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째 방송 파행이 계속되자 기자, PD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렴해서 방송을 정상화시키라는 시청자, 언론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탄압은 이제 해외 언론감시단체들도 잘 알고 비판하고 있는 '공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방송파업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언급하면 오히려 간섭이 될 수 있다"며 회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동네 불구경 하듯이 말했다. 정권이 공영방송 사장 인사에 개입해 자신에 불리한 뉴스는 억제하고, 유리한 뉴스는 크게 보도하도록 조정한 게 바로 파업의 발단인데,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이 딴전을 부리니 파업이 끝나지 못한다.
이명박 정권이나 새누리당이 방송 파업을 즐기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상화되면 '말썽꾸러기'들이 들어와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테니, 파업으로 인해 그런 보도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상태로 대선까지 가면 오히려 현 여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 방송사들의 파업으로 정권 편을 드는 종편의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어, 파업이 오히려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방송 파업에 관한 의견에는 사이가 껄끄러운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의원 사이에 차이가 없다. 박근혜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당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되고, 새누리당의 실질적인 대선 후보로 자리를 굳혔음에도 그간 방송 파업에 대해서 뚜렷한 입장을 밝히길 꺼려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운영과 직결된 언론자유가 걸려있는 방송 파업을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은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 자리를 꿈꾸는 대선 후보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러한 압박 분위기를 감안했는지, 박근혜 의원은 지난 22일 드디어 MBC 파업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MBC 파업이 시작된 지 145일 만에 나온 최초의 논평이다. 그런데 논평 내용이 걸작이다. "파업이 징계사태까지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며 "노사가 서로 대화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공자님 말씀이다.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먹을 것을 주라"는 말과 같은 '명언'이다.
▲박근혜 의원은 최근 MBC 파업에 대한 의견을 처음 밝혔다. 그러나 그 의견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뉴시스 |
박근혜 의원의 논평은 프랑스 혁명 초기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명언'을 떠오르게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에 몰려든 굶주린 서민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백성의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낙하산 사장 김재철이 뉴스보도에 간섭하는가 하면, 정부에 비판적인 시사 프로그램을 없앰으로써 MBC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그의 말을 안 듣는 기자와 PD는 해고하고 징계해 방송을 망가뜨렸다. 이를 보다 못해 파업을 벌인 기자와 PD들에게 "노사가 서로 대화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박근혜 의원의 진의는 무엇인가? 박근혜 의원이 자신의 바람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빤히 알면서 던진 빈 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진실성을 의심케 한다.
대선 후보들 가운데 지지도가 가장 높다는 박근혜 의원의 한국 언론관이나 인간성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의원은 그 동안 말꼬투리 잡히지 않는 답변으로 높은 점수를 딴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의 발언은 그가 가진 민주주의관, 역사관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5.16 쿠데타가 구국의 결단이었다"거나 "유신독재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따위의 발언은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말대로 역시 박근혜 의원이 머리 깊숙이 유신의 망령이 도사린 "독재자의 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MBC 김재철 사장의 최근 행보도 가관이다.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켜보려 단말마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인상이다. 재임 2년 간 그가 해고 또는 중징계를 내린 기자, PD가 118명에 이른다. 전두환 식 '학살'이다. 언론의 본분이 무엇인지는 생각도 않고, 자신을 그 자리에 앉힌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성하려 이성의 한계를 벗어난 망동을 자행한다. 27일에는 10개 일간지와 7개 무가지에 파업을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광고료로 6억 원을 지불했다는 보도다.
광고의 열쇳말은 '상습파업, 정치파업의 고리를 끊겠습니다.' 그리고 MBC 파업 집회에 참석한 21명의 야당 정치인들 사진을 싣고 "MBC 노조집회에 참석한 정치인들, 이들은 모두 야당소속이었다"는 것을 큰 글자로 표시했다. 야당의원들이 파업을 지원했으니 "정치파업"이라는 것이다. 야당이 기자들의 언론투쟁을 지원한 것은 유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파적인 지원이 아니라 언론자유를 지원한 것이다. 정치인이 지원했으니 '정치파업'이라고 규정하고, 그러니 나쁘다고 단정한다면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언론투쟁을 왜곡한다면 김재철 사장의 지금까지의 주장이 모두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봤는가? 김재철 사장은 6억 원 광고료를 낭비한 것 같다.
그의 축출을 요구하는 100만 명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서명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섯 달 째 봉급을 못 받으면서도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기자, PD들을 돕기 위한 시민들의 '밥 차 모금'도 시작됐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드디어 시민이 일어섰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이 일어섰다는 것은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혁명의 분노는 선거에서 투표로 이어질 것이다. 김 사장으로서는 100만 명 서명이 끝나기 전에 빨리 사퇴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체면을 살리는 길인 것 같다.
▲공정방송 복원을 외치며 시작한 MBC 노동자들의 파업은 150일이 훌쩍 넘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박근혜 의원이 '빈 말'을 발표한 것과 같은 날 민주당이 "편파방송을 할 세력을 규합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방송파업 문제를 국회청문회 안건으로 올리자는 민주당을 비판했다. 방송 파업이 누구 때문에 왜 일어났는지를 외면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방송 파업은 정권의 하수인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내려 보내 정권에 유리하게 뉴스를 왜곡하게 만들고, 그래서 언론인들이 언론의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행동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국민은 이명박 정권의 꼼수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조·중·동도 새누리당과 방송 파업을 보는 시각이 같다. <조선일보>는 6월 23일 신문에 "MBC 파업 뭐길래…국회 문 닫고 온종일 난타전", "민주, 대선에 편파방송할 세력 규합만 관심"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간접적으로 방송 파업을 비판했다. 정권의 방송 장악을 비판하기는커녕 종편 특혜를 준 이명박 정권과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인상이다. 권언유착의 본보기로 우리 언론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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