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 3000명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당사자들의 반응이었다. 정규직을 시켜준다는 사측의 '결단'에 비정규직노조는 격렬히 반대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고, 누군가는 해고를 무릅쓰고 싸움에 나섰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이 통 큰 결단을 내렸다"는 일부 언론의 평가와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신규 채용안 전면 폐기'를 내걸고 싸우고 있다. 회사안을 밀어붙일 바에야 차라리 도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번 안이 도입되면 불법파견을 인정받을 길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있다. 이들은 현대차가 두 가지 선택을 강요한다고 받아들인다. 해고되거나 혹은 살아남더라도 회사의 눈치를 보며 하청노동자로 살거나. 어떤 경우든 비정규직노조의 입지가 좁아질 것임은 분명하다. '신규채용안'의 다른 말은 '비정규직노조 죽이기'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가 지난 21일 정규직노조에 제시한 '사내협력업체 인원 직영화 관련 별도 협의안'을 보자. 핵심은 네 가지다. 첫째, 현대차는 올해가 가기 전에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회사의 '채용기준에 적합한' 1000여 명을 골라내 신규 채용한다. 상반기에 이미 채용한 198명을 제외하면 추가 채용 인원은 800여 명으로 줄어든다. 둘째, 내년부터 2015년까지는 역시 회사의 '채용기준에 적합한' 사내하청 노동자 2000여 명을 선별해 채용한다. 셋째,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가 정규직이 돼서 자리이동을 하면 나머지 정규직이 되지 못한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공정 재배치'를 실시한다. 넷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불법파견' 관련 소송은 최종(대법원) 판결 시 그 결과에 따라 적용한다.
▲ 현대차 제시안에 대해 발언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비정규직 노조 간부. ⓒ프레시안(김윤나영) |
정몽구 회장의 '통 큰 결단' = 정년퇴직자 + 근로기준법 위반 시정?
정몽구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통 큰 결단'을 내린 것일까?
고용노동부는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5개사에 '장시간노동 개선대책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바 있다. 지난해 현대차 생산직의 노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연장 근로 한도(주 12시간)를 초과했다며 시정 명령을 내린 것. 그러자 현대차는 근로기준법 위반 시정을 위해 올해 9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안을 고용노동부에 제출해 승인받았다. 이는 현대차가 올해 추가로 뽑기로 한 800여 명과 얼추 비슷한 수치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에 이미 채용한 198명은 올해 정규직 정년퇴직자인 233명과 비슷하다. 현대차로서는 어차피 채용해야할 인원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내년부터 2015년까지 채용해야할 나머지 2000여 명은? 애초에 현대차는 정규직노조와의 교섭에서 "정년퇴직 수요와 신규 채용 인원을 고려하여 내년부터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2000명을 채용한다"는 안을 내놨었다. 현대차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정년퇴직하는 정규직 인원이 1782명(일반직, 연구직, 영업직 등 포함해 3000여 명)이라고 밝혔다. 21일 제시한 수정안에서 '정년퇴직 수요와 신규 채용 인원을 고려하여'라는 문구가 빠지고 신규 채용 기한이 2015년으로 1년 앞당겨지긴 했지만, 현대차로서 크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반면 회사안은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에게도 손해일 수 있다. 예정대로 올해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더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사 요구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이전까지는 하루 10시간씩 주야 2교대였던 근무제도가 하루 8.5시간씩 주간 2교대로 바뀔 전망이다. 현대차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따른 추가 인원 충원은 없다"며 "부족한 1.5시간에 해당하는 생산량을 근무시간 내에 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목할 점은 정규직노조가 "노동강도는 그대로 두고 회사가 부족한 인력을 정규직으로 충원해 생산량을 맞춰야 한다"고 요구해왔다는 것이다. 정규직노조의 요구대로 회사가 노동강도 강화 없이 단축된 1.5시간만큼의 생산량을 맞추려면 4000명 이상을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 (1.5시간 x 4만7000명(정규직 3만9000여 명, 비정규직 6800~8000명) ÷ 8.5시간 ÷ 2 = 4040~4150여 명) 현대차로서는 결원을 충원하지 않으면 노동강도가 높아진다는 비판을 받고, 이를 비정규직으로 충원한다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 딜레마에 처한 셈이다.
▲ 2010년 11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며 파업에 들어간 현대차 비정규직. ⓒ프레시안(김봉규) |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회사가 8천명 중 3천명을 누구로 뽑을 것 같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제시한 안이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울산·아산·전주공장에서 일하는 전체 사내하청노동자는 8000여 명(사측 추산 6800여 명)이다. 이들 가운데 노조 조합원은 1200여 명이다. 노조는 조합원의 99%가 '불법 파견돼 현대차가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고용의무자'라고 말한다. 2007년 이후 구파견법을 적용받는 '고용의제자'도 90%나 된다. 고용의무자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과는 달리, 고용의제자는 불법파견을 인정받는 즉시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이다.
현대차가 제시한 안이 통과되면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 8000여 명 가운데 오직 3000명만이 앞으로 3년 반 동안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5000명은 사내하청노동자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현대차는 이들 가운데 '당사 채용기준에 적합한' 이들을 골라내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만약 당신이 노조에 치를 떠는 사측 인사권자라면 조합원과 비조합원 중에 누구를 뽑고 싶겠느냐"고 반문한다. 조합원으로서는 정규직으로 '채택'되기 위해 4년 동안 동료를 짓밟거나 노조 활동에 소극적이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문용문 정규직노조 위원장은 "회사는 불법파견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람부터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이라며 "여러분은 스스로 불법 파견됐다고 확신하지 않느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달랬다.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라고 해서 신규 채용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예상은 다르다. 올해 회사가 198명을 신규 채용했을 때도 조합원은 단 두 명이었고, 그 두 명마저 노조 활동에 소극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프레시안(김윤나영) |
5천명의 운명…계약 해지되거나 하청노동자로 살아남거나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예상대로 현대차가 신규 채용 인원의 대부분을 비조합원으로 채울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현대차는 2004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는 노동위원회에서, 올해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사업장이라고 인정받았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즉시 해당 노동자를 원청사가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신규 채용 대상자'가 아니라 '불법파견에 따른 정규직 전환 대상자'다. 현대차로서는 '불법파견' 소지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는다.
사측이 내놓은 해답은 '공정 재배치'에 있다.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가 정규직이 돼서 자리이동을 하면 나머지 정규직이 되지 못한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공정 재배치'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끼우고 오른쪽 바뀌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끼우는 상황을 정규직은 정규직끼리,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끼리 일하게 함으로써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공정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B 씨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C공정에서 홀로 정규직과 섞여 일하는 또 다른 하청노동자 D 씨의 자리로 보내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이전까지 불법 파견됐을 소지가 높지만 '회사의 채용 기준에 맞지 않아' 정규직이 되지는 못했던 D 씨의 운명은 둘 중 하나다. 첫째, 비정규직들만 있는 또 다른 E공정에 보내지는 경우다. D 씨는 계속 하청노동자로 살아야 한다. 둘째, 비정규직들만 있는 공정에 자리가 나지 않을 경우다. D 씨는 회사에 밉보이거나 계약기간이 만료돼 해고될 수도 있다. 이번 신규 채용에 가려진 회사안의 진짜 핵심은 '공정 재배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한 번 실시되면 되돌릴 수 없는데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해고' 혹은 '영속화된 고용불안'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10년씩 걸리는 소송하라?"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한 건 아니"라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불법파견' 관련 소송은 "최종(대법원) 판결 시 그 결과에 따라 적용한다"는 안을 내놨다. 현대차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소송을 건 사내하청 노동자는 1900여 명에 달하지만, 불법파견은 소송을 벌인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억울하면 10년씩 걸리는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 최병승 조합원. ⓒ프레시안(김윤나영) |
현대차가 제시한 "(불법파견 관련) 소송은 최종 판결 시 그 결과에 따라 적용한다"는 안에 대해 정규직노조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회사가 "직영 채용 시 개인적 신분에 관한 사항으로 차별 및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안도 함께 내놨다는 것이다. 정규직노조는 이 두 가지 안을 근거로 불법 파견 소지가 높은 노동자들은 모두 노조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되고, 정규직 채용 이후에 소송에서 이길 경우 근속년수 인정에 따라 발생하는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는 회사안 자체에 대해서도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문용문 정규직노조 위원장은 22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교섭 상대가 있는 만큼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없는 현실도 있다"며 "이번 안으로 일단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물꼬를 트고 나중에 투쟁을 통해 나머지 인원의 정규직화를 이루자"고 말했다. 반면 비정규직노조는 회사안이 일단 통과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차라리 폐기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의 변수는?
분수령은 24일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정규직노조의 대의원대회가 될 전망이다. 이날 대의원대회에는 올해 정규직노조의 임금교섭(본교섭)에 포함됐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따로 분리해 비정규직노조도 협상 주체로 들어가 있는 '불법파견특별교섭'에서 다루는 안건이 상정된다. 이 안건이 통과된다면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임금교섭은 다음 주쯤 잠정 합의될 전망이다. 비정규직노조로서는 불법파견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다. 변수는 정규직노조가 어느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에 나서는가다.
외적인 변수도 있다.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여부다. 지난 2010년 비정규직노조는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 등 현대차 임원들을 불법파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2년째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만약 검찰이 지난 2월 대법원 판례를 적용해 올해 내 기소 방침을 밝힌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오는 10월 국정감사와 12월 대선을 앞두고 '불법파견' 문제가 정치권 이슈로까지 확대될지 여부도 주목된다. 재계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여소야대 구성인 만큼,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가 국회로 번져 다른 업종과 기업들에까지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 문제를 두고 정몽구 회장의 국회 출석을 언급한 바 있다"며 "이는 기업의 경영활동을 심각히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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