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운동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5월 15일부터 지난 달 21일까지 총 다섯 차례의 토론회를 열어 금지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을 이어왔다. 5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용산구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그간 논의된 토론 자료를 근거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제시한 법률안의 가안을 소개하는 성격으로 진행됐다.
초등학생 토익 시험 금지, 수학 선행교육도 처벌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법률'로 명명된 이 법률안은 '선행교육'을 금지하고, 위반 사례를 감독하거나 처벌하기 위한 규제기구를 만드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법률안은 우선 학생이 자발적으로 실시하는 예습은 '선행학습'으로 규정해 이는 처벌하지 않지만, 과외 교습소나 학교가 강제해 가르치는 수업은 '선행교육'으로 정하고 이를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엄밀히 말해 그간 논의된 '선행학습' 대신 '선행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법률안은 선행교육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정한 교육과정(국가 교육과정) 및 이에 근거하여 편성‧운영되는 학교의 교육과정(학교 교육과정)에 앞서서 교육 관련 기관이 제공하는 모든 교육'으로 정의했다.
규제 대상을 보면, 국가 교육과정에서 진도 개념이 명확한 수학, 사회, 과학은 학교 진도보다 1개월 이상 앞서는 선행교육 프로그램을 규제 대상으로 정했다. 법률안은 1개월을 "통상적인 예습으로 인정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의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규제는 공통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중학교 이하에만 적용되며, 선택교육과정이 운영되는 고등학교는 제외했다.
영어의 경우, 선행교육임이 명백한 초등학교 이하 학생을 대상으로 한 토플(TOFEL), 토익(TOEIC), 텝스(TEPS) 등 성인용 공인영어시험 교육을 규제 대상으로 정했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 학생에게 제공되는 영어 프로그램의 경우, 주당 교습시간을 120분으로 제한했다.
규제를 위해 법률안은 직권 조사 권한을 가진 '교육과정운영정상화추진위원회'를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교육청 소속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또 교육감에게 선행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 교습소, 개인과외교습자에 대한 '선행교육신고센터'를 설치할 권한을 제공, 신고자에게 포상 근거도 마련했다.
다만 법안은 영재교육진흥법에 의한 영재교육과 학생 개인이 스스로 선행학습을 하는 행위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서울 강남의 한 학원가. 입시학원 상당수가 선행학습을 실시한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프레시안(최형락) |
"선행학습, 일종의 공무방해"
김승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상임변호사는 "선행교육은 일부 영역에서만 한정적으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라며 "일부 교육청 차원이나 시민들의 의식 개선 운동만으로는 선행교육의 폐해를 바로잡기에 한계가 뚜렷하다"고 법률 제정 운동 취지를 밝혔다.
이헌욱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은 "영화를 스포일러하면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선행교육도 선생님의 가르치는 즐거움을 뺏는, 일종의 공무방해죄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찬성 의사를 밝혔다.
김현국 미래와균형 정책연구소 소장도 "모든 학생에게 거의 모든 교과의 선행학습을 학교와 부모가 강제하는 건 폭력"이라며 "전쟁을 하는 한 피해자 수를 줄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예 '사교육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한, 선행교육의 부작용은 막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 소장은 나아가 중고교 8과목 집중이수제를 폐지하고 자사고와 외고, 국제중, 국제고 역시 일정 기간 예고 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개별 대학의 학생 선발 권한이 지나치게 강한 원인이 되는 대학별 입학시험도 축소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8과목 집중이수제란 학기당 이수 교과목을 8개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로, 이에 따라 대입 시험에 나오지 않는 미술, 음악, 체육 등 일부 과목은 단기간에 집중 편성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김 소장은 다만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법률과 같은) 특별법보다는 일반법을 정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한계를 그었다.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과 해당 법의 시행령 등을 정비하고,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규정을 세밀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진로에 따라 해당 분야를 먼저 심화 학습할 '학생 선택권 교육과정'의 다양화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예를 들어 "경제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미적분과 통계, 국제경제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설명도 잇따랐다.
"사교육 규제, 다들 찬성하지만 자기 자녀에겐 사교육 시키는 게 현실"
신문규 교육과학기술부 사교육대책팀장은 "정부 예산에서 교육 예산이 약 50조 원인데, 지난해 사교육비 규모가 20조 원에 달했다. 가계 부담이 상당한 게 사실"이라며 "과도한 선행학습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일정 정도 규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법안의 취지에 대해선 동의했다.
신 팀장은 다만 "물리적으로 학원들을 제대로 단속하기란 어렵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과연 제대로 된 단속이나 처벌이 가능할 진 의문"이라고 현실성에는 의문을 표했다. 또 "국민 운동 차원에서 이 법안 정신에 국민들이 따라주길 바라야 하는 상황"이라며 "원론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이 규제에 찬성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이들이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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