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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문> 화제, 도대체 어떤 다큐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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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개의 문> 화제, 도대체 어떤 다큐이길래…

[기고] "사라진 3000쪽의 기록, '제3의 문'을 열어라"

지난 주 목요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던 <두개의 문> 배급위원 시사회에 다녀왔다. 함께 갔던 김소영 교수가 극장으로 가는 길에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영화라고 극찬했던 터라 나름 기대하고 시사회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하니 사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좌석은 이미 매진되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아 발길을 돌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인 <두 개의 문>에 쏠린 관심이 많이 낯설기까지 하다. 나는 사전 예약을 했던 터라, 사전행사가 끝난 후 좌석이 비길 기다렸고, 영화가 막 시작할 때, 간신히 표를 얻어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 14일 <두개의 문> 배급시사회가 열렸다. 김형태 변호사, 문정현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등이 참석했다. ⓒ문화연대

영화는 당시 사건 현장에서 촬영된 컬러TV의 영상물과, 용산참사 유가족 변호인단의 인터뷰, 용산참사 범대위 활동가들, 용산 참사 사건을 보도한 방송 언론의 보도기사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사람들의 육성으로 구성되었다. <두개의 문>에서 편집된 컬러TV의 영상은 철거민들의 농성 장소였던 남일당 건물에 망루가 지어진 장면부터 경찰특공대가 건물로 투입되어 농성자를 진압하려는 과정, 망루에 화재가 난 장면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또한 용산 참사 유가족들을 변호했던 권영국, 김형태 변호사의 증언과 용산참사 범대위 박진 활동가의 인터뷰는 용산참사가 애초부터 무리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벌어진 잘못된 공권력 때문임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대로 실제 화면에 얼굴이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재판과정에서 심문하고 증언한 담당 검사들과 경찰특공대 대원들, 용산경찰서장 등은 용산 참사가 철거민들의 위법농성과 위협적인 시위 때문이라는 것을 강변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임에도 진실규명을 위해 증언해야 할 실제 당사자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 망루에서 끝까지 남아있던 철거민들은 모두 죽었고, 농성장 진압을 위해 투입되었던 경찰특공대들 역시 인터뷰를 위해 카메라에 등장하지 않는다. 진압을 진두지휘한 현장 책임자나 백동산 경찰서장도 인터뷰 카메라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의 육성은 오로지 당시 현장에 촬영된 영상 속에서, 재판의 증인으로서만 나타날 뿐이다. 영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권영국, 김형태 변호사와 박진 활동가의 인터뷰는 당시 사건의 주체로서의 증언이라기보다는 진실규명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후적 제3자의 언어들로 구성되어있다. 연출자의 카메라 촬영 역시 사건 현장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참사가 난 이후에 시작되었다.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당사자들이 영상에서 부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이 영화가 처음부터 안고 있었던 커다란 장애였던 셈이다. 영화는 카메라와 스크린 외부에 떠도는 억압된, 혹은 억압하는 유령들과 싸워야 할 판이었다.

▲<두개의 문> 스틸 사진. ⓒ연분홍치마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의 특별한 문법, 세 가지

그런 점에서 짐작컨대, <두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통상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의 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출해야 함을 고민했을 거다. 용산 참사의 현장에서 죽은 고인들은 마치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모두 죽어나간 유태인들처럼, 감독들의 증언자가 될 수 없었다. 당시 현장 진압을 지시했던 책임자들과 현장 진압작전에 참여한 그 어떤 사람들도 적어도 이 정권이 지속되는 한, 진실의 입을 열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두 감독이 오직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촬영된 컬러TV 영상물, 신문기사들, 그리고 재판에 참여한 증인들의 육성 녹음파일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원천적, 혹은 제한적 한계들은 이 영화의 진실 추적을 위한 훌륭한 재료들이 되었다. 진실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별함은 세 가지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생생하게 현장을 담은 컬러TV의 영상물은 사건의 날것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진압을 준비하는 현장 지휘자의 목소리, 농성을 준비하는 철거민들, 투입되는 경찰특공대, 땅으로 떨어지는 화염병들과 그것들을 피해 베니어 판을 머리에 이고 건물로 들어가는 경찰특공대원들, 살수차에서 뿌려대는 엄청난 양의 물, 테러영화에나 나올법한 컨테이너와 그것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 크레인에서 망루로 투입되는 특공대들, 화염에 휩싸인 망루가 고스란히 화면에 담겨있다. 다만 그것을 실제로 증언할 당사자들이 부재한 채로 말이다. 감독들이 비록 자신의 카메라로 현장에서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그 누가 촬영했든 영상물 속 사건의 장면들은 해석자의 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관객들은 사건의 현장의 날것 상태를 보면서 아무런 해석도 필요 없이 스스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두 번째 재료는 앞서 설명한 대로 인터뷰에 참여할 증언자들을 확보할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인터-픽션(inter-fiction)' 장치이다. '인터-픽션' 장치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로서 사실의 구성적 한계를 허구로 재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 점에서 픽션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의 재연으로서 '픽션적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영화는 사건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들을 직접 인터뷰할 수 없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사건 직후 경찰에서 이들이 진술한 내용을 재연하기로 결심한다. 영화에 인터뷰한 김형태 변호사의 언급대로, 사건 직후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에 진술한 경찰특공대원의 증언이 진실에 가장 부합한 내용일 수 있는 바, 영화는 이들의 증언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이들이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내레이터를 통해 그대로 읽어내려 간다. 내레이터의 재연 장면은 진술서의 기술 내용에 해당되는 시간에 맞추어 있다. 용산 참사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 특공대원들을 실은 버스는 아무도 없는 도로를 질주하며 대단히 무감각하게 그려지지만, 한편으로 다소 공포에 휩싸인 젊은 특공대원들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버스가 질주하는 시점은 카메라의 시점이지만, 현장으로 가는 특공대원의 시점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특공대의 진술서를 있는 그대로 읽는 내레이터의 말에서 용산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한 공권력의 계획과 작전이 얼마나 부실했는가를 간파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선보인 '인터-픽션'의 허구적 장치가 용산참사의 무의식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두개의 문>의 인터-픽션 장치는 당사자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상황의 재연을 위해 불가피하게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가피성이 '증언의 재연'과 연결되면서 오히려 실제 증언 안에 감추어진 무의식을 건드린다. '상황의 재연'이 '증언의 재연'에 감추어진 무의식을 호출하는 것, 이것이 이 영화에서 인터-픽션이 가지는 의의다. 인터-픽션의 장치를 통해 진술의 억압된 무의식은 영화의 텍스트 밖으로 회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재료인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의 증언에 대한 반전적인 독해와 연결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눈 여겨 보았던 것은 재판에 증언한 가해자 측의 진술내용이 육성과 함께 문자화되는 장면이었다. 재판정에서 몰래 녹음한 녹취 파일을 들려주면서 동시에 자막으로 처리된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데, 나는 녹음된 음성보다는 그것을 녹취한 자막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증언자의 이야기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일종의 반전적인 독해를 가능케 한 이 영화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가해자들의 편파적인 증언의 문장들은 역설적으로 용산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증언의 문장들을 눈으로 읽는 과정은 바로 그 안에 억압된 진실의 무의식을 들추어내는 과정이며, 그 결과 용산참사의 진실규명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게 해주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진실을 은폐하려는 증언자들의 언어는 역으로 진실을 규명하려는 생생한 증거물이 되는 것이다. 이 역시 이 영화가 갖는 촬영 상의 한계를 잘 극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연분홍치마

진실규명을 위한 제3의 문을 발견하기

100여 분간 이어진 이 영화를 내내 마음을 졸이며 보았던 이유는 단지 기록된 당시 현장의 끔찍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개의 문>은 분명 다큐멘터리 영화이지만, 재난영화나 스릴러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실제로 불길이 타오르고, 망루가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 그리고 오로지 명령에 의해 무모하게 건물로 들어가는 특공대원들의 현장 침투장면은 마치 재난 영화, 테러영화의 문법을 방불케 한다. 또한 유가족의 동의 없는 시신 부검, 사라진 3천 쪽 분량의 수사기록, 삭제된 채증영상 등은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따르는 듯하다. 어찌 보면 <두개의 문>이 기존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새로운 형식적인 시도만이 아니라, 용산 참사의 사건과 현장 자체의 극적 구성과 그것의 특별한 진실 때문이다. 개발과 생존, 과잉진압과 필사적 사투, 증언과 진실의 경계에 서 있는 특별한 용산참사의 진실 말이다.

이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안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망루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창고로 쓰이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건물의 내부 구조를 모르는 경찰은 실제 진압과정에서 어떤 문으로 들어가야 망루로 올라갈 수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준비가 안 된 채로 건물로 들어가 과잉진압이 벌어졌음을 알게 해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영화는 이 두 개의 문을 중요한 키워드로 선택했고,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듯하다. 현실적으로 하나는 망루로 올라가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지만, 영화의 장치 차원에서 보면 하나는 허구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영화의 주제 차원에서 보면, 하나는 거짓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의 문이다.

ⓒ연분홍치마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제3의 문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남일당 건물의 안과 밖을 가리고 있는 제3의 문이다. 제3의 문은 실제적인 문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 기억, 시점에 의해 형성된 잠재적 공간 안에 있는 문이자,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이 만들어 놓은 문이다. 진실을 은폐하고자 권력이 차단한 문이면서, 진실에의 접근을 피하려 우리 스스로 무감각하게 가린 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앞서 말한 영화장치로서의 '인터-픽션'의 공간 안에 있는 잠재적 문이다.

그래서 허구와 현실,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 포개어져 있는 잠재적인 교집합의 공간인 제3의 문은 지금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앞으로 열어야 할 문이다. <두개의 문>은 진실규명을 위해 우리가 열어야 할 용산참사의 세 번째 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여는 데 있어 꼭 보아야 할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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