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지 삭감, 그럴듯하지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일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지 삭감, 그럴듯하지만…"

[복지국가SOCIETY] "퇴행적인 영국을 넘어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자"

영국 수상 데비드 카메룬이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5일 이른바 '카메룬 17 아이디어'를 영국의 남부지방인 켄트에서 선언했다. 북쪽이 아닌 남부지역을 선택한 것은 보수당의 지지 기반을 고려한 것 같다. 이번 발표의 주요 핵심은 이렇다.

실업과 주택 수당(housing benefits)의 제거다. 정부가 실직자들에게 지급하던 71파운드(한화 13만 원) 혜택의 중지를 선언한 것이다. 또, 25세 이하의 젊은 실직자 380,000명에게 지급하던 주당 90파운드의 주택보조금도 삭감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러한 삭감 정책을 선포하면서 카메룬 수상은 영국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가며 자신이 추진한 복지삭감 정책의 정당성을 설득했다. "만약에 당신이 4자녀를 키우는 편부모 가정이면서 전세를 산다면, 정부로부터 연간 25,000파운드(한화 3천만 원)의 수당을 받는다. 이는 농부나 간호사가 받는 평균 연봉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처럼 일하지 않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 '복지주의'는 그냥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보수주의자의 시각으로 볼 때, 일하지 않고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 돈으로 놀고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복지 온정주의 정책들'이라도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일을 해야 시혜를 베푼다는 영국의 '생산적 복지 정책'인데, 한때 김대중 정부가 선호했던 정책으로 속내 모르는 일반인과 우리 사회의 주류층이 선호했던 복지 프로젝트다.

카메룬 수상은 이번의 '17 복지개혁'을 통해 100억 파운드(한화 18조 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이러한 복지삭감 정책 제안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180억 파운드에 이르는 복지수당 예산을 삭감하여 재정연구소로부터 "역사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선례가 없는" 예산삭감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이번에 다시 복지삭감의 칼을 들이댄 것이다.

이번 정책이 발표되자, 일부 언론들은 영국 국민의 여론으로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94%가 지지하고, 진보 측 사람들의 60% 정도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들 언론은 여론조사에 응한 일부 사람들의 "더욱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인용하고 있다.

영국의 보수당인 토리당과 연정에 참여하는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ic Party)은 이번 삭감 정책을 발표한 카메룬 수상의 입장에 대해 신사적으로 거부를 표시했다. 카메룬 수상은 자민당의 도움 없이는 이 안건이 의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2015년 선거에서 독자적인 보수당 정권을 창출하면 복지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점을 시사했다. 일하지 않고 놀면서 복지혜택을 보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활용하여 보수당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속셈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현실을 깊이 들여다 볼 능력이 부족한 진보 성향의 국민들 중 절반 이상이 이번 카메룬 수상의 복지 삭감에 찬성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정책은 그것이 진보라 할지라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영국인의 정서를 잘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보수당 정책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쓴 소리를 하고 있는 영국 <가디언>지의 칼럼리스트 폴 토인비(Paul Toynbee)의 시각은 명확한데, 그는 현실의 이면을 밝히면서 카메룬 수상의 이러한 정책을 "완전히 후안무치한"(sheer effrontery) 정책으로 비판하였다.

우선, 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 이들 중 다수는 열심히 일하고도 빈곤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추가적인 수당을 받아야 하는 집단이다. 카메룬 수상이 선호한다고 밝힌 "열심히 일하면서 올바른 행동을 하는 국민"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25세 이하의 실직자들에게 지급하던 주택수당을 중단하는 정책도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주택수당 10억 파운드의 95%는 그동안 직장을 가졌지만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지불되었다는 사실이다. 8명 중에 한 사람 정도가 실직자로서 수당을 지급받았다. 결국, 저소득층의 다수가 전세 값이 상승하여 부득이 주택보조금을 요청한 것이었다. 전세 값이 오른 것은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던 탓이다. 주택보조금을 받던 사람들은 그들의 돈벌이에 비해 전세 값이 급등한 것 때문이지 일하기 싫고 게으른 탓이 아닌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카메룬 수상은 정책의 표적을 잘못 겨눈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직업을 가져도 저임금을 받는 젊은 청춘들에게 주택수당마저 없어진다면,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 지금 영국 경제는 불황이다. 그래서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직업을 가진다고 저임금 상황 때문에 주택보조금을 받아야 하는데, 카메룬 수상의 삭감정책 때문에 보조금마저 받지 못하게 되면, 그들이 갈 곳은 부모님 집으로 회귀하거나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부모가 부유하면 집이 커서 함께 거주하거나 또는 집을 구입해 줄 수도 있지만, 다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는 것은 주로 영국의 경제적 불황 탓이다. 그게 어디 개인의 자질이나 게으름 탓이겠는가. 과연 어느 것이 더 큰 요인일까. 카메룬 수상의 이러한 복지삭감 제안에 대해 진보주의자의 현미경은 이를 '후안무치한 개혁 정책'으로 폄하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카메룬 수상이 '파괴된 영국사회'(Broken Britain Society)를 재건하자는 뜻에서 내세운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큰 사회)' 정책에 대해 영국의 진보지성들은 이미 날을 세우고 비판해왔다. 영국의 보수진영은 그동안 노동당이 추진해온 국가 주도의 복지정책, 즉 '빅 스테이트(Big State, 큰 국가)'가 영국을 병들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2010년 출범한 보수당과 자민당의 연립정부는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지방에 의사결정력을 부여하고, 자생단체나 자원봉사 혹은 지역시민단체에 권한을 부여함과 함께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일련의 사회개혁을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큰 사회)'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카메룬 정권은 경제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은 낮아지지 않고, 지난해 7월에는 실직자가 약 250만 명에 달하였다. 현행의 자원배분 권력에 도전하지도 않았고, 지방으로 권력을 제대로 이양하지도 않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지역 자생단체의 문제인 물적/인적자원의 부족을 해결하는 데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쓴 소리의 볼륨을 더욱 높이는 학자와 지성들이 늘고 있다. 영국에서 사회복지실천 이론가로 유명한 레나 도미넬리(Lena Dominelli)는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큰 사회) 정책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 자원봉사, 자비에 기반을 둔 '박애주의적 접근(philanthropic approach)'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애주의적 접근의 주요 전제는 개인의 가난을 자신의 열망을 성취하길 꺼려하는 의지부족이나 무기력에 원인을 두면서 사회가 가난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는 곧 경쟁만능의 시장에서 돈을 벌고 성공한 사람들이 나눔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서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큰 사회)'는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회가 아니라 빅 마켓(Big market, 큰 시장) 에서 성공한 사람을 위한 사회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박애주의적 접근이 실패하여 영국은 복지국가를 창조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실패한 정책을 다시 반복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있다.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를 역임한 르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도 카메론 수상의 Big society 정책은 "가장 가난한 약자를 위해 국가가 수행해야 할 책임을 철회함으로써 나타날 심각한 부작용을 숨기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는 그가 곧 출간될 "공공 광장에서의 신앙(Faith in the Public Square)"이라는 책에서 밝힌 내용이다.

카메룬 수상이 밝힌 복지예산 삭감 정책은 한국의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수용될까? 보수언론은 영국이 '조건 없는 복지' 즉, 보편적 복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면서 해당 정책의 주요한 내용을 간략하게 전달하고 있다. 정책의 이면에 내포된 현실과 그것의 역효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게 뻔하다. 유럽 발 경제위기에서 영국의 고질적인 '복지병'을 치유하기 위한 불가피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즉, 보편적 복지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국가의 부채를 증가시키는 주요 요인이며, 또한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들에게 급여 자격을 부여하는 '권리부여 문화(culture of entitlement)'를 생산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우리 한국도 부채가 1,000조 원을 넘는 상황에서 영국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더러 나올 법하다. 여기에다 카메룬 수상의 복지삭감 정책이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 59%가 지지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놓치지 않고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훼방을 놓을 호재로 활용할 여지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한국 보수진영의 주류 정당, 언론계, 관료 집단을 비롯한 학계가 영국의 카메룬 수상만큼이나, 또는 그 보다 더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기에 하는 말이다. 성장만능주의와 시장맹신주의로 분류되는 집단들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들은 경제성장과 복지(분배)의 유기적 통합 전략으로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애써 외면한다. 우리나라도 '복지병'에 걸리면,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전락한다고 위협을 가한다.

영국 카메룬 수상의 복지개혁 정책을 교훈으로 삼자는 보수진영에게 되묻고 싶다. 영국은 그래도 박애정신에 근거한 '비(非) 복지국가'에서 보편성의 가치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로, 그리고 다시 '비(非) 복지국가'로 반복하는 역사적 경험이라도 있지만, 한국은 어떤가? 우리 국민들이 복지국가라는 형태에서 보편적 복지의 혜택을 제대로 경험한 적이라도 있는가. 지금 보수진영의 결집력을 고려해보면, 한국은 개인의 자질 부족을 탓하는 '비(非) 복지국가' 또는 '반(反) 복지국가'의 범주에 영원히 머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의 빛이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몇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우리 국민은 분명히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정치행위를 하였고, 또한 그 결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희망의 빛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가 비극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편주의 무상급식제도의 정착을 통해 희망의 빛을 보지 않았던가. 이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할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보편주의 철학에 근거하여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통한 경제와 복지의 통합적 발전을 내세운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을 조직하여 '역동적 복지국가'를 반드시 건설 하겠다는 결의로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단체인 <복지국가국민운동>도 정관을 제정하고 새롭게 출범했다. 복지국가 운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시민, 정당, 노조, 그리고 여타의 단체들이 모두 연대하여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의 국민적 파워를 과시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역사적인 미션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