략을 만들어 주고 투기꾼들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으니 딱한 일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근대 자본주의 경제학과 경영학의 현실입니다. 물론 때로 학문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해야 하지만 보다 나은 미래, 보다 행복한 미래를 향한 방향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미인은 극소수입니다. 우리는 미인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농민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생필품들을 생산하는 많은 노동자들과 이들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건실한 자본가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헛된 공짜점심이나 눈먼 돈에 현혹되어 그나마도 있던 생존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도마 위의 생선같은 미인이라는 헛된 가치에 몰두하여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또 설령 우리가 이것을 자각한다고 한들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암울한 현실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의 나라에서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운동을 시도를 한다고 해도 전쟁터나 다름없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지요.

필자주석

1. 스탠리 데이비스외『변화의 충격』(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2000).

2. 정보는 자본시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시장 이론발달사에서도 정보가 얼마나 빠르게 자본시장의 가격 형성에 반영되는가라는 물음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 왔다. 정보가 빠르게 가격에 반영될수록 효율적인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3. 여기서 펀드매니저나 금융 전문가들이 이론적으로 주식의 가격에 접근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주식이 원래 가진 가치(value)가 가격(price)이 일치하지 않으면 즉 현재의 주식가격이 고평가 또는 저평가 되어있다고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면, 사람들은 가격과 가치가 일치할 때까지 베팅(betting)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 '가격 = 가치'가 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금융 부문의 오랜 숙제이기도 하다. 많은 학자들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주가와 관련된 정보는 주가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공짜 돈을 그저 챙기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모딜리아니(Modigliani)와 밀러(Miller)는 이를 두고 공짜 점심(free lunch)라고 말한다. (참고로 자본시장의 효율성에 관련된 대표적인 논문으로 E.F.Fama "Efficient Capital Markets : A Review of Theory and Empirical Work," Journal of Finance, May 1970, pp.383-417 / E.F.Fama "Efficient Capital Market Ⅱ" Journal of Finance, May 1970, pp.1575∼1617 등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주가의 변화가 어느 정도는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정신없이 바뀌는 듯 보이는 주가도 계절적으로 일정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새로운 정보에 매우 민감하며 기업회계정보에 이상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주식시장의 이례적 현상(stock market anomalies)이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세계의 주요 주식시장에서는 1월의 주가 수익률이 다른 달에 비해 평균적으로 높으며, 한 달을 기준으로 보면 월말에서 월초의 주식가격이 평균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특히 1월 초 소형주의 수익률은 다른 날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1 개월을 높고 볼 때 주가는 월말부터 월초의 수일간에 걸쳐 평균적으로 크게 상승한다. 1일의 주가 추이를 보면 거래종료 직전 15분간의 주가가 크게 상승하고 월요일의 낮은 수익률의 대부분은 거래가 시작되고 나서 최초 45분간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주가의 일반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가는 인간의 기대심리 또는 희망심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연초나 명절 때는 주식이 과대평가되기도 한다. 실제로 명절의 경우에는 명절 준비를 위해 주식에 투자할 돈이 별로 없는데도 주가는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케인즈가 지적한대로 주가가 크게 올랐을 경우에는 그 주가가 떨어지고 크게 떨어진 경우에는 그 주식 가격이 다시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가는 나름대로 그 진폭을 조정하면서 원래의 가격대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와 같이 일시적으로 폭락한 주식의 가격이 2~3년에 걸쳐 원래의 주가를 회복해 가는 것을 주가의 평균회귀성(mean reversion)이라고도 한다.

4. 『이투데이』(2012.6.15) [이채용의 머니전쟁]'전문가'들의 '비전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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