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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에이즈감염인 인권은 하루짜리 홍보용?

[국제에이즈대회 현장기고·②] 한국이 에이즈감염인 인권 모범국가? 천만에!

7월 22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에이즈대회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한국 활동가들은 에이즈 감염인과 사회취약 계층의 인권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미국 현지에서 논의된 이야기들을 <프레시안>에 수차례에 걸쳐 기고로 보내기로 했다. <편집자>

7월 22일 오전 9시, 워싱턴 컨벤션 센터에서 세계에이즈대회의 첫 회의가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와 유엔에이즈(UNAIDS)의 공동주최로 열렸다. 대회 첫 날의 스타트를 끊은 이 회의의 제목은 'HIV감염인 여행규제: 최근의 발전(HIV Travel Restrictions: Latest Developments)'이다. 유엔에이즈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회의의 취지는 2010년에 에이즈를 이유로 이주민의 출입국을 통제하는 법, 제도를 폐지한 한국정부의 새로운 발전(new developments)을 듣고, 아직도 이주민에게 에이즈를 이유로 출입국통제를 하고 있는 국가들을 독려하기 위함이다. 유엔에이즈는 2010년 이래 한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8개국이 에이즈를 이유로 입국, 거주에 대해 통제하던 제도를 폐지했지만 아직도 45개국이 법제도안에 출입국규제조항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Paul De Lay 유엔에이즈 사무차장(Deputy Executive Director)은 "미국정부가 2010년 1월에 HIV를 이유로 입국 및 거주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며 유엔에이즈는 각국 정부가 출입국통제를 폐지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2010년에 에이즈감염인의 입국금지를 폐지함으로써 거의 20년 만에 국제에이즈대회 개최자격을 얻게 된 셈이다.

한국은 에이즈를 이유로 출입국을 제한하지 않는다?

이 회의에는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김봉현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과 이덕형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이 참석했다. 김봉현 다자외교조정관은 기조연설에서 "아직도 각 국에서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고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한국의 출입국관리법과 그 시행규칙에 HIV감염인 출입국제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알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덕형 질병예방센터장은 '한국에서의 에이즈 대응: 국제적 맥락(Response to HIV/AIDS in Korea. International context)'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하였다. 그는 2010년 1월 1일부터 에이즈를 이유로 재입국 및 거주에 제한을 두지 않도록 법무부 내부지침을 개정했고, 동년 8월에 노동관련규정에서 입국시 HIV검사요구와 직장배치전 HIV검사요구를 폐지했으며, 동년 11월에는 출입국관리법에서 에이즈관련 출입국제한을 폐지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HIV에 감염된 이주민에 대한 출입국통제를 폐지함으로써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보장하는데 있어 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강하게 느끼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의에 참석했던 일본의 에이즈운동가는 한국정부의 발표를 듣고는 한국은 이주민에게 에이즈검사를 요구하거나 입국을 금지하거나 강제출국을 시키는 등의 통제를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고, 유엔에이즈는 한국정부의 새로운 발전을 칭송했다.

▲ 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시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에서 열린 외국인 이주민 인종차별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귀화인 구수진(쿠르바노바 KURBANOVA·30)씨가 '대한민국' 국적이 적힌 여권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구씨는 이날 회견에서 지난 9월 부산 동구 초량동의 한 사우나에서 자신이 엄연한 한국인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생김새가 다른) 외국 사람이라 에이즈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사진은 기고 원문과 무관). ⓒ연합뉴스

한국정부의 거짓말

한국정부의 발표내용은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거짓된 부분이 있고 말하지 않은 사실도 있다.

2010년 이전까지는 출입국관리법,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회화지도(E-2) 사증발급인정서 발급 등 관리지침, 외국인근로자 민간취업교육기관 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라 일부 비자 발급대상자에게 HIV검사서를 제출하도록 하여 HIV양성일 경우 입국을 금지해왔다. 그 대상은 E2(회화지도), E6(예술흥행), E10(선원취업), D3(산업연수), E7(특정활동)중 외국교육기관교사, E9(비전문취업) 체류자격으로 입국한 외국인이다. 그리고 출입국관리법 제46조(강제퇴거의 대상자)에 따라 비자종류를 막론하고 HIV양성으로 확인되면 강제출국되었다.

이덕형 질병예방센터장은 2010년 11월에 출입국관리법에서 에이즈관련 출입국제한을 폐지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HIV양성으로 확인된 이주민을 입국금지하지 않고 강제출국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을 법무부에게 구두로 들었을 뿐 그 근거를 확인할 길이 없다. 출입국관리법 제11조(입국의 금지)와 제46조(강제퇴거의 대상자)는 '감염병환자, 그 밖에 공중위생상 위해를 끼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의 입출국을 통제하고 있어 에이즈에 걸린 이주민도 입국금지, 강제퇴거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의 개정없이 법무부 내부지침만을 변경했을 뿐이어서 상황변화에 따라 에이즈에 걸린 이주민이 입국금지, 강제퇴거의 대상에 포함될 여지가 남아있다. 2010년 1월 1일자로 에이즈에 걸린 이주민의 재입국을 금지하지 않도록 개정한 법무부 내부지침이란 것도 여전히 비공개대상이어서 정확히 어떻게 바뀐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HIV 감염자 여행제한 철폐" 보도관련 설명자료'란 제목의 2010년 1월 6일자 법무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종전에는 국내에서 HIV에 감염된 외국인이 발견되면 원칙적으로 출국명령 후 국내로 다시 입국하는 것을 금지하였음. 올해부터는 동 규정을 완화하여 보건당국에서 기존에 HIV에 감염되어 출국된 외국인 중 재입국이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해 법무부로 입국금지를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여 입국금지조치하기로 하였음"이라고 밝히고 있어 에이즈검사강요와 강제출국까지 포함된 개정이 아니라 '재입국' 혹은 '입국'에 국한된 개정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덧붙여 "이러한 조치는 HIV 감염인에 대한 출입국규제의 완전 폐지가 아니라 과도한 규제는 완화"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정부가 말하지 않은 사실

한국정부는 여전히 일부 이주민에게 에이즈검사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덕형 질병예방센터장의 발표처럼 그간 '외국인근로자 민간취업교육기관 운영에 관한 지침'을 통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즉 E9비자 발급대상자에게 에이즈검사를 해왔고 양성으로 확인되면 강제출국당했으나, 2010년 8월에 '외국인근로자 민간취업교육기관 운영에 관한 규정'을 고용노동부장관 고시로 신규 제정하면서 에이즈검사항목을 뺐다. 2010년 11월에는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별표5, 별표5의2)을 개정하여 표면적으로 에이즈강제검사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첫째 2010년8월에 제정된 '외국인근로자 민간취업교육기관 운영에 관한 규정'에는 에이즈검사를 포함시키지 않아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E9(비전문취업) 비자발급대상자에 대해서 에이즈검사를 강요하지 않도록 바뀌었다. 그러나 송출국과 유입국간의 협약(MOU)에 의해 대부분 입국전 자국에서 에이즈검사를 받도록 하여 입국을 제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산업인력공단 입국지원팀에 따르면 국가별로 지정의료기관에서 에이즈, 결핵, 매독, 간염검사를 포함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다.

둘째 기존의 '회화지도(E-2) 사증발급인정서 발급 등 관리지침'을 2010년 8월에 개정하여 에이즈를 이유로 E2사증발급불허, 출국명령 등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름도 참 긴 고시를 새로 만들었다. '출입국관리법시행규칙 제76조제2항 관련 별표5의2 회화지도(E2) 자격자가 외국인등록 신청 시에 제출하여야 하는 채용신체검사서의 마약검사 항목과 검사방법 및 법무부장관이 지정하는 의료기관의 요건 등 고시'를 2011년 1월 27일에 제정하였는데, E2비자 자격자에게 에이즈검사결과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셋째 2011년 3월 18일에 공지된 하이코리아(hikorea) 홈페이지 공지사항 135번에 따르면 E7(특정활동)비자 발급대상자에게 2011년 4월 1일부터 E2와 같은 양식의 에이즈검사가 포함된 신체검사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즉 E7비자 발급대상자도 에이즈검사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넷째 E6(예술흥행) 비자발급대상자에게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8조(검진)3항에 따라 HIV음성확인서 제출의무를 두고 있다.

다섯째 2011년 3월 17일에 공지된 하이코리아(hikorea) 홈페이지 공지사항 133번 결혼동거 목적 거주 건강검진서에 대한 안내에 따르면 F2(거주) 비자발급대상자는 에이즈, 성병, 정신질환을 반드시 포함하는 건강진단서 제출해야 한다. 최근 F2비자를 F6비자에 통합시킨 점이 달라지긴 했지만 2012년 2월 22일 기준으로 F2신청시 정신질환, 성병 및 에이즈검사 등이 포함되어 있는 건강검진서를 발급해줄 수 있는 병원 목록(전국 99개 병원)을 안내하고 있다.

외교수단으로 이용되는 에이즈감염인 인권

한국정부가 이주민에 대한 에이즈검사강요와 입출국통제를 폐지했다고 말하면 유엔에이즈나 국제사회는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출입국관리법과 그 시행규칙에는 어디에도 '에이즈' 혹은 '에이즈검사'란 표현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각종 지침, 심지어 홈페이지 상에서 공지사항을 통해 에이즈검사를 강요하고 있고, 송출국과 유입국간의 협약(MOU)를 통해 에이즈검사를 하여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이를 두고 눈가리고 아웅하기라고 하는 것이 적합할까, 꼼수 중의 꼼수가 더 적합한 표현일까?

이러한 법무부의 개정은 시행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점과 문제들을 보아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관료주의 정책이 얼마나 빛을 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재입국되고 강제출국당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외국인 감염인의 극히 일부만이 내국인 감염인처럼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F5 사증 중 국민배우자와 그의 미성년자녀로서 2년 이상 체류한 자, F2 사증 중 국민배우자와 그의 미성년자녀, 난민인정자 등이다. 이들을 제외한 이주민의 경우 100% 본인의 부담으로 에이즈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한 달 항레트로바이러스제 약값만 최소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따라서 등 떠밀어 강제출국을 시키지 않더라도 치료비 부담 때문에 본국으로 어쩔 수 없이 돌아가게끔 만들어 놓았으니, 한국 정부는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인 것이다.

2010년 1월에 법무부가 내부지침을 개정한 후 지금까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는 법무부의 개정내용을 정확히 알기 위해 지금까지 수차례 법무부에 문의를 하였다. 법무부의 각 부서별로 혹은 시간차에 따라 이주민에 대한 에이즈검사, 입국, 출국에 대한 설명이 달랐다. 지금까지 법무부의 설명을 정리해보면 일부 이주민에게 에이즈검사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검사결과를 가지고 입출국통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입국규제업무를 주관하는 법무부에서 에이즈를 이유로 출입국통제를 하지 않을 거면 에이즈검사를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령 에이즈검사결과에 따라 입출국통제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에이즈검사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이고, 특정집단에게 에이즈검사를 강요하는 것은 '색출'의 의미로 다가온다. 유엔에이즈 등의 국제기구는 이주민에게 에이즈검사를 강요하는 것이 에이즈예방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HIV에 감염되기 쉬운 취약한 환경에 처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반대해왔다.

19차 국제에이즈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7월 9일에 법과 에이즈에 관한 국제위원회(global commission on HIV & Law)는 에이즈감염인과 에이즈에 취약한 계층을 처벌, 차별하거나 에이즈치료에 방해가 되는 각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고치도록 권고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Global commission on HIV and the Law: Risks, Rights & Health'란 제목의 이 보고서 3장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법과 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첫째, 법과 HIV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 국가는 이주민과 방문자, 시민이 아닌 거주자에게 시민권자와 동일한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HIV 감염인의 입국 및 여행을 금지하는 제한이나, 국가내의 이주민에게 HIV 검사를 의무화 하는 규칙을 폐지해야 한다.

셋째, 국가는 이주민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법률적 등록을 허용하고, 이주민들에게 시민들이 접근 가능한 HIV 예방과 치료, 돌봄 서비스와 물품에 동일하게 접근가능 할 수 있도록 보장하도록 규칙의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이주민에 대한 모든 HIV 검사와 성병(STI) 검사는 정보가 제공되고 자발적이어야 하며, 이주민에 대한 모든 치료와 예방은 윤리적이며, 의료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위 세 가지 권고 중 한국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 정부의 조치는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계륵과 같은 정책으로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 정부에게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은 국제사회에서 외교수단용으로 이용되는 하루짜리 인권인 것이다. 한국 정부는 입만 국제적인 수준에서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지, 마인드는 전혀 발전된 선진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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