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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언론인들이 감내한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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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동자' 언론인들이 감내한 시련

[언론 파업이 남긴 것·③] 사측 강경 드라이브가 남긴 후폭풍, 새로운 기대감

6개월 가까이 지속된 파업 여파는 이제 언론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일부 언론사에선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핵심인력 여럿이 해고당했다. 상당수 파업 참여자가 징계됐다. 이를 감내하고 싸웠음에도 회사와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파업은 언론 노동자들도 사측 앞에선 약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여러 파업 현장에서 숱하게 지적된 회사의 다양한 노조 탄압 수단이 언론 파업 현장에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이 힘들었던 싸움은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될 언론 노동자들의 '보도 투쟁'에 적잖은 자양분이 되리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제 길거리에서 다시 업무 현장으로 돌아간 각 언론사 노동자들의 말을 정리했다.

▲MBC에서는 이번 파업 기간에만 6명의 해고자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 번이라도 해고된 언론인은 15명에 달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유례없는 강경대응

각 언론사는 자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자 강경한 대응으로 맞섰다. 특히 170일 간 투쟁한 MBC 노조는 이번 파업에서 사측의 강경 대응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해고자가 속출했다. 정영하 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등 노조 집행부가 해고됐다. 공영방송 3사(KBS, MBC, YTN)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이후 처음 발생한 사태다. 지난 3월 21일 이용마 홍보국장이 해고됐고, 정영하 위원장과 강지웅 사무처장은 4월 2일 해고 처리됐다.

MBC는 단순히 노조 집행부만 해고하지 않았다. 박성호 기자협회장을 해고했고, 평조합원이었던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도 해고했다. 이근행 전 위원장과 정대균 수석 부위원장을 포함하면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에서만 8명이 해고됐다.

징계 받은 조합원은 본사에서만 98명에 달했다. 지역 조합원 32명도 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정직, 감봉 등의 사태가 속출했다. 이번 파업 이전까지 넓히면, 김 사장 취임 후 징계당한 MBC 조합원은 232명에 달한다. 이용마 홍보국장은 "MBC 조합원 4명 중 1명이 징계를 당했다"며 "복귀 후에도 징계가 속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사(69명)와 지역(51명)을 합해 대기발령자 수는 무려 120명에 이르렀다.

지난 2008년 YTN 노조가 구본홍 전 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갈 당시, 사측이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조합원 6명을 해고하고 17명에게 무더기 중징계를 내린 이후 최대 규모다. 노종면 등 당시 YTN 해고자와 이근행 등 이번 파업 이전 MBC 해고자는 아직 회사로 복귀하지 못했다.

MBC는 지난 3월 5일 노조를 상대로 33억90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언론사 노조 파업 사례에서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가 사측과 협상하지 못하고 업무에 복귀함에 따라, 앞으로도 사측과의 소송전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더해 MBC는 지난 2일, 기존 손배소 금액을 195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 규모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규모다. 지난 4월 금호타이어가 노조 간부 97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배소 규모는 179억 원이었고, 재작년 11월 현대자동차가 노조의 공장 점거에 대해 제기한 금액은 100억 원이었다. '희망버스'로 한국 사회를 뒤흔든 한진중공업 노조 파업 사태 당시 사측은 노조에 159억 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재산 가압류도 이어졌다. 지난 3월 13일 MBC는 서울남부지법에 집행부 전원의 재산과 노조 계좌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정영하 위원장 등 집행부는 부동산 등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언론사가 자사 노조를 대상으로 재산 가압류를 신청한 건 지난 2008년 YTN 대량 해직사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손배소와 가압류 조치는 과거 한진중공업 노조 파업 사태 등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은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측이 취하는 가장 강경한 대응책으로 손꼽힌다.

기자도 회사 앞에선 약자일 뿐

이명박 정부 들어 해고된 언론 노동자는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1980년 신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해 933명의 언론인을 강제해직한 이후 이처럼 많은 언론 노동자가 해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YTN과 MBC에서 각각 6명, 8명의 해고자가 나왔으며, 조상운 국민일보 전 노조위원장도 지난해 10월 해고됐다. 조 전 위원장은 현재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다. 최경영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지난 4월 해직이 결정됐으나, 인사위 재심에서 정직 6개월로 징계 수위가 낮아졌다.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해고됐고, 최근 복직이 결정됐다.

구속 사례도 있었다. 최근 <뉴스타파> 앵커에서 물러나 '불법사찰 국정조사 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조합에 복귀한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지난 2009년 당시 구속돼, 10년 만에 언론인 구속사태의 희생양이 됐다. 이춘곤 MBC PD도 구속 위협에 처한 바 있고, 이번 파업 국면에서는 검찰이 MBC 노조를 상대로 두 차례나 구속 시도를 행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지난 1992년 50일 파업 당시도 회사가 이 정도로 폭주하진 않았다"며 "직장폐쇄와 공권력 투입을 제외하면,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행할 수 있는 모든 탄압이 연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단순히 분풀이를 하기 위해 징계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이번 파업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우리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자'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16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사장 퇴진 축하쇼'에서 박진수 YTN 조합원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최근 업무에 복귀한 MBC의 A기자는 "복직한 후에도 곧바로 보복인사가 이어졌다. 회사가 이 정도로 막 나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파업 전후를 돌아보면, MBC가 언론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밝혔다.

조상운 국민일보 전 노조위원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이라며 "개인적으로는 과연 언론사라는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 언론인들이 어떻게 판단해야 하고 무엇을 쫓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과연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 정부 들어 해직된 언론인들의 복직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발의될 예정이다.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낼 이 법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관련 위원회를 설치해 언론인들의 복직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가장 좋은 방법은 해고한 사측이 이를 반성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론 지난 희망버스 사례처럼 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합의 틀을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번 일을 한국 언론환경이 좀 더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문제

파업이 끝났으나, 언론 노동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당장은 각 언론사 노조가 요구한 사장 교체가 어느 곳에서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에 더해, 특히 MBC의 경우 파업 기간 투입된 대체인력과 업무에 복귀한 조합원들 간 갈등도 잠재적인 폭발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다. 언론사 파업 사상 최초로 MBC는 파업 기간 93명의 계약직 기자, 시용기자, 프리랜서 앵커 등 대체인력을 업무에 투입했다.

현재 계약직 기자의 경우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2부에 9명이 투입된 것을 비롯해 사회1부에 4명, 정치부에 3명, 스포츠부에 3명 등이 투입된 상태다. A기자는 "30명 정도의 계약직 기자와 같이 업무를 보게 됐다"며 "김재철 체제 연장을 위한 꼭두각시 역할을 자처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용마 홍보국장은 "언론사 파업에 대체인력이 투입된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인데, 이들이 그대로 남은 것 또한 전례가 없다"며 "앞으로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복성 징계가 복귀 후에도 이어지는 것 또한 문제다. 당장 MBC는 노조가 업무 복귀 입장을 밝힌 지난 17일 곧바로 대규모 인사발령을 내 조합원 50여 명을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부서로 보냈다. 제 영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이 용인 드라미아 개발단, 사회공헌실, 미래전략실 등에 투입됐다. 이용마 홍보국장은 "이들 대부분은 새 업무 현장에서 자리조차 얻지 못한 상태"라며 "사실상 일을 하지 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희웅 기자가 지난 18일 'MBC 뉴스의 경쟁력 제고방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권재홍 본부장의 앵커직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추가로 2명의 기자가 같은 내용의 글을 더 올리자, MBC는 이에 대해서도 경위서 제출을 통보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A기자는 "언론사에서 사내 목소리를 차단하겠다는 조치는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마라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MBC와 달리 사측과 협상은 했으나, 국민일보 노조 역시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일보 노사는 지난 12일 '파업 사태 정리를 위한 노사 TF'를 가동해 두 차례 회의를 가졌으나, 아직 파업 기간 이어진 고소고발, 대기발령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국민일보 노조 조합원 중 6명의 기자(편집국 4명, 종교국 2명)는 한 달이 넘도록 대기발령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이에 더해 사측과 협상 이후 노조 내에서도 복귀 과정에서 집행부의 결정을 둘러싼 실망감, 지속되는 신문사유화에 대한 불만 등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조 전 위원장은 "새로 출발한 집행부가 부담이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3월 16일 열린 '축하쇼'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 탄압의 상징이 된 인물들이 무대에 올랐다. 좌로부터 정연주 전 KBS 사장,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이근행 전 MBC 노조위원장, 엄경철 전 KBS 새노조위원장, 조상운 전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공병설 연합뉴스 노조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시련 이겨낸 언론에 거는 기대

상당수 매체 노조가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보수 없이 파업을 이어온데다, 사측과의 힘겨운 싸움에 시달렸다. 실제 적잖은 언론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 생활고를 이기기 위해 과외, 대리운전, 일용직 등을 전전했고,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 때문에 당장은 요원한 일이지만, 최근 파업 국면에서 언론인들이 겪은 큰 고통이 종국에는 새로운 사회 변화의 씨알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왔다. '기록자'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지켜보던 언론인들이 수개월 간 약자의 몸으로 살아오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실제 이와 같은 기대는 파업 기간 적잖은 언론인들이 말한 바 있다.

경력 10년이 넘은 MBC의 B기자는 "우리 파업을 보도하는 다른 매체 기사를 보면서 '내가 보는 세상이 이런 식으로 왜곡되는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MBC의 A기자는 "결국 우리가 파업에 나선 중요한 이유가 언론인의 중요한 근로조건인 '공정한 방송'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며 "긴 시간 파업 자체가 어려움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자기 안에 갖고 있던 순수성으로 스스로를 더 독려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이 그 동안에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파업을 바라봤는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자신들이 바라보기만 하던 일을) 몸으로 체험해버렸다"며 "한국 사회에서 파업에 나서는 노조 조합원들의 심정이 어떤 지를 상상하는 정도가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나마 우리의 파업에는 국민적인 관심이 쏠렸지만, 여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 파업 현장에 계신 분들의 수고로움은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닐 것"이라며 "결국 우리 보도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기존보다 더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석 KBS 새노조 위원장은 "파업 복귀 후 심층보도 프로그램의 아이템이 달라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파업 이전보다 높아졌다"며 "기계적 중립에 기대지 않고, 약자가 잃어버린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조망하는 게 (민영이 아닌) 공영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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