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등 완성차에서 벌어지는 심야노동 해소를 위한 교대제 개편 논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기회로 여겨졌으나, 몇 년째 공전만 거듭하면서 한국 사회에 긍정적 충격을 가져다 줄 기회도 놓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의 영역에서 우리가 되새겨 볼 일은 무엇이고,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우려를 넘어서 노동시간체제의 새로운 전망을 가져올 방법은 무엇일까? 박근태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 이상호 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이 4차례에 걸쳐 글을 보낸다. <필자>
교대제 개편 연속기고 ① 이제는 주 35시간 노동제다 |
이젠 추억에 불과하지만 1980년대에 수많은 학생운동권이 노동현장으로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했다. 지금, 노동문제는 말로는 떠들지만 실제는 찬밥신세다. 복지논쟁에서도 늘 "노동이 빠진 복지"에 대한 지적이 후순위처럼 따라다닌다. 촛불이 거리를 휩쓸 때도, 선거정치가 벌어지는 현재에도 노동은 왕따다. 만시지탄의 공격대상이 되기 전, 통합진보당에 대해 노동이 배제되었다는 얘기들이 넘치고 흘렀다. 노조 조직률은 10%를 오간다. 왜 이럴까?
고용빙하기의 공포가 휩쓸어 버린 노동사회
학자들의 얘기처럼, 87년체제는 97년체제에 의해 무대의 뒤로 퇴장했다.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고용빙하기는 공포로 시작했고 실업의 공포가 내면화되었다. 98년 조각배가 아닌 항공모함쯤으로 여기던 대기업에도 해고의 칼바람이 불었다. 정리해고는 누구나 잘릴 수 있고 평생고용은 없다며 실업의 공포를 확산시키는 테러효과를 보여주었다.
사회의 모든 화두는 일자리로 모아졌다. 일자리 창출을 떠들고 이를 위해 성장론이 한껏 꽃피었다. 메이데이에 외치던 "우리도 쉬고 싶다"는 구호는 "일하고 싶다"는 노동에 대한 욕망으로 바뀌었다. 취업경쟁은 조기교육열풍으로 철저하게 뿌리 내렸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었습니다." 2005년 기아자동차 입사비리로 수사를 받은 한 노동자의 얘기처럼, 취업을 위해서 영혼이라도 팔아야 하고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 영혼을 파는 세상이다. 해고의 심각성을 고발하기 위해 "해고는 살인이다"고 외치는 것은 고용과 생명이 동일하게 취급할 정도로 해고공포를 선명히 드러낸다.
"한 달만 편히 휴가를 다녀오라고 해도 내 자리가 없어 질까봐 절대 쉴 수 없습니다." 민주노조의 현장에서도 공포를 확인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개미는 베짱이의 여유가 없다. 잠시 쉬는 것도 개미에겐 공포다.
공포가 낳은 효과, 도피
"당신과 나의 전쟁" "저 달이 차기 전에"를 비롯하여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장면들을 영상으로 퍼뜨린다. 분노와 저항을 기대하지만 '개미의 공포'만 일깨운다. "당신의 고용불안이 나의 고용안전"인데 일중독과 일부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분열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내 고용이 중요한데 다 잡소리가 아닌가. "노동자 자본가 사이엔 결코 평화란 없다." 이 따위 노동가는 헛소리다. 현실에서는 '노사고용동맹'이 튼튼하게 탄생하고 확산되었다. 내 고용만 보장된다면 회사에 잘 협조한다. 이 고용동맹의 외부에 있는 비정규직이 떠들면 먼저 달려가서 때려주기까지 했다. '의자놀이'가 뭔 잘 못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이 요구하는 규범이 아니던가.
기업권력의 18번, '예외상태'
해고의 공포가 만들어준 절호의 찬스를 자본은 즐기기 시작했다. 근로제공을 거부하는 직장폐쇄는 실업의 공포를 자극한다. "살짝 찌르니까 푹 들어갔다" 2009년 노조를 깨려 직장폐쇄를 했던 경영자가 했던 말이다. "훅 부니까 확 날라갔다" 2012년 직장폐쇄로 노조를 민주노조를 한방에 무너뜨린 경영자가 예기했다. 무릇 지배하기 어려울 때는 예외상태를 만들어 공포를 통해 통제하는 법, 노동사회에 부는 예외상태의 활용은 7월 27일 경기도 안산의 에스제이엠의 '야만의 새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보적 고용부, 진부한 노동운동?
고용부장관은 작년 11월부터 노동시간 단축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야간노동을 없애자는 주간연속2교대제가 10년 이상 지지부진하고 노조와 조합원 누구도 불법 장시간 노동에 대해 고발하지 못하였지만 노동부가 현대차와 기아차 사장을 고발했다.
▲ 자동차 완성업체를 찾은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올해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를 포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
노동운동은 낡아빠진 프레임에서 한발도 나서지 못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심리에 뒷꽁무니나 쫒아 다녔다. 회사는 노동시간이 줄면 생산이 줄어드니 임금을 깎이지 않으려면 노동강도를 높여서 생산량을 맞추라고 했다. 10년 동안 이 쳇바퀴 안에서 헤맸다. "노동시간을 줄여도 노동강도를 높이면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러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걱정할 뿐이다.
고용부가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의 이슈를 선도하고 노조는 뒤 따라가는 수준임을 부정할 수 있는가. 진보정당이든 노조는 노동시간단축의 이슈를 잃어 버렸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야당대선주자의 표현에 보며 구린내 풀풀 나는 "임금 한 푼 더" 콘셉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똑똑한 노동할래, 멍청한 노동할래
자본주의 초기의 기업내부 노동시장이 취약했던 시절에는 도급이 횡횡했다. 대량생산과 함께 도급제는 중간착취라며 국가에서 기업내부노동시장을 키우던 시절도 있었다. 비용이 증가하자 아웃소싱을 통해 네트워크화하는 기업조직은 외부의 노동시장을 키워 하청과 비정규직을 늘렸다. 그럼 이후의 노동시장은 어떻게 바뀔까.
첫째는 다시 기업내부의 노동시장을 강화해서 정규직을 늘리던 수십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갈 가능성은 별로 안 보인다. 둘째, 현재 상황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하청과 외부 노동시장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 역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니 이렇게 가진 않을 것 같다. 셋째, 유연성은 유지되면서 차별성은 완화하는 방식의 변형들이 이뤄지는 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줄이고 직접계약을 늘리지만 전일제 근무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다.
실제로 매일 같은 시간만큼 일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적 근무를 하는 "스마트 워킹"을 벌써 삼성 등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한국자본주의는 저성장기에 돌입했고, 세계경제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미친 소리'다. 그래서 있는 일자리를 흔들어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부도 노동시간 단축 전도사 행세를 했다. 과거 10여년은 '유연성과 경직성'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프레임은 '똑똑한 노동할래, 멍청한 노동할래'로 바뀌지 않을까? 이 프레임을 넘어설 대안적 프레임은 과연 있는가?
베짱이의 권리를 외쳐!
임신과 육아 때문에 스마트워킹을 하자는 그럴싸한 얘기는 또 다시 비수가 되어 날아 올 수 있다. 정규직을 언제든 공격해서 실업의 공포를 불어 넣고, 전일제 노동자를 정리해고가 아닌 시간제 노동으로 돌리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는 청년실업자가, 오후에는 정년퇴직자가 일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면 정규직이 아무리 저항해도 사회적 지지는 높을 것 같다. 노동시간을 과감하게 줄여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미래의 10여년은 전일제 노동과 단시간 노동의 무수한 형태들 속으로 노동계급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개미의 공포를 벗어나려면 놀고 즐기는 베짱이의 외침이 필요하다. 노동사회에서 여가사회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한 정책들은 여기서 하지 못하니 생략한다. 그러나 잊어선 안 될 것은 자본만이 사유화된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체가 사유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비리가 노조 안에서 벌어진지 오래고 자기 일자리를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을 거부하는 상황, 이것이 바로 노동까지 사유화되는 현실이다. 절박함에도 최대한 자제해서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당신의 장시간 노동,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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