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자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10~11일 파업찬반투표를 거쳐 13일과 20일 4시간 파업을 결정하자 이 신문은 "노조가 결국 파업에 들어가면 최근 3년간(2009~2011년) 이어온 현대차 노사의 무분규 노사협상 타결기록이 깨진다"고 썼습니다.
<조선일보>뿐만이 아니라 여러 경제신문들과 울산지역 신문들은 '4년 연속 무분규 깨지나' 등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회사인지 모르겠지만 <울산매일>은 '현장 분위기 냉랭…투쟁 수위·성과 관심 집중'이라는 황당한 제목과 악의적인 내용을 달아 기사를 썼습니다.
450여명의 현대차지부 대의원 중에는 회사 측 대의원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만장일치로 파업을 결의한 것은 그만큼 주간연속2교대제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과 공정분배,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에 대한 현장의 요구가 크기 때문이겠죠. 만약 대의원대회에서 누구 하나라도 반대 의견을 냈다면 보수언론의 기사는 가관이 아니었을 겁니다.
언론들이 '무분규' 깨지지 않기 기대하는 이유
언론들이 왜 현대차라는 한 회사의 노사 간의 분규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무분규'가 깨지지 않기를 기대하는 걸까요?
국어사전에 '분규'는 '이해나 주장이 뒤얽혀서 말썽이 많고 시끄러움'이라고 나옵니다. 노사간의 분규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라는 뜻입니다. '쟁의'는 '서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며 다툼'이라는 뜻이고, '지주나 소작인 또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협상 과정에서 노사 간의 이해나 주장의 차이가 가장 큰 것은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입니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노조는 10시간씩 진행되는 주야 맞교대를 8시간씩 주간연속2교대로 바꾸고, 부족한 물량은 공장을 신설해 3500명을 신규채용하자는 주장입니다. 회사는 줄어드는 노동시간에 따른 부족한 물량을 신규채용 없이 노동강도를 높여 채우자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판결 정신에 따라 업무, 근속연수, 입사 연도 등을 구분하지 말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입니다. 회사는 대법원 판결이 개인 판결이기 때문에 요구를 수용할 수 없고, 불법파견을 하고 있는 공정을 공정분리나 블록화를 통해 합법화하자는 것입니다.
이렇듯 분규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현대차 노사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했고, 노조는 법에 따라 조정절차와 찬반투표를 거쳐 7월 13일과 20일 파업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노사 간의 타협과 조정이 이뤄지는 무분규와 무쟁의는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서울역 광장 시위. ⓒ프레시안(김봉규) |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문제로 노사 이해관계 충돌
<조선일보>가 '국내 최대, 최강성 노조'라고 보도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2009년부터 3년 동안 무쟁의를 했습니다. 노사 간에 이해관계의 충돌도 있었고, 사실상의 파업인 잔업이나 특근 거부도 있었지만, 명시적인 파업을 하지 않고 타결했다는 뜻입니다.
현대자동차의 무쟁의는 2007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현대차지부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현장발의로 결정된 6월말 한미FTA 반대 총파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는 회사 내의 임금과 단체교섭을 대상으로 파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쟁의를 달성했다며 조합원들에게 무상주 30주를 지급했습니다.
'14년째 연속 파업'이라며 현대차노조를 공격하던 보수언론과 경제신문들은 이때부터 대대적으로 '무분규'를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와 언론들은 마치 현대차의 '무분규'가 한국 경제를 살리고, 서민들의 생계에 도움을 줄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경훈 집행부 시절인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무쟁의가 계속됐고, 조합원들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현대차 주식 135주를 무쟁의의 대가로 지급받았습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평균주가인 주당 24만원으로 계산한다면 주식의 현재 가치는 무려 3240만원에 이릅니다.
지난해 회사가 지급한 주식 35주는 현재 840만 원입니다. 지난 4월 24일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한 조합원은 "올해 현자지부 하는 꼬라지 보니 주식 받기는 요원한 것 같다"며 "한해 주식 받아 1000만원 현금화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틀 후인 4월 26일 현대차 아산공장 임태순 공장장은 조합원 부인들의 행사에서 "지금까지 지급된 주식은 무쟁의의 보상 차원"이라며 "주식을 더 받고 싶으면 올해 파업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지부는 "조합원들은 '돈의 노예'로 전락시키지 말라"며 공장장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 정규직이 '무쟁의' 돈잔치 벌일 동안…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2009년부터 3년 동안 '무쟁의'의 대가로 주식지급이라는 돈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에어컨 물을 받아먹으며 경찰특공대의 살인진압에 맞서 77일간 공장점거파업을 벌였습니다. 2010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버티면서 25일간 공장 점거파업을 벌였습니다.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홀로 올라 309일 동안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벌였고, 그를 살리기 위한 5차례의 희망버스가 전국을 흔들었습니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라는 악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금속노조 사업장에 대한 집중적인 노조탄압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내일의 이익', 나만의 이해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위해 함께 연대해 싸우자고 말했지만, '무쟁의'의 보상이라는 주식은 조합원들의 계급의식을 질식시켰고, 연대를 손길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총노동과 총자본의 계급 대리전
지난 5월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의 인사노무 부서장 302명을 대상으로 '19대 국회 노동입법 방향에 대한 기업의견'을 조사한 결과는 경영에 가장 부담되는 19대 총선 노동공약으로 '휴일근로 제한 등 근로시간 단축'(53.6%)과 '비정규직 및 사내하도급 규제 강화'(24.2%)를 꼽았습니다.
현대차에서 심야노동이 사라지고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가 없는 주간연속 2교대와 노동시간 단축이 합의된다면 전국의 수많은 제조업 노동자들이 심야노동 중단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할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노동시간이 단축이 이루어진다면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현대차에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다면 이는 당장 현대차그룹 계열사와 부품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나아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율이 50~80%인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소, 포항제철을 비롯한 철강회사,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회사의 많은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할 것입니다.
즉, 2012년 현대자동차 노사 간의 핵심 쟁점인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정규직전환은 현대차와 금속노조를 넘어 총자본과 총노동의 계급대리전인 것입니다.
한국지엠지부 95.9% 파업찬성률의 의미
현대자동차만의 외로운 싸움은 아닙니다. 기아차, 한국지엠 등 완성차 3사와 만도, 한라공조와 같은 부품사 등 금속노조 14만 조합원들이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정규직전환을 요구하며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하청 공동파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조합원 1만3798명을 대상으로 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투표율 87.8%에 무려 찬성률이 95.9%(총원 대비 84.2%)라는 놀라운 수치로 파업을 결의했습니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10일과 12일 주야 3시간, 13일 주야 4시간 파업에 들어갑니다.
현대차 "주식 받고 싶으면 파업하지 말라" vs 노조 "굴욕적 노사관계 끝내야"
현대차와 보수언론들은 여전히 '무분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의 정치파업에 참여하기 위해 투쟁을 꽂고 교섭한다며 '금속노조 꿰맞추기 정치파업'이라는 대대적인 현장 여론몰이에 나섰습니다.
<조선일보>는 6일자 부산·울산·경남 판 신문에서 "실질적인 급여 손실을 우려하는 조합원도 많다"며 "지난 3년간 무분규 협상 타결의 성과물이었던 '무분규 주식'을 올해는 놓치게 된 탓"이라고 썼습니다.
또 만장일치로 결정된 파업 결의에 대해 "노조의 파업 행보에 대해 일부 대의원과 조합원의 반발 기류 또한 만만찮다"며 "민주노총의 정치파업 전략에 현대차 조합원들을 또다시 투쟁 쏘시개로 동원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익명의 조합원을 동원해 상식 이하의 기사를 써대고 있습니다.
현대차지부는 "무쟁의 3년으로 간덩이가 부어오른 사측의 안하무인이 단체교섭 결렬을 불러왔다"며 "이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4만5천 조합원의 총단결 총투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용문 지부장도 "최근 몇 년의 굴욕적인 노사관계를 끝장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과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고, 주식과 성과금이라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고용안정과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진정한 실리와 내일의 이익을 위해, 현대차를 넘어 전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해 '무쟁의'라는 굴종의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결의하고 있습니다.
7월 10~11일 파업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에 전국의 노동자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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