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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 에이즈 감염인이 득실대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국제에이즈대회 현장기고·①] 에이즈대회 워싱턴 특파원을 자청한 이유

7월 22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에이즈대회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한국 활동가들은 에이즈 감염인과 사회취약 계층의 인권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미국 현지에서 논의된 이야기들을 <프레시안>에 수차례에 걸쳐 기고로 보내기로 했다. <편집자>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한 지 5시간 남짓 지났다. 나는 지금 제19차 국제에이즈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워싱턴을 향해 가고 있다. 7월 22일부터 27일까지 워싱턴디시에서 국제에이즈대회가 열린다. 내가 에이즈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지난 1년여 간 한국에 있는 HIV/AIDS인권단체들을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작년 8월에는 부산에서 열렸던 10차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이하 ICAAP10)을 같이 준비하면서 국제기구 및 해외단체의 사람들을 알았고, 그러한 계기로 이번 대회에도 한국의 에이즈활동가를 대표하여 초청을 받았다. 물론 국제에이즈대회 주최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은 아니고, 아시아태평양의 에이즈운동단체에서 초청했다.

에이즈 감염인이 초국적제약회사의 횡포에 반대하는 시위 벌이는 이유

질병을 이유로 세계대회와 대륙별대회를 2년마다 번갈아 가며 개최할 만한 국제 이슈는 아마 에이즈가 유일할 것이다. 에이즈는 단순히 '질병'이라는 개념을 넘어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와 모순을 갖고 있다. 국제에이즈대회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만 명의 정부관료, 학계, 의료계, 국제기구관계자, 제약회사, 에이즈감염인 및 활동가들이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보건의료적 연구를 발표하고 논의하기도 하지만,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당사자와 운동단체들이 만나 자신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인권이슈를 발표해서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기구 또는 부자나라들에게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기도 한다.

에이즈 대회의 핵심이자 꽃은 다양한 취약계층 당사자와 인권단체 및 에이즈감염인들이 모이는 '만남과 소통의 장'이다. 취약계층이라 함은 게이,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Men who have sex with men),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청소년, 여성, 마약사용자 등을 일컫는다. 에이즈의 원인은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이지만, HIV를 확산시키는 다양한 사회적 원인들이 다양한 취약계층을 만들고 있다.

취약계층은 빈곤하거나 성차별을 받거나 의료 및 의약품접근권이 떨어지거나 법제도 안에서 권리를 제한 혹은 침해받거나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노출되는 취약한 사회환경에 놓여있다. 에이즈대회에 참가하는 당사자와 활동가들은 그러한 취약한 환경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에이즈대회에서는 에이즈 약을 만드는 초국적제약회사의 횡포에 반대하여 제약회사 전시부스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정부의 에이즈정책을 비판하는 연설 또는 퍼포먼스를 하고, 대회장 안팎에서 에이즈와 관련된 다양한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행진을 하기도 한다.

▲ 지난해 8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 10회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에 참가해 침묵 시위하는 참가자들. 이들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복제약 생산이 가로막혀 약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에이즈와 나는 무관하다?…사회취약계층 만드는 메커니즘 봐야

에이즈 감염인도 아닌 내가 굳이 먼 나라 미국까지 가서 에이즈대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에서 국제연대와 소통을 담당하는 활동가로서 그간 나누리+에서 활동과 국내 이슈를 해외 활동가들과 공유하고 해외의 이슈와 흐름을 국내에 알리기 위해서다. 특히 해외 활동가들의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활동에 국내의 에이즈운동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에이즈운동가로서의 참석을 넘어 워싱턴 특파원(?)을 자청하였다. 비싼 비행기값과 에이즈대회 참가비 때문에 한국의 에이즈감염인과 활동가는 거의 워싱턴에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즈 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나는 이번 대회에 참석해 나를 위한 에이즈운동의 '명분'을 찾기로 했다. 나는 이 질병이 에이즈이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 질병은 평범한 사람을 사회적 약자로 만들고, 이들의 인권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질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그 누구의 인권도 취약해 질 수 있다. 취약한 이들의 인권은 쉽게 무너질 수 있고, 이들의 인권이 무너지면 그 다음으로 취약한 이들의 인권이 공격받는다. 그 다음으로 취약한 사람들에는 나 자신이 포함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러한 상황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에이즈대회에서도 작년 부산 ICAAP10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당함과 불공평, 그 누군가의 횡포에 대해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 때문에 이들과 함께 시위에 나갈 것이다.

한국에서 에이즈는 '침묵'의 질병이다.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고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대회에는 에이즈환자들만 다 오겠네요?"라고 묻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에이즈를 '나와는 상관없는 질병'이고, '에이즈감염인은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핵심은 '에이즈'라는 '질병'이 아니라, 이 질병을 둘러싼 메커니즘이다. 작년 ICAAP10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해운대에 에이즈 환자 3000~4000명이 득실대면 누가 좋아하겠냐? 우리나라는 감염인 수도 많지 않은데 왜 굳이 우리나라에서 해야 하냐?"라며 유치를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러한 공무원의 질문이야말로 에이즈대회가 한국에서 열려야 하는 이유를 절실히 보여준다. (☞ 관련 기사 : "경찰, 에이즈 감염인·트랜스젠더 등에 야만적 폭력")

한국의 에이즈정책은 에이즈 예방교육, 에이즈검사, 치료, 에이즈감염인 관리에 국한되어있다. 그것도 반인권적이고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HIV가 확산되는 다양한 사회적 원인과 취약한 환경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왜 성차별, 인종차별, 이주민차별, 성소수자차별이 에이즈 확산을 부추기는지, 한국 정부가 맹목적으로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어떻게 에이즈 확산을 부추기는지에 대해 워싱턴에서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께 전하고자 한다. 한국 정부의 에이즈정책에 우리의 생각을 가둬두지 말고 전 세계에서 온 에이즈감염인과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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