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토대의 안정성과 더불어 이제 남은 것은 새로 등장한 수령 김정은이 수령에 걸맞는 역할을 다할 것인가가 미래 안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 즉 수령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향후 수령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가에 따라 김정은 체제의 장기적 안정성이 좌우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수령의 역할이 검증되기 위해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어떤 리더십과 정책비전을 보여줄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다.
물론 김정은 체제는 여전히 선대 수령의 '유훈'이라는 과거 구속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막 권력승계를 완료했고 아버지의 그늘과 영향력이 온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쉽게 유훈과 계승이라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대내적 안정이 필요하고 파워엘리트들을 다잡을 수 있는 권력정치의 효용성의 측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망자의 영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훈과 계승이라는 과거 구속력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홀로서기 이후에는 김정은 스스로의 독자적인 미래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다른 새로운 변화를 제시하고 김정은만의 깃발과 브랜드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주체'를 내걸고 아버지 김정일이 '선군'을 브랜드화 했듯이 이제 김정은 체제가 제 발로 서게 되면 김정은만의 독자 브랜드를 선명하게 내거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김정은의 독자적의 리더십과 비전 여하에 따라 이제 막 수령의 지위를 확보한 김정은 체제의 장기적 안정성 여부가 좌우될 것이다.
우선 수령의 리더십과 관련해 김정은 체제는 분명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리더십은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인격적 리더십과 지위와 제도의 권한에서 비롯되는 제도적 리더십으로 구분된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인격적 리더십이 먼저 형성되고 이후 국가주석이라는 수령의 제도적 리더십이 완성된 경우였고, 김정일은 후계자라는 제도적 리더십이 먼저 만들어진 연후에 인격적 리더십이 형성되는 경우였다.
이와 비교할 때 김정은의 경우는 너무 짧은 기간에 후계과정과 승계과정이 진행되어 상대적으로 리더십이 취약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적극적인 리더십 스타일로 서둘러 인격적 리더십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팔짱을 끼거나 눈물을 흘리고, 직접 친필사인한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여성군인과 소년단에게 스스럼없는 스킨쉽을 보여주는 모습은 분명 아버지와는 딴판이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6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소년단 창립 66돌을 경축하는 은하수관현악단 음악회 '미래를 사랑하라'를 관람하며 기립박수를 치고있다. ⓒ연합뉴스 |
놀이동산의 풀을 직접 뽑는 모습도, 유희장 관리가 잘못되었다면 관료들을 호통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육성을 직접 들려주고 주요 행사를 생중계하는 모습도 과거와는 분명 다르다. 로켓 발사 실패를 곧바로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도 김정은식의 투명한 리더십의 사례일 것이다. 은둔형의 폐쇄적인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김정은은 인민대중과 직접 소통하고 다가가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제도적 리더십 역시 짧은 기간에 갑작스레 이뤄졌기 때문에 김정은은 지금 시스템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효율적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는 당정치국이나 정권기관 및 명시된 제도와 기능 보다는 직접 수령이 당비서국과 전문부서를 통해 해당 업무를 지시하고 집행하는 이른바 수령의 '직할통치' 성격이 강했다. 후계자로서 오랫동안 모든 영역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은 제도와 시스템의 책임과 기능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각 구조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 이후 이번 4.11 당대표자회에서도 정치국과 비서국 및 중앙군사위원회를 각 기능별로 정상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리영호와 최룡해 등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포진시켜 명실상부한 당의 의사결정구조로서 정치국을 정상화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더불어 군이 아닌 당 출신의 최룡해를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한 것 역시 당을 통한 군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최영림 총리의 이른바 '현지료해'가 많이 강조되는 것도 과거 수령의 '현지지도'에 비교되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경제사업에 관한 한 내각에 부여된 권한과 책임을 돌려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4.13 국방위원회 개편에서도 김정은은 북한 전반의 무력을 실제 관장하고 담당하는 기관장이 당연직으로 국방위원이 될 수 있도록 기능을 정상화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즉 국방위원은 북한의 무력전반에 관한 통제권한을 갖는 기관장, 즉 인민군 총정치국장, 인민무력부장, 인민보안부장, 국가안전보위부장이 포함되는 바 금번 인사에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인민보안부장 이명수,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이 신임 기관장 자격으로 국방위원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공석이었던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대신했던 우동측 제1부부장은 새로 기관장이 임명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방위원에서 물러난 것이고 따라서 숙청설은 근거없는 오해에 불과하다.
결국 김정은은 아버지와 달리 인민대중과 소통과 접촉을 강화하는 투명하고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한편, 법과 제도에 명시된 기존 시스템을 존중하고 활용하고 권한을 일정하게 분산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의 단초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김정은은 정책 비전에서도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새로운 변화를 시사하는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아직은 유훈통치의 과거 구속력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이 점에 있어 최근 김정은의 발언에서는 향후 정책기조의 변화를 기대할 만한 대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4.15 대중연설에서 그는 강성대국 진입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평화가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공화국의 자주권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지만 자주와 평화의 길항관계를 표현한 대목은 과거와 비교할 때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또 그는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시대에 인민이 고생했음을 인정하는 언급이다. 또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도 밝혔다. 김정일과는 자못 비교되는 언사다.
최근의 언급에서 우리는 앞으로 김정은의 깃발과 브랜드가 선군이 아닌 선경과 선민으로 전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그래도 가져보기 원한다. '7.1 경제관리조치'의 핵심으로 박봉주 전 총리가 이번 인사에서 당 부장으로 복귀한 것도 유의미하게 지켜보고 싶은 대목이다. 로켓 발사 와중에서도 여전히 미국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2.29 합의의 완전폐기를 선언하지 않는 것도 김정은의 북한이 협상의 의지가 상당함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이제 김정은의 북한은 첫발을 내딛었다. 새로운 지도자는 새로운 리더십과 노선을 제시하고 추진하려 할 것이다. 지나친 희망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김정은 체제가 과거와는 다른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시스템을 존중하는 리더십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또 막연한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김정은의 북한이 과거회귀적인 보수적 비전이 아니라 개혁과 개방, 경제와 민생을 먼저 챙기는 미래지향적인 개혁적 비전을 고민하고 결단하기를 여전히 기대해본다.
2013년 새 정부는 김정은의 북한이 '어디로 가는가'를 그저 지켜만 보는 한반도의 방관자가 아니라 김정은의 북한이 '어디로 가도록 이끌 것인가'를 실천하는 한반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함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김정은의 북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이끄는 우리의 중요한 지렛대가 바로 남북관계 정상화임은 그래서 당연한 결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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