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북한 변화의 필요조건은 남북관계 개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북한 변화의 필요조건은 남북관계 개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제20호 <5>·끝

최근 김정은 체제의 변화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거침없는 행보와 감성적인 모습, 아버지와는 다른 공개적이고 투명한 리더십 스타일을 과시하면서 안팎으로 변화의 기대를 낳고 있다. 물론 겉모습에 그친 제스처일뿐 실질적인 변화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이 통치하는 북한도 결국 변화를 모색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유훈통치와 아버지의 구속력으로부터 곧바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결국 김정은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비전과 깃발을 내세워야 하고 이는 과거와의 차별성 및 기존과의 변화를 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격적으로 단행된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도 사실은 과거로부터의 벗어나기라는 관점에서 해석 가능하다. 물론 최룡해와 장성택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훈구 인척 세력이 핵심 군부 세력을 제압했다는 권력 엘리트 내부의 힘겨루기로도 설명될 수 있고, 선군정치 하에서 과도하게 비대해진 군부의 기세를 제압하고 상대적으로 내각과 당의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스템상의 의도로도 설명가능하다.

그러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체제의 군부 후견인으로 간택한 인물을 권력승계 완료 세 달여 만에 전격 해임한 것은 과거의 구속력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결과론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리영호 해임과 김정은 원수칭호 부여라는 일련의 절차가 아무런 저항과 잡음 없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사실은 이제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까지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음을 의미하고 보다 신속하게 김정은식의 권력체계와 엘리트 집단을 구축하려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정군에 대한 완전한 장악을 전제로 이제 김정은은 본격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리더십 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실질적 정책변화를 구상하고 있음도 포착된다. 이른바 6.28 방침의 문건이 확인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경제개혁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고 TF 팀을 꾸려서 실제적인 내용을 시도해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붕괴와 내부 정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장조차도 경제개혁 팀이 가동되고 있음을 시인한 바 있다.

최근 장성택의 방중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북중경협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확실한 증거로 보인다. 황금평과 위화도 그리고 나선지구의 북중 협력을 논의하고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조언을 구하는 것 자체가 일단은 김정은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경제회복과 경제발전을 위해 김정은 나름의 대외경제협력 구상을 그려가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결국 김정은 체제의 최근 대내외 행보는 어떤 식으로든 북한이 변화를 모색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긍정적 해석으로 모아진다.

▲ 중국을 방문중인 북한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앞줄왼쪽두번째)이 14일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장과 함께 공동개발 협약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물론 북한의 변화 모색이 의미있는 실질적 변화로 항상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주체적 의지만으로 성공적인 변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물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주체적 역량과 객관적 조건이 선순환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행위자의 의도가 아무리 충만해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외적인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변화 역시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당국의 주체적 의지만으로는 실질적 변화를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도 과거 북한의 개혁·개방 시도의 경험은 당국의 주체적 의지가 번번이 객관적 정세와 조건의 악영향으로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탈냉전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야심차게 시도했던 1991년의 대외개방 노력은 직후에 불거진 핵위기로 인해 북미 대결이 조성되면서 좌초되고 말았다. 소련 붕괴와 사회주의권 몰락이라는 변화된 국제정세 하에서 김정일은 남북관계 개선과 특구 개방으로 위기탈출을 시도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했고 나진선봉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포했다. 탈냉전에 조응하는 북한식 변화의 몸짓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 부각된 1차 북핵문제는 북미 갈등과 한반도 위기를 조성하면서 북한의 변화 의지를 제약하는 비우호적 대외환경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까지를 겪은 후에야 제네바 기본합의서로 봉합되었다. 남북관계는 악화되었고 나진선봉은 실패하고 말았다. 변화를 모색했던 김정일의 주체적 의지는 북핵위기라는 비우호적 대외환경으로 인해 좌초되고 만 셈이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이 시도했던 두 번째 개혁·개방 역시 객관적 대외조건의 부조응으로 실패하고 만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는 화해협력과 평화증진의 기세를 잡게 되었고 그 해말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과 북미관계 진전으로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김정일은 2002년 획기적인 개혁·개방조치를 시도했다.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허용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획기적 실험을 시작했다. 신의주 행정특구를 선언하고 홍콩식 실험을 수용하려고 했다. 고이즈미 총리와 북일정상회담을 갖고 납치문제에 대한 이례적 시인과 사과를 수용하면서 평양선언을 합의해냈다.

2002년 정점에 달했던 김정일의 변화 시도는 그러나 그해 10월 켈리 차관보의 평양방문으로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또 다시 무력화되고 말았다. 제네바 합의 위반을 이유로 미국은 중유 공급을 거부했고 북한 역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다시 한반도는 위기가 조성되었고 북미관계는 수년간의 대결과 대화, 합의와 결렬을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그 와중에 신의주 개방은 물거품이 되었고 시장화 개혁은 보수적 반동화에 밀려나고 말았다. 북미관계를 넘지 못한 북한의 변화 시도는 매번 실패하고 만 것이다.

결국 탈냉전 이후 김정일이 모색했던 두 번의 변화 시도는 주체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라는 위기조성과 북미갈등이라는 대외환경의 악화로 인해 좌초되고 실패하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김정은 체제의 등장과 함께 북한의 세 번째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김정은이 개혁·개방으로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선택을 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기왕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변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변화로 북한을 이끌기 위해서는 우호적 대외환경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매우 긴요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우호적인 대외환경은 북한내부의 변화 결심을 이끌어내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대외환경의 개선은 남북관계에서 비롯된다. 1991년의 변화 시도와 2002년의 변화 모두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정세변화가 최초의 모티브로 작용했다. 냉전 이후 남북의 평화공존을 통해 북한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부터 북은 기본합의서 채택과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섰고 그것이 개방 시도의 환경으로 작용했다.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나진선봉 개방이 그랬고 6.15 공동선언 이후 7.1 조치와 신의주 개방이 그랬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고 결심하는 데서는 우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대외 조건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변화를 유도하는 필요조건일 뿐 아니라 변화를 장애하는 비우호적 대외환경을 그나마 개선하고 완충시켜주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2002년의 김정일의 두 번째 실패는 핵문제로 인한 북미관계 악화가 원인이었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개선되어도 결국 북미관계를 넘지 못하면 구조적으로 북한을 둘러싼 우호적 대외환경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이뤄내고 그 여세로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도출해내고 북일평양선언까지 이끌어냈지만 그래도 결국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적대정책과 2차 북핵문제는 북미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만큼 북한변화의 필요조건으로서 대외환경의 핵심 중 핵심은 역시 북미관계이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갈등을 거듭할 경우에도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의 기조를 지속하고 핵문제와 병행해서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그나마 북미갈등으로 인한 한반도 정세위기를 완화시키고 관리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부시 행정부와 북한의 강경 대 강경의 대립이 지속되어도 남북관계가 유지되고 지속되는 것은 북미대결로 인한 한반도 위기고조를 막아내고 결국은 북미협상을 이끌어내는 유용한 객관적 환경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관계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해내고 2007년 2.13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다 알려진 사실이다.

남북관계의 역할은 북한변화를 추동해내고 그 변화를 제약하는 비우호적 북미대립을 완화시키고 개선해내는 데서만 멈추지 않는다. 역으로 남북관계가 중단되고 악화일로일 경우에는 사실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북미협상이 진전되어도 이를 방해하는 부정적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한미동맹의 위력을 고려해보면 남북관계가 중단된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을 무시하고 배제한 상태에서 북미협상과 관계개선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은 현실상 어렵다. 북한의 버릇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대북강경정책을 고수하고 남북관계 파탄을 감수하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북미관계 진전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악화만으로도 우호적 대외환경의 발목을 잡기에는 충분하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중단상황을 우리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변화를 모색하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 파탄상황이 지속될 경우, 과거 북미관계 대결이 북한의 변화실패 요인이었듯이 지금의 남북대결 역시도 한반도 긴장고조의 원인이 되고 구조적으로는 비우호적 대외환경의 조건이 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결국 장애하고 말 것이다. 김정은이 북중협력을 시작으로 나름의 변화구상을 실천해갈 때, 정작 우호적 대외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탈냉전 이후 세 번째 북한의 변화시도는 또 다시 좌절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개혁·개방은 그만큼 더 미뤄질 것이다.

북한 변화에 기여하는 우호적 대외환경의 필요조건은 바로 남북관계 개선이고 종국적으로 북한변화를 보장할 최후의 충분조건은 북미관계 개선이다. 향후 북한 변화의 성공 여부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에 달려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역사 몰인식이 한심하기만 하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2년 9·10월호(제20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 어디로 가나?'입니다.

* 원제 : 김정은 체제와 남북관계의 역할: 변화 성공의 필요조건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