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쓰레기와 다른 폐물들을 내리고 있는 트럭 주위에 약 35명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있었다. 트럭이 쓰레기 더미를 떠났을 때 그들 모두는 막대기 또는 식품 및 채소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1)
이 글은 북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932년 세계 최고 부자의 나라인 미국의 시카고 쓰레기 집하장에서 일어난 것을 묘사한 보고서의 일부입니다. 자연자원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고, 국가는 여전히 똑 같은 공장과 설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백만명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구걸하고 빌려 쓰고 도둑질 했으며, 구호식량을 받으려고 줄지어 서야 했습니다. 수 천개의 공장은 가동을 중지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대공황입니다. 최고의 부자의 나라도 대공황은 피할 수 없었으며, 이것은 결국 세계대전으로 확대됩니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겪은 후 세계는 이 같은 파국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각종 이론들이 나타났고 세계는 다시 번영의 길로 들어선 듯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 경제는 다시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불과 70년 전이었다면 큰 전쟁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늘 우려했던 일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떤 경제 전문가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경제 위기는 대공황이며, 그 후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정말 재수 없는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1930년대의 위기처럼 '새 패러다임 없이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과거의 제국주의 침략은 물론 최근의 과도할 정도의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 발전할 때부터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실물을 무시하고 투기나 돈놀이에만 집중해서 장기적으로 성한 나라는 세상에 없습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 사태, 최근의 남부유럽의 사태들을 보면서 설령 이 사태가 단기적으로 해결된다고 해서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유럽의 경제통합은 데카르트적으로 철저하게 진행된 듯이 보여도 허점 투성이입니다. 간단히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죠. 대구에 살던 사람이 광주에서 사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언어도 다르고 화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을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도 무리하게 통합하려고 했으니 어떻게 사단이 나지 않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theoria)이 없이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만 골몰하여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해온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학문 자체도 위기 상황입니다. 특히 사회과학 자체의 패러다임의 위기가 심각하게 도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경제학은 열심히 그래프만 그리고 있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자체를 제대로 성찰하고 있지 못합니다. 최근 어느 경제학의 대가 한 분이 오늘날 경제학적 풍토를 잔가지들에 얽매여 잔가지 싸움을 하는 것으로 "마치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 것"과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좌우대립이나 진보 논쟁이 아니라 미래의 메가트렌드(mega trend)와 패러다임(paradigm)의 변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4.0이니 하는 말장난(play on words)보다는 현대의 자본주의 자체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프로레타리아인 도시 빈민, 농어촌민, 각종 소외된 세력 들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토피어니즘(Utopianism)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어니즘 이론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 이론은 유토피아니즘 이론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집착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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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인간은 오랫동안 유토피아(Utopia)를 꿈꾸어 왔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결국 유토피아는 우리가 죽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이나 불교의 '극락정토'니 하는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죽음이란 어쩌면 천국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공동묘지를 두려워하지만 그 곳은 오히려 우리 욕망이 소멸한 안전지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악마는 복잡한 도시의 사람들 틈에 함께하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학문의 이름을 빌리고 신(神)의 이름을 빌려 인간을 철저히 구속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죽어서만 갈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마르크스(K.Marx, 1818-1883)는 '살아서도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제시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론은 유토피아 구현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시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의 연구는 유토피아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시도이지 하나의 완성된 이론은 아닙니다.
저는 1980년대를 마르크스주의(Marxism)에 관한 연구로 보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의 많은 모순들을 이 이데올로기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경제학들을 연구하면서 이 체제는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결코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앞으로도 보시겠지만 패쇄경제(Closed economy) 하에서 적용될 수 있는 경제이론입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국제경제에서 가장 취약합니다. 노동가치론의 국제적 적용과정은 한마디로 동화같은 이야기죠. 경제에 관한 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추종자들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보다 발전적으로 발전·적용시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을 모두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 드물다 보니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싸워도 서로 딴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국제경제에 대한 한줌의 지식도 없이 레닌(Lenin)의 제국주의의 논리로만 세상을 설명해본들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리카도(David Ricardo)나 헥셔-올린(Heckscher-Ohlin)의 무역이론으로 제국주의 시대를 설명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에 대한 일반적 환상을 깨뜨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어떤 '혁명의 화신'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는 당시에는 가장 중도적인 이론가였습니다. 그는 과학적으로 사회를 분석하려고 시도했던 이론가였지 혁명가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이론체계 자체가 이론과 실천의 실존적 합일(合一)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혁명가처럼 보일 뿐이지 마르크스 이론만으로 본다면 과격한 혁명가로 보기는 어렵지요. 당시에 마르크스를 회색분자처럼 생각한 이론가도 많았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뭐요?"하듯이 당시에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그 혁명이 도대체 뭐요?"라고 마르크스에게 물을 지경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패전과 금태환의 정지 등으로 세계 경제의 리더 역할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이른 바 이중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최악의 경제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스타워즈(Star Wars)를 추진하여 소련을 압박합니다. 그러더니 1990년대에 들어서 소련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사회주의도 붕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혁명은 피바다위에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피들을 뒤로 하고 사회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회주의의 주요 이데아들을 자본주의가 많이 포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Ⅲ
정치에는 혁명(Revolution)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에는 혁명이 없습니다. 하나의 제대로 된 자본주의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할 여러 단계들을 다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부분을 매우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보면 후진국 단계에서 제대로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들이 거의 없지요. 후진국들은 시간이 흘러도 선진국들이 다 먹고 물린 밥상을 다시 받아서 먹어야하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 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evide : 디지턱 정보 격차)입니다. 앞으로 충분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기술이 알라딘의 마법사가 되는 시대입니다. 알라딘의 마법사의 손아귀를 벗어날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 MS 윈도를 벗어나 생활할 수 있나요?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오라클(Oracle)을 벗어날 수 있나요?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어도비(Adobe)를 사용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미국을 가상적(假想敵)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중국 공산당 주석의 비서실에도 MS 윈도를 사용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MS에서 아무도 모르게 해킹프로그램을 깔아놓았다면 주석의 비서실의 주요 정보들이 다 새나갈 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지요. 이런 것을 좀 어려운 말로 '사실상 표준' 또는 '메타상품(meta-product)'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충분히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은 세계 여러 후진국들 가운데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할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사실상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싱가포르(Singapore)는 작은 도시국가(city state)인데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제대로 되었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고, 홍콩은 이미 중국의 일부이며 타이완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일부로 보고 있으니 큰 의미에서 중화경제권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수많은 발달된 사회주의 공업국들이 세계 시장에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진국 경제는 전후의 길고도 긴 호황기를 맞아 그들이 포기한 노동집약적 산업들에 대한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가 크게 발생하고 있었고 세계적으로 금리도 낮아 돈을 빌리는데 부담도 적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나라들이 수입대체형(import substitution) 공업화를 추진하였는데 한국은 수출지향적인(export-led growth) 공업화를 선택하였고 이 또한 한국이 세계시장을 진출하는데 유리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을 잠시 살펴보고 넘어갑시다.
첫째, 시기적으로 보면 한국은 다른 대부분이 후진국들이 수출지향 공업화 경쟁에 뛰어든 1970년대보다도 훨씬 이전인 1960년대 초반에 이 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입니다. 1960~70년대는 세계경제의 상승주기였고 선진국 투자가들의 열정적인 투자로 한국과 대만은 쉽게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가질 수가 있었고 이자율(interest rate) 또한 낮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출지향 공업화 경쟁 전략의 최대장애인 무역장벽(trade barrier) 또한 존재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경쟁상대국( competing country)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패전국(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여타의 후진국가들처럼 '경제적인 재종속'의 가능성이 없었고 일본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건설해 둔 '경제'를 아무런 방해 없이 양도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후진국들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었던 토지개혁 또한 지적되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한국전쟁(1950)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도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한 몫 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십니까? 계급전쟁(class war)은 새로운 사회토대를 구축하는데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즉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구시대의 모든 전통질서를 붕괴시키는 계급전쟁을 겪음으로써 세계사적인 적응성(flexibility)이 강하게 되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중국인들이 문화혁명으로 인해 좌익혁명을 통한 구제라는 환상을 버리게 됨으로써 자본주의적 방향전환이 쉬웠을 것"이라는 슐레진저(Arthur Meier Schlesinger Jr)의 지적과 같이, 한국전쟁은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 구시대의 앙금들을 쓸어가 버린 역할을 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은 엄청난 인명 살상이 있었지만 인민군이 남으로 휩쓸고 한국군이 북으로 휩쓸어 구체제의 많은 봉건유제(封建遺制)들이 일거에 소탕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빈곤의 평준화'로 인하여 이른바 자본주의의 발달에 불가결한 요소인 값싼 노동시장이 형성되었고 정부는 부담 없이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한편,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하여 이른바 자본의 원시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 of Capital)을 달성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데올로기 전쟁이 없었던 나라에서는 구체제의 모순들이 정리되거나 교정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필리핀이나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제대로 된 경제개발을 못하는 주요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도 계급전쟁이 없었던 것입니다.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혁명이란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식인들은 다만 이 피의 량을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하는 것입니다.
넷째, 미국의 원조도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지정학적(geopolitical)인 중요성이 컸으므로 자신의 경제적인 계기와는 무관하게 엄청난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 원조는 대륙규모의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한국은 사회경제적인 질서의 유지뿐만 아니라 사회기초부문의 발전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꼭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당시 미국의 대 한국 원조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경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당시의 한국 경제사정은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도덕적인 원조를 해줄 나라는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던 시기의 한국인들은 거의 아사상태라고 보면 딱 맞습니다.
다섯째, 경제개발을 진두지휘한 강력한 정부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이 "당시에 누가 해도 그렇게 되었을 거야."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경제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민주화가 고도화된 요즘 보세요! 정부가 도로 하나 제대로 뚫을 수가 있습니까 ? 세계 근대사를 다 둘러봐도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 특히 그 중에서도 최빈국이었던 후진국가가 개발독재가 없이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한국의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으로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과 필리핀의 아키노(Benigno Simeon Aquino Jr., 1932~1983)를 들 수 있습니다. 현대 중국의 성공은 바로 덩샤오핑의 지도력 덕분이라는데 토를 다실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대의 중국 경제가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덩샤오핑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중국의 현재는 상당히 참혹했을 것입니다. 아키노는 필리핀의 정치가로서 미국에서 마르코스 독재체제 반대운동을 계속하다가 1983년 8월 21일 귀국, 마닐라 공항 도착 직후 괴한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이 암살사건은 대규모 반정부 운동을 촉발시켜 군부에 의해 마르코스 독재체제가 무너졌지요. 만약 아키노가 살아 있었더라면 필리핀의 현재가 훨씬 나아졌을 지도 모르죠.
여섯째,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빈곤의 절벽 끝에서도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강한 국민성이 경제개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서양인들은 마을이 만들어지면 교회를 짓겠지만 한국인들은 학교를 세웁니다. 학문을 숭상하는 한국의 오랜 역사적 전통으로 광범위한 인적 자원의 형성이 가능하였다는 것이죠.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 한국의 성공은 일반화되기 어려운 경제외적 요인들을 경제적 성공의 본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70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을 채택한 국가들은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그들의 경제를 더욱 파행적으로 만들고 말았지요.2)
1970년대 한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분명히 비약적이었습니다. 적어도 두 번의 오일쇼크(Oil Shock)를 겪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한국은 1980년대 초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1985년 소위 '삼저호황(三低好況 : 저유가·원화약세·저금리)'을 맞이하여 한국경제는 새로운 중흥기(中興期)를 맞이합니다.
Ⅳ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교수 한 분이 어떤 설명을 하다가 학생 가운데 하나가 반론하자 "이것은 말이야 내가 하는 소리가 아니고 유명한 석학(碩學)이 한 얘기란 말이야." 라고 하였습니다. 석학의 말이면 무조건 옳다는 말인지 아니면 석학이 한 얘기는 검정을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일단 유명해지고 볼 일입니다.
세기 말, 그러니까 2천년이 되기 바로 직전에 세계적으로 미래에 대한 많은 담론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미래학자들이 미래의 사회에 대해서 논하였습니다. 어떤 한국의 학자는 미국의 미래학자 중 한 사람에 대하여 미래를 가장 탁월하게 예측한다고 하여 아예 그 사람의 학문을 전공하다시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미래의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것이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고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던 동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동네에 맞게 만들어낸 얘기를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제가 읽고 경험한 바로는 미국의 학문이라는 것은 형이상학(metaphysics)이나 철학적 기반이 약하고 지나칠 정도로 공리주의적(Pragmatism) 전통이 강하여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능력이 다소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물론 자연과학이나 공학은 강할 수가 있겠지만 대체로 세계의 석학이라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세상의 현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말도 안 돼,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거야?"
글쎄요. 그럴 수가 있는 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패러다임에 대한 여러 가지의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디지털 시대에 좀 더 합당한 패러다임을 제시할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제시하는 패러다임들이 모두 미래 패러다임의 구성에 정말 불가결한 것이 될 수 있을 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 아직은 없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제시된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여러 현상의 일면만을 바라보면서 제시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부자들만의 나라가 아니잖습니까? 그런데도 패러다임이라는 것도 미국과 서유럽의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 대부분 아닙니까? 그것이 어떻게 미래 패러다임으로 제구실을 하겠습니까? 저는 진리(truth)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특정 기득권 계층만을 옹호하는 것이 학문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점에 대하여 늘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 것은 학문이 아니지요.
저는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미래 디지털 시대의 패러다임을 찾아서 과거 - 현재 - 미래를 여행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눠집니다.
제1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에서는 전체적으로 패러다임의 문제를 조망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간략하게 검토하고 자본주의가 이처럼 번성하는 이유가 철학이 허약한 까닭이라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이해를 위한 도구로서 표현양식(expression mode)과 존재양식(existence mode)을 살펴보고, 죽은 표현양식이 산 존재양식을 구속하는 문제, 골프의 경제학(약탈본능의 시대)과 카사노바의 경제학 등을 설명할 것입니다.
제2부 카멜레온의 노래(Song of Chameleon)에서는 끝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를 패러다임의 시각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원래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분석은 사회주의 계열에서는 필수 과목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분석이 많이 틀렸기 때문에 가급적 레닌(Lenin)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분석은 배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주로 대변혁(Great Transformation), 분해되는 자본주의, 포디즘(Fordism)의 그늘,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 경기변동과 패러다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 패러다임, 탈자본주의,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 등 그 동안 논의되어왔던 많은 패러다임들을 전반적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검토할 생각입니다.
제3부 디지털 패러다임(Digital Paradigm)에서는 이상의 패러다임 분석을 바탕으로 현재 자본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를 논의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지식사회에 대한 분석, 인터넷의 정치적 의미(Internet from Political Perspective), 시스템(System), 데이터베이스(DB), 디지털 상품(digital goods), 공용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 인터넷 마케팅 등의 분석을 통해서 자본주의 시장이론은 붕괴될 것이며 새로운 형태의 노동가치 이론의 등장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할 것입니다.
이러한 분석들을 통해서 우리가 미래 사회에 좀 더 잘 적응해나갈 수 있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열리게 된다면 저는 이 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셈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생각보다는 어렵고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잘못하면 전문가들의 토론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우리들이 살아가야한 시간과 공간적 터전이기도 하기 때문에 미래의 방향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쉬운 내용은 아니겠지만 최대한 쉽게 풀이해서 쓰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다만 미래를 보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곧 바뀌어 버릴 구체적인 수치를 여러분들께 제공하기보다는 '생각의 방법'들을 제공하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그래야 글이 오래 갑니다. 지나치게 현실과 상황에 집착하여 분석하다보면 정말로 큰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지요.
자, 이제 다시 한번 길을 떠나 봅시다. 디지털 시대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방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김운회 드림
1) Leo Huberman, We the Peophe(New York : Monthly Review Press, 1964) 260쪽.
2) 즉 비교우위론에 입각하여 값싼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은 원자재, 자본재 수입을 급증시켜 해당국으로 하여금 경상수지의 적자체질을 구조화하고, 이것은 다시 외채증가의 가속화 → 외채상환부담의 증가 → 계속적인 수출증대의 강요 → 경상수지 악화의 가속화 → 외채의 누증 → 외채를 갚기 위한 외채의 도입 → 경제의 종속성 심화 → 강요된 내핍으로 국민경제생활 파탄 → 채무지불 정지선언 → 내핍의 가속화 등의 일련의 악순환구조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윤진호,「세계자본주의와 제3세계의 공업화」,『세계자본주의론』(까치 : 1984) 237쪽.
연재할 목차 소개
제 1 부 돈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죠
□ 돈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죠.
제 1 장. 역사의 종언
(1) 역사의 종언
(2) 미국, 아름다운 나라
(3) 돈없는 사랑, 사랑이 아닙니다.
제 2 장.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 괴테의 시, 칸트의 철학, 그리고 고전 경제학
(1)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2) 푸른 생명의 나무 : 몰락의 전조
(3) 마르크스주의
제 3 장. 철학이 허약해서 번성하는 자본주의
□ 머리가 제일 긴 사람을 여왕으로 삼지.
(1) 패러다임
(2) 철학적 기반이 허약해서 번성하는 자본주의
(3) 밀물의 속도(velocity of flow)
제 4 장. 죽은 표현양식이 산 존재양식을 구속하다
□ 원숭이가 보는 세계
(1) 파라오의 꿈
(2) 존재양식과 표현양식
(3) 죽은 표현양식이 산 존재양식을 구속하다
제 5 장. 골프의 경제학
□ 골프를 쳐야 사람대접을 받지
(1) 약탈본능의 시대
(2) 영업은 이윤을 위해 산업을 사보타지 한다.
(3) 유한계급론(Leisure class)
(4) 정학유착(政學癒着)
제 6 장. 카사노바의 경제학
- 자본시장과 경제학 -
□ 들어가는 글
(1) 블러 경제
(2) 주정뱅이의 경제학
(3) 카사노바의 시대
제 2 부 카멜레온의 노래
- 끝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 -
제 1 장. 공중분해 되는 자본주의
□에덴은 어디에도 없다
(1) 대변혁
(2) 위대한 사람들이 만든 타락한 국가
(3) 분해되는 자본주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녁에 비상한다-
제 2 장.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니
□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니
(1) 영원한 변화, 자본주의 : 슘페터
(2) 사랑했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3) 마르크스와 슘페터
제 3 장. 포디즘의 그늘
□ 히틀러의 우상
(1) 사상가 헨리 포드(Henry Ford)
(2) 제2차 산업분화(Second industrial divide)
제 4 장.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
□ 자본주의 4.0 ?
(1) 여덟 가지 새로운 시대
(2) 포스트 포디즘
제 5 장. 신자유주의는 패러다임인가?
□
(1)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2) 미국과 신자유주의
(3) 신자유주의는 패러다임인가?
제 6 장. 탈자본주의 ?
(1) 탈 산업사회론
(2) 새로운 계급
(3) 정보화 사회
제 7 장. 디지털 시대의 길목에서
(1) 경기변동은 패러다임의 변동인가?
(2) 무서운 예언자 이니스
(3) 지식사회
제 3 부 디지털 패러다임
제 1 장. 인터넷의 등장과 지식사회의 도래
□ 컴퓨터란 무엇인가 ?
(1) 인터넷의 등장
(2) 데이터(data)에서 지식(knowledge)으로
(3) 지식사회인가 정보지식사회인가 ?
제 2 장.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패러다임의 위기
□ 실체(entity)는 디지털인가 아날로그인가 ?
(1)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패러다임의 위기
(2) 디지털 국가의 패러독스(Paradox Of Digital State)
(3) 패러다임의 위기 대두
제 3 장. 시스템과 미래의 주인, DBMS
(1) 시스템, 그대 이름은
(2) 시스템으로 보는 사회
(3) 시스템의 하부구조 DB
제 4 장. 디지털 상품의 등장
(1) 포노그라피도 디지털 상품
(2)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3) 경제?경영 패러다임 붕괴의 시작
(4) 메타 상품의 정치 권력화
(5) 경제?경영 패러다임 어디로 갈까?
제 5 장. 자본주의 시장 이론의 붕괴 시작
(1) 희소성이라니요?
(2) 재벌이 된 노동자
(3) 사라진 공급 곡선
(4) 디지털 시대 전통 경영학 패러다임의 위기
제 6 장. 공용지의 비극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1) 컨텐데지그날리지(ContenDesignology)
(2) 공용지의 비극
(3) 국방과 외교는 순수공공재
(4) 디지털 상품의 이상한 성격
제 7 장. 마케팅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다
□ 에피소드
(1) 마케팅 천하
(2)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3) 인터넷마케팅
* 일부 장별 세부 내용은 앞으로 다시 공지해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연재의 과정에서 항목들이 다소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회 지도간사, 서울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회 사회과학 지도간사 등을 하면서 한국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론적 편향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 경제학과 근대 자본주의 개방 경제를 함께 연구하면서 한국 문제에 접근해 왔다. 그 연구를 기반으로 서울대학교 상대 졸업논문 최우수상(1988)을 수상하였다. 그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디지털 재화에 대한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2003)를 받았다. 교육인적자원부 지방대학 육성위원을 역임하고 한국싸이버대학(38개 대학 컨소시엄) 창립멤버였으며, 국민 경제자문회의 '지역균형 발전기획단'에 전문가로 참여하였다.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 문화관광부 민족문화원형 발굴사업단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인 <인터넷비즈니스 원론(2002)>는 정진기 언론문화 출판상 후보작,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가을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난 10여 년간은 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고대사 연구에 매진하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수(국제통상학과)로 재직 중이다. 이번 연재는 세계사적인 체제(System) 위기를 맞아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와 추적을 제기하기 위해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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