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많은 부분 우리의 믿음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재정의 구조는 얼마만큼(양), 어느 곳으로(대상), 어떤 방식(방법)으로 전달되는가가 중요하다. 지금은 가장 마지막 단계인 방법에 대한 것이 주도 논쟁이 되고 있다.
보편적 복지논쟁-재정규모가 본질
하지만 이러한 논쟁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기본적인 재정의 규모가 지나치게 작은 현실 때문에 대상과 방법을 협소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산의 전달방식은 어떻게 하면 잘 전달되는가가 목표가 되지 못한다. 대신 어떻게 하면 더 적은 돈으로 대상을 넓힐 수 있는가가 중요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목적이 바뀌는 '목적전치'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결국 부자에게 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는 논쟁이다.
선별적 복지론의 배경에는 재정규모가 커지더라도 부자들에게 복지를 투여하지 않기 위한 숭고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복지재정규모를 어떻게 하든지 줄이려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보편적 복지론에서도 규모를 키우는 것이 본질이다. 부자들에게 복지를 투여하려는 것이 중요한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의 정책에서는 완전한 선별적 복지도 완전한 보편적 복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정책은 존재하기 어렵다. 다만 어떤 방향인가라는 경향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복지재정규모,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결국 복지 규모에 대한 논쟁이 중요한 본질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기준은 비교를 통해서 가능하다. 물론 재정규모는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정확한 비교를 통해 현재의 위상과 역할을 알게 되고 판단의 준거가 된다.
정책은 세 가지를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바람직한가, 실현가능한가, 지속가능한 것인가. 예를 들면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보육이야말로 보수진영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바람직한' 정책이다. 따라서 보육은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분야다. 또한 보육은 투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대의 헤크먼 교수는 영유아 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투자라고 봤다. 보다 어릴 때부터 투자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투자가치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육은 권리일뿐만 아니라 투자다. 40년 전에도 많은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무상보육을 시행했던 것은 이런 점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70년대에 선진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오히려 산아제한이라는 거꾸로 정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가 시혜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면 권리도 소극적이고 협소한 테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투자이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적극적 의미의 권리차원에서 문화복지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재정규모가 우리나라에 적당한가.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 747공약을 기억하는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들에게 제시한 장미빛 청사진이다. 7%성장, 4만불소득, 세계7대 경제대국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장미는 썩은 장미였다. 더구나 전체 총량은 증가했지만 기대만큼 아니었고, 오히려 상당부분에서는 더 나빠지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 공약이 다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50클럽' 때문이다. 국민소득 2만불에 인구 5000만이 넘는 나라에 한국이 포함됨으로서 일곱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이제 정부와 언론들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기에 바쁘다. 그럼 747의 마지막 7인 7대강국이 된 것인가?
물론 우리나라는 양적으로 선진국이다. 국가통화기금(IMF)이 최근 밝힌 2011년 구매력평가지수 기준으로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1753달러(25위)로 3만4362달러인 일본(24위) 바로 다음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OECD 국가의 삶의 질 구도에 관한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4.20점을 받아 34개 나라 가운데 32위를 차지했다. 덩치만 선진국인 셈이다.
복지예산은 투자다
복지확대를 반대하는 논리는 대체적으로 '잘살면 그때 가서'라는 시기상조론이 가장 강한 논리이다. 하지만 이제 7대강국이라는 말에 이러한 시기상조론은 근거를 상실한다. 또 다른 논리는 '복지지출이 커질 때를 대비해서 지금 아끼자'는 논리이다. 미리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쓰자는 논리는 그럴듯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부담률을 더한 국민부담률은 정부의 규모와 복지지출 수준을 보여준다. 지난 40년 동안 스웨덴·프랑스·독일 등 주요 국가들의 국민부담률을 보면 거의 대부분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이 통계는 복지지출 덕분에 이들 국가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과 그리스, 일본은 지난 40년간 15~20% 수준이던 복지지출이 거의 두배인 29~30%로 늘었다.
처음부터 보편적 복지를 통해 투자를 한나라들은 복지지출에 큰 증가가 없는 반면, 경제성장 후 혹은 수요가 발생한 후 복지를 한 나라들은 오히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치 수해방지 예산을 많이 투입할수록 수해를 덜 입게 되어 수해복구 예산이 적게 드는 데 비해, 수해방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수해피해가 더 크게 발생하여 오히려 손해가 도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지난 40년간 20-50 국가 및 주요국가들의 국민부담률 |
선진국은 양보다는 삶의 질,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가진다. 중동의 일부 국가들이 석유 때문에 잠시 몇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삶의 질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복지다. 2만달러를 달성했을 때 우리의 복지지출은 지디피의 7.5%이지만, 스웨덴(32.0%), 독일(26.0%)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20%대 중반의 복지지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금 경제규모에서 GDP 25%면 310조 원대이다. 올해 우리 중앙정부의 복지지출은 92조 원이다. 이러한 차이는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논쟁을 무의미하게 하는 수준이다. 결국 복지재정의 규모를 늘려야 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 1인당 GDP 2만불 달성했을 시기의 사회복지지출 비중 비교 (단위: 미국달러, %) 1. 공공지출(public expenditure)만 포함 2. 1인당 GDP가 2만불을 달성했을 연도의 사회복지지출 자료가 없는 경우 가장 근접한 연도의 자료를 제시함 자료: OECD Stat, 2011. 2, World Bank data, 2011. 2 |
현재의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복지논쟁은 구체적인 준비 없이 진행하다 발생한 일종의 '지속가능성'의 위기다. '무상'은 보편적 복지와 함께 '공짜'라는 이미지와 연결돼 있다. 무상은 방식일뿐이고 과도한 표현이다. 보편적 복지는 정책의 방향이다. 방향에 동의한다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별적 복지는 저부담·저복지의 논리다.
▲ 무상은 방식일뿐이고 과도한 표현이다. 보편적 복지는 정책의 방향이다. 방향에 동의한다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별적 복지는 저부담·저복지의 논리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방향
지금까지 복지예산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1단계인 양적인 부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는 대상과 방법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대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복지 관련 대상자들에 대한 지원이 확대에도 불구하고,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선별적 복지로 인해 복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생겨나는 현실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복지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한다. 혼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화분야만해도 복지로서의 문화와 산업으로의 문화가 혼재되어 예술인복지는 시혜차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농업분야에서와 같이 존재해야하고 의미가 있다면 산업뿐만 아니라 복지차원에서 대상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농부월급제로 일정수준이하의 농민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여 공공성의 차원에서 농업을 접근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계약직 환경공무원으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인들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문화계내분의 논의는 이러한 것을 반영하고 있다.
복지영역에 문화 등 다양한 개념을 포함시켜야 한다. 2012년 92조 원에 달하는 복지예산의 영역에 문화 등 다양한 분야는 없다. 여전히 산업의 영역일 뿐이며, 이는 변화하는 복지수요를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각 분야에서 특수성을 강조하며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로서의 영역과 산업으로서의 영역을 분리하고 조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복지재정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우선 자체재원을 늘려야 한다. 조세로 구성되는 일반회계를 늘려서 복지를 통한 배분구조를 강하해야 한다. 현재의 지나친 사회보험 등 기금위주의 수입구조를 개편해야한다. 2012년 보건복지부소관 예산 36조 원 중 17조 원이 사회보험이고, 자체 예산은 16조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고보조금을 제외하면 1조6000억여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재량적인 복지지출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이는 92조에 달하는 전체 복지재정에서는 더하다. 노동부의 13조 예산에서는 90%정도가 고용보험 등 연기금이다.
대부분 용도가 지정된 연기금이나, 특별회계와 복권기금 등 출처에 대한 논란이 있거나 불안정한 재원이다. 따라서 일반회계규모의 목표를 설정하고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라는 것은 어떤 돈인가에 따라 잘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셋째, 시민의 참여를 확대해야한다. 재정의 규모 문제와 동시에 지출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예산은 정치이고, 정치는 여론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민부담률을 높이고 동시에 재정지출의 비효율을 줄여나가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보편적 복지는 그야말로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일뿐이며,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토건예산은 어느 부서에나 있다. 콘텐츠 없는 문화시설 등이 바로 토건예산의 전형적인 예이며, 일반국민들에게 낭비로 인식되어 있다. 일단 그 것이라도 있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생각으로는 예산편성의 페러다임 전환은 요원하다.
결론은 명확하다. 경제규모에 맞는 복지재정확대, 양에서 질로 복지예산의 페러다임의 전환, 그리고 권리로서의 생활복지, 이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다. 7대강국은 허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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