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 속에 조용히 앉아있던 민주통합당 손학규 대선 예비후보가 무대로 끌려나와 입을 뗀 첫 마디가 관중을 폭소로 이끌었다. 10일 오후 7시 서울 금천구청 12층 대강당에서 열린 금천시민대학 토크콘서트 다섯 번째 강의 '대북정책, DJ와 MB를 넘어서'에서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두 전문가의 설전을 지켜본 손 후보의 소감이다.
토크콘서트 사회를 맡은 고성국 정치평론가의 말처럼 남북관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성향을 가장 극명하게 갈라놓는 주제다.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대미관계나 재벌·교육·부동산 문제와 같은 국내 사안에 비해 여론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사안이다. 남북관계에 얽힌 수십 년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는 한계,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 합리적 토론보다는 '종북, 친북' 논쟁 같이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한다.
남북관계의 복잡성 때문에 '전문가의 입'에 실리는 무게가 남다르다는 점에서 이날 나온 패널들을 소개하는 과정도 관심을 모았다. 국무총리실 산하 통일연구원에 있는 전성훈 선임연구위원이 "굳이 분리하면 보수적 입장(고성국)"에 섰고,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의 홍현익 수석연구위원이 "다소 비판적인, 진보라고 하긴 어려운데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위치에서 맞섰다.
▲ 금천구가 10일 오후 서울 금천구청 대강당에서 연 금천시민대학 장면.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고성국 정치평론가, 청중으로 참여했다가 무대에 오른 민주통합당 손학규 대선 예비후보, 차성수 금천구청장, 패널로 참가한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성훈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뉴시스 |
MB의 '비핵개방 3000'은 왜 실패했나?
전 위원과 홍 위원의 견해 차이는 역설적으로 북한에 대한 공통적인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해 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후계자로 부상한 김정은의 북한이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는 전제다.
전 위원은 "김정은의 북한이 개방·변화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개방은 힘들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북한에 요구하는 개혁·개방의 수준은 적어도 중국 모델인데,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과 혈연관계가 없던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 시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변화시켰지만 세습정권인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산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 권력기반을 깎아먹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도 "1960년대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지만 현재는 공식 통계로 남한 경제규모가 북한의 약 39배다"라며 "김정은으로서는 개혁에 힘을 싣다 그 부작용으로 붕괴하기 십상이고, 그게 두려워 개혁하지 않으면 회생이 불가능해 중장기적으로 붕괴할 위험에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대북정책의 방향은 토크콘서트 내내 극과 극을 달렸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회자되는 '비핵개방3000'에 대한 평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비핵개방3000은 정권 차원의 구체적인 정책이라기보다는 지향하는 목표·비전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 시대를 맞이하게 돕겠다는 것에 누가 반대했겠는가. 그러면 평화가 올 수 있다. 이 정책이 국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비핵, 핵 포기를 먼저 내걸어 대화가 아니라 대화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주었다는 점이다."(전성훈)
"비핵개방3000이 나왔을 때 저는 그 정책을 펴면 (남북관계가) 한 걸음도 못 나갈 것이라고 했다. 체제 유지를 위해 마지막 순간에, 최후에 포기하는 게 핵이다. 고르바초프가 개방 정책을 취해서 소련이 붕괴됐다. '개방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를 도와주겠다'라는 말은, 가난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북한에 '너희들은 2만 달러면서 우리가 3000달러 되게 도와주겠다고?'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 된다."(홍현익)
"전술핵 재도입해야" VS "군사적 균형이 선결 조건"
북핵 문제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두 패널의 상반된 평가는 계속 이어졌다. 전 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더라도 비핵개방 3000 정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구조가 있었다"며 "북핵 문제가 불거진 게 20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북한의 기만전술에 휘둘리다 터진 게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핵실험을 눈 뜨고 보는 나라가 없다. 비등한 예가 (이란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이스라엘"이라며 "한국이 그렇게 많은 자원을 투자해 몇 대에 걸쳐 해결하려던 핵 문제가 악화됐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해결과제로 놓을 수밖에 없다는 강박이 있었고, 거기에 대해 문제 삼을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이 북한 핵개발에 좋은 조건을 제공"했고,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 연구위원은 1차 핵실험은 당시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책 일변도로 나간 결과이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방조한 탓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2006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 그렇게 잡아먹으려 했던 부시가 막판에 오히려 북한과 단독대화에 나서며 꼬리를 내렸다"며 "한국과 미국이 함께 화해협력을 추진하면 북핵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분명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북한과 대화 의지를 가지고 있던 오바마에 한국의 (강경한 기조 유지라는) 요구를 들어달라고 했던 게 아쉬운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청중의 질문에도 둘의 답은 달랐다. 전 연구위원이 핵무기 재도입을 통한 '높은 수준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강조했고 홍 연구위원은 재래식 군사력 감축을 통한 '낮은 수준에서의 균형'을 주장했다.
전 연구위원은 "핵무기가 출현한지 60년이 넘었지만 자발적으로 포기한 사례는 없다"며 "북핵 문제 해결이 난망한 상태에서 한국은 안보를 위해 협상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체적 핵무장은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같은 취급을 받는 꼴이 되니 1991년까지 주한미군이 갖고 있었던 전술핵무기를 다시 들여다 놓고 북핵과 맞대응을 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홍 연구위원은 "북한의 핵 포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가능성은 분명 있다"며 "우리가 북의 남침 가능성을 크게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도 안보딜레마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한미군을 포함한 재래식 군사력의 균형을 이루어야 (북한도)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생존을 보장하면서 핵을 포기하길 바라고 있으니 일본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맞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현금 주고 얻은 정상회담" VS "서독은 더 줬는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에 이어 대화 주제는 김대중·노무현 시절 성사됐던 남북정상회담으로 넘어갔다. 전 연구위원은 "6.15 정상회담의 대가로 현금이 북으로 갔고 액수는 4억5000만 달러에서 더 많다는 추산도 나온다"며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정상회담이 추진되어 왔지만 유독 김대중 대통령 때 정상회담이 이뤄진 건 본인의 의지와 정치적 업적도 있었지만 현금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전 연구위원은 또 6.15 선언의 내용에 대해 "남한의 남북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의 유사성을 인정한 점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남한의 연합제라는 단어 자체가 김대중 대통령 본인의 통일관이며,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유사성을 인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헌법 4조에 위배된다"라고 덧붙였다.
홍 연구위원은 "돈을 준 건 잘못됐다"라면서도 "1950년 이후 서독은 매년 수조 원씩을 동독에 지금하고 통일 이후에도 향후 20년 간 지원했다. (남한이) '퍼주기'를 했다는데, 민주당 (집권) 10년 동안 4조 원을 줬지만 3조 원은 식량·비료이고 1조 원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을 통해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홍 연구위원은 "돈을 준 건 잘못됐지만 평화유지의 가치는 소중하고 (정상회담을 통해) 유형·무형으로 얻은 가치는 (대북송금액보다) 더 많다"라며 "(현재) 남한과 미국이 압박하니 북한은 10년간 지켜왔던 나진-선봉 지역을 중국에 다 내주고 철광, 희토류까지 가져가라고 하고 (체제안정을 도모하면서) 민족의 지하자원이 다 중국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엿다.
하지만 전 연구위원도 지지 않고 "2000년 당시 4억5000만 달러면 IMF 구제금융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인 10억 달러의 절반 수준"이라면서 "서독도 (동독에) 공짜로 준 게 아니고 정치범 등을 데려오기 위해 줬다. 우리도 납북자 송환이나 국군 유해 발굴 사업 등을 위해서하면 현금을 써도 지지할 것"이라고 맞섰다.
北과의 관계개선, 어떻게 가야 하나
두 전문가의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지만 올해 대선을 통해 들어설 새 정부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관계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 핵심은 5.24 대북제재도 중단시키지 못했던 개성공단의 확대와 금강산 관광 재개다. 하지만 이 사안에 대해서도 두 패널의 생각은 엇갈렸다.
전 연구위원은 "개성공단 자체가 북녘 동포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사업이고 긍정적으로 변화할 요소가 있다"면서도 "금강산 관광은 그 주변 지역의 발전을 이끌지 못하는데 이는 곧 관광에 쓰이는 돈이 평양으로 바로 간다는 의미여서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홍 연구위원은 "개성공단을 10개 만들면 사실상 통일 도달 직전까지 간다고 본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 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북한이 급변사태로 가변 향후 30년 간 2500조 원의 비용이 소모되는데 경협을 가능한 한 많이 하는 게 그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금강산 관광도 당연히 재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이 "관광을 하는 방식으로 동포를 돕는 것은 알지 못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지적하자 홍 연구위원은 "국가 전략은 감정이 아닌 국익을 고려해 마음에는 안들어도 해야 한다면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금강산 관광이 유지되는 것을 봐야 한반도의 안정성이 늘어나고 외국의 투자도 늘어난다"며 "(한반도 안정성 확보로 인한 비용 감소를) 계산해 보여주면 금강산 관광에 들어가는 비용은 비자 발급료 수준이며 이를 '퍼주기'라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된 종북 논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홍 연구위원은 "제 주장은 반공이면서도 국가 전략을 잘 짜서 통일비용을 줄이고 강국 되자는 것"이라며 "그런데 종북은 마치 '뼛속까지 친미적'인 방식과 유사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문제는 언론이 개인감정과 가치관을 가지고 북한과 대화하자는 주장을 종북, 친북으로 몰고 하는 것"이라며 "기술적인 국가전략 수행과정에 대해 (반대하려는데) 논리로는 따라가지 못하니 만회하려는 전략이 아닌가 싶다"라고 덧붙였다.
전 연구위원은 "종북은 실체가 있는 반(反) 대한민국 세력"이라며 "북한 정권의 대한민국 없애기의 일환이라고 보고 우리 사회를 흔들고 갈라놓으려는 것이며 (최근 종북 논란은) 우리에게 북한의 실체에 대해 큰 교훈을 줬다"라고 밝혔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두 패널의 주장 사이에 접점을 찾기는 힘들었고 청중들의 반응도 이에 따라 나뉘었다. 어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추진하면서도 안보 위험 상황을 만들었다는 데 우려를 표했고, 반면에 "3개월 전까지 북한에 있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탈북자는 "북한은 여전히 주민들에게 '남한은 적화통일 대상'이라고 가르치며 남측의 지원을 군수공장에 100% 가져가는데 (남측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섯 번째 강의는 오는 17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강연의 주제는 '집, 살 것인가? 말 것인가?'이며 부동산 문제를 조망한다. 이 강의 역시 고성국 평론가의 사회로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과 고종완 RE Members 대표가 패널로 참여한다.
금천시민대학 토크콘서트 "대한민국의 길을 묻는다!"는 6월 12일부터 7월 24일까지 총 7회에 걸쳐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금천구청(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바로 앞) 12층 대강당에서 열립니다. 신청은 무료이며, 개별 토크콘서트 신청도 가능합니다. ☞토크콘서트 안내 보기 ☞토크콘서트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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